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하기만 한 '장애인 투표'
창원서 보조 지원 거부 속출
선관위 "문제 없게 조치할 것"

발달장애인 고민정(맨 오른쪽) 씨가 2일 오전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 자리는 마산·창원장애인인권센터와 위드장애인인권센터가 마련했다. /최석환 기자
발달장애인 고민정(맨 오른쪽) 씨가 2일 오전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 자리는 마산·창원장애인인권센터와 위드장애인인권센터가 마련했다. /최석환 기자

발달장애인 고민정(49·창원 마산합포구) 씨는 이번 대선 사전 투표 때 현장을 찾았지만 한 표를 행사하지 못했다. 투표 보조인과 함께 기표소에 들어갈 수 없다는 선거관리원 제지에 결국 투표를 포기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2시, 투표하러 들른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행정복지센터에서 겪은 일이다.

그는 손 떨림이 심해 보조인 없이 투표권을 행사하기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매번 선거 때마다 투표소 직원에게 보조인과 함께 기표소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요구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거듭된 설명은 통하지 않았다.

고 씨는 “기표소 안에 혼자 들어가는 것도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라며 “불안감이 클수록 손 떨림 증상이 심해져 혼자서는 투표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사실을 늘 알리지만, 대선 사전 투표 때도 혼자 기표소에 들어가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선거 때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니 힘들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고민정 씨가 2일 오전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발언하고 있다. /최석환 기자
발달장애인 고민정 씨가 2일 오전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발언하고 있다. /최석환 기자

올해 경남 지역 제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에서도, 이전 선거처럼 장애인 대상 투표 보조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몸이 불편한 유권자가 찾아오면 선거사무원들이 이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거나, 신체적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자의적으로 판단해 투표 보조를 거부한 탓이다.

마산·창원장애인인권센터와 위드장애인인권센터에 접수된 창원지역 사전 투표소의 발달장애인 투표 보조 지원 거부 사례는 7건이다. 29일 성산구 사파동행정복지센터에서 1명, 30일 마산합포구 오동동행정복지센터에서 3명, 석전동행정복지센터에서 2명, 내서읍행정복지센터에서 1명이 보조 지원을 거부당했다. 이들은 모두 가족 또는 활동지원사와 함께 집을 나섰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갔다. 발달장애인 박상민(63) 씨는 “투표소마다 보조를 받아야 함에도 그러지 않았다”며 “이번에도 지원을 거부당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공직선거법상 시각장애인 또는 신체장애로 혼자 기표할 수 없는 사람은 가족이나 본인이 지명한 사람, 선관위 직원 혹은 선거 사무원 등 총 2인과 동반해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다.

투표소 질서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와의 동반 출입도 가능하다. 다만, 관련 법은 기표소 동반 진입을 허용하되 보조자가 대리 투표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근거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신체적으로 불편한 사람의 경우 부모 또는 활동 보조인이 기표소에 함께 들어가는 방식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고 유권 해석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보조인 지원 외에도 투표 보조기구 지급도 현장에서 이뤄진다. 예컨대, 시각장애인용 점자 투표 보조용구, 확대경(돋보기), 레일 버튼형 특수 기표용구 등이 있다. 특수형 기표용구는 손과 팔을 쓰기 어려운 유권자용 장비인데, 투표용지를 기표용구에 넣은 다음 위아래로 동그라미 버튼을 움직이면 자신이 원하는 후보자 위치로 옮겨지고, 그다음 버튼을 누르면 도장이 찍히는 방식이다. 손 떨림이 있는 사람이나 팔이 없는 사람이 입으로도 투표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인 셈이다.

2일 오전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장애인단체 주최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석자들이 21대 대선 사전투표 당시 발달장애인 투표 보조 지원이 사전투표소에서 거부된 사례를 언급하며 선관위를 규탄하고 있다. /최석환 기자
2일 오전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장애인단체 주최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석자들이 21대 대선 사전투표 당시 발달장애인 투표 보조 지원이 사전투표소에서 거부된 사례를 언급하며 선관위를 규탄하고 있다. /최석환 기자
회견 주최 측 관계자들이 2일 오전 창원 성산구 용호동 경남도선거관리위원회를 항의 방문해 선관위 선거과 직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최석환 기자
회견 주최 측 관계자들이 2일 오전 창원 성산구 용호동 경남도선거관리위원회를 항의 방문해 선관위 선거과 직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최석환 기자

마산·창원장애인인권센터와 위드장애인인권센터는 2일 오전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달장애인 투표 지원 미흡 문제로 선거관리위원회를 비판했다.

단체 측은 “혼자서 투표하기 어려운 발달장애인에게 투표 보조인을 지원해야 한다는 문구가 구체적으로 법에 나와 있지 않아, 선관위 직원들은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어떤 투표소에서는 운 좋게 보조인을 지원받고, 어떤 곳에서는 거부당해 투표를 포기하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주먹구구식 대응이 개탄스럽다”며 “중앙선관위뿐만 아니라 경남선관위의 참정권 침해를 규탄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들은 △선관위 투표 지원 매뉴얼 개정 △참정권 침해에 대한 공식 사과 △선거사무원 대상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발달장애인 눈높이에 맞춘 이해하기 쉬운 공보물 제공 △그림 투표 보조용구 지원 등을 강조했다. 회견 후에는 경남도선거관리위원회를 항의 방문해 장애인 투표 지원 개선을 촉구했다.

선관위 측은 창원 지역 발달장애인 투표 보조인 미지원 사례에 대해 문제가 된 투표소로부터 아직 보고받지 못했다며 추후 내용을 살펴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경남선관위 선거과 선거담당관은 “피해 사례가 있었다면 대선 본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안내하겠다”며 “투표 보조 문제는 현장에서 판단해 대응할 수밖에 없다. 법에 따라 적절하게 판단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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