창원시가 이원수 탄생 100년을 맞아 추진키로 한 이원수 기념사업이 친일혐의에 직면해 근간이 흔들리면서 현재 논란이 계속되고 있거니와 엊그저께 시의회 시정질문에서 창원시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문순규 의원이 시민 혈세로 친일작가에 대한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시의 입장을 물은 데 대해 박완수 시장은 이원수 개인 기념사업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동요 '고향의 봄' 기념사업이라는 논지를 밝힌 것이다. 다시 말해 작가와는 관계없이 작품만을 따로 떼어 도시브랜드화 하겠다는 것이며 그 같은 분리논법이 가능한가를 묻는 말에선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로 논쟁을 일축했다.
작가의 정체성과 작품의 예술성을 별개의 인격체로 분리해석하는 그런 견해가 일반론과 상식선을 얼마나 만족하게 할지 매우 의심스럽다. 만일 그런 이분법이 통한다면 망국의 한을 신문사설로 실어 민족혼과 애국관을 일깨운 장지연의 뒤늦은 명예 일탈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고향의 봄'이 어린이들의 애창곡으로 널리 불리면서 다 큰 어른에게도 동심을 자극하는 명곡으로 남기게 됐지만 지금 와서 그 작가가 친일의 굴레에 묶여있고 그로써 그의 대표작으로서의 문화성이 의심을 받는다면 작가와 작품은 당연히 하나다. 그게 분리돼 취급될 수 있는 물질과 같은 것이라면 갈등이 따를 수 없다.
창원시가 애초 기념사업을 기획하면서 작가의 정체성 문제를 헤아렸는지는 분명치 않다. 작품의 유명도와 작가 인지도에 집착해 지역을 상징하는 문화상품으로서 가치를 측정하는데 진력했을 것이란 상상이 간다. 그러다가 시민단체의 감시망에 걸려 비판이 거세지고 저항에 부닥치면서 통합시가 내세운 문화적 지표가 손상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시장의 이원론적 분리 이론이 의정 단상에서 공식화하기에 이른 것이다. 반대 국면에 놓였다고 해도 버리기는 아까운 문화자원임이 틀림없다. 다만, 어떻게 자치단체 이익주의를 관통시킬 것인가를 연구한 결과물로 받아들여진다.
분리논법은 작가와 작품의 동일시를 거부하고 있지만 다르게 받아들인다면 공과의 구분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일이다. 비록 독재권력을 폈어도, 친일 족적을 가졌다 해도 다른 측면에 끼친 공을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다. 그러나 예술과 문학의 순수성은 그 같은 양면성의 혼재를 수용하지 않는다. 그 점의 엄격성이 절대적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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