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애 보훈부 장관, 민주묘지 참배
정부 인사 대표해 '기념사' 나섰지만
3.15의거 핵심인 '독재' 언급 회피
행사 참석자들 "알맹이 없다" 지적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3.15의거 기념식에서 이승만 독재정권 시절 자행된 3.15 부정선거와 유혈진압 문제를 지적하는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를 직접적으로 문제 삼는 발언도 회피했다. 최근 6년 새 열린 3.15 기념행사에서 독재가 언급되지 않은 것은 지난해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15일 오전 11시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동 국립3.15민주묘지에서 3.15의거 65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강 장관을 비롯해 박완수 경남도지사, 홍남표 창원시장, 윤한홍(국민의힘·창원 마산회원) 국회의원, 최형두(국민의힘·창원 마산합포) 국회의원, 박선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주임환 3.15의거기념사업회장, 3.15의거 유공자·유가족, 3.15 시위 참여학교 재학생 등 600여 명이 참석했다.
강 장관은 이날 기념사에서 "1960년 3월 15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마산의 학생들과 시민들은 불의에 항거해 민주 국가의 국민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라의 미래를 빛내줄 학생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고, 수많은 시민이 부상을 입거나 체포돼 고문당했지만, 마산의 외침은 두려움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강 장관은 "3.15 의거는 민주주의를 향한 전 국민의 열망을 폭발시키며 4.19 혁명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으며,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이 나라를 위해 놀라운 용기와 실천을 보여준 위대한 역사가 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부는 3.15 의거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며 대한민국을 지켜내고 바로 세운 보훈의 의미를, 국민과 함께 되새기고 이를 밑거름 삼아 앞으로 나아가겠다"면서 "특히 국가 유공자분들의 희생과 헌신이 미래세대에 올바르게 전해질 수 있도록 보훈 정책을 펼치겠다"고 덧붙였다.
7분간 이어진 기념사에서 강 장관은 독재라는 단어를 한 차례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장기 집권을 꿈꾼 독재자 이승만이 1954년 사사오입 개헌으로 헌법을 불법 개정해 초대 대통령 중임 제한 폐지를 끌어낸 점, 본인에게 유리한 선거 구도를 만들려고 1960년 1월 31일 국무회의를 거쳐 기존보다 약 2달 선거 일정을 앞당긴 점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이 그해 노골적으로 투표소 인근에는 반공청년단 등 완장 부대를 배치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유권자를 3·5인조로 묶어 사실상 공개투표를 자행한 사실 역시 기념사에서 뺐다. 그 대신 강조한 말은 정부가 국가보훈기본법을 토대로 일상 속 살아있는 보훈 모두의 보훈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정부와 국민이 함께 국가 유공자의 공헌을 기리고 애국정신을 계승해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강 장관은 "65년 전 마산의 학생과 시민들이 그랬듯이 이제는 우리가 힘을 모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이어 나가야 하고 만들어 나가야 할 때"라며 "서로 협력하고 함께 나아가며 희생과 헌신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의 가치를 더욱 빛내야 한다"고 했다. 또한 "국민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께 잘 동참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는 나라 사랑 이젠 우리 차례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기념사를 두고 행사 참석자 사이에서 뒷말이 나왔다. 독재라는 단어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 기념식마다 최소 1회, 최대 6회 이상 등장했지만, 지난해 기념식 한덕수 총리처럼 강 장관 또한 3.15의거 원인인 독재를 말하지 않아 아쉽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앞서 한 총리는 3.15 기념사에서 이승만 정권의 독재를 지적하지 않는 대신 원전 생태계 강화를 강조한 바 있다. 그는 당시 "경남이 원전산업, 우주항공, 방위산업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미래산업의 메카로 크게 발전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특히 원전산업은 기후위기 시대를 이끌어나갈 중요한 성장동력이자 에너지 안보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상임고문은 "강 장관이 의도적으로 정치적인 문제를 피하고자 독재를 말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며 "요즘 시국이 시국이니 내란과 관련한 비상시국 이야기도 하는 게 맞았지만, 어떠한 말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3.15 정신계승은 역사적인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때 비로소 이뤄질 수 있다"며 "그 점에서 이번 기념사는 지극히 평범해 보였다"고 말했다.
허정도 전 창원대 겸임교수는 "보훈부 장관이 3.15정신 핵심을 말하지 않고 비껴갔다"며 "3.15 기념사로서는 알맹이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시기가 예민한 시기이니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되는 면도 있지만, 그래도 국가행사인데 일반 정체성 없는 부대행사에 온 듯이 하니까 피해 가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고 말했다.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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