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화장실·인권 헌장 만드는 대학
"차별과 혐오 막으려면 인식 개선 중요"
해외 대학, 성소수자 차별 금지 약속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성소수자 인권 실현

지난 7월 성적지향·성별정체성(SOGI) 법정책연구회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관련 제도 유무를 따져 만든 ‘무지개 지수’를 발표했다. 2022년 한국의 무지개 지수는 10.56%로 심각한 인권침해와 차별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도 최하위 수준에 머무른다.

성소수자를 지지하고자 무지개 옷을 입었다가 징계받거나(2018년 장로회신학대), 대학생 성소수자 모임에서 내건 게시물이 거부당하거나(2020년 숭실대), 트랜스젠더 신입생이 입학을 포기하거나(2020년 숙명여대), 대학생 성소수자 동아리가 정식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비난받기도(2022년 인제대) 했다.

성소수자가 완전히 평등할 때 무지개 지수는 100%를 가리킨다. 만일 대학 안에서 무지개 지수를 평가한다면 100보다는 0에 가깝게 나오지 않을까 예상한다. 대학 안에서 성소수자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 쉬우며, 이들은 뒤로 숨는 방법을 최선으로 택한다. 대학 안에서 무지개 지수를 끌어 올릴 방법은 없는 걸까.

지난 5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국회 앞으로 모여 들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지난 5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국회 앞으로 모여 들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성소수자 공동체 위한 대학 =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 무렵부터 대학가에서 성소수자 존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내 대학 안에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관련 제도를 만든 경우는 보기 드물고, 성소수자를 혐오와 차별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 남아있다.

올해 성공회대는 ‘모두의 화장실’을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모두의 화장실은 성별이나 성 정체성, 장애 유무 상관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이조차도 쉽지 않았다. 완공까지 5년이 걸렸으며 대학 내에서는 여전히 반대 여론이 나오고 있다.

한국다양성연구소는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모두의 화장실을 안내하고 있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장은 “모두의 화장실은 우리 모두 대학이라는 공간 안에 안전하게 포함된다는 걸 보여준다”며 “실제로 트랜스젠더는 화장실조차 가기 쉽지 않고, 대학도 못 가고 취업도 못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학 안에서 성소수자를 이해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미국 대학에서 사회복지학 석사 과정을 밟은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가 다녔던 대학은 1학년 1학기 때부터 16주간 다양성 교육(human diversity)을 듣게 한다.

김 소장은 “다양성 교육에서 성소수자만이 아니라 인종차별, 성차별, 외모 차별 등 우리 사회 모든 차별과 억압을 공부한다”며 “다양성 교육을 통과하지 못하면 다음 학기로 넘어가지 못하는데 우리 대학에서도 의무적으로 수업을 듣게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성소수자 동아리를 정식 동아리 또는 자치기구로 인정하는 학교는 이화여대, 충북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소수에 불과하다. 대학이 성소수자를 공동체 일원으로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인식 개선이 우선이다.

서울대 성소수자 동아리 QIS 회원 신승호 씨는 “서울대학교에는 학생소수자위원회와 인권센터가 있지만, 학생소수자위원회는 코로나19 이후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인권센터도 인권 침해 사안이 발생했을 때 구제책으로 존재하고 있다”며 “인권센터에서 매년 인권 주간을 선포하고 있으나 구성원 대부분이 행사에 무심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5월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 현장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지난 5월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 현장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차별금지법 제정 기다리는 성소수자들 = 신 씨는 성소수자 인권 침해를 막고 권리를 보장하려면 대학 차원에서 규범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20년까지 서울대 안에서 ‘인권 헌장(안)’ 제정이 논의되다가 중단됐는데 지난달부터 제정을 위한 설문조사가 진행되는 등 논의가 재개되고 있다”며 “인권헌장에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차별금지 사유로 명시하는 규범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4년 고려대는 ‘모든 학생은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아 총학생회칙을 개정했다.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의 결정에 대학생 성소수자들은 환호했다.

강릉원주대학교 산학협력단은 지난해 12월 <성소수자 차별 관련 해외 입법 동향 및 사례연구> 보고서를 펴냈다. 보고서에는 성소수자 인권 보호에 관심을 기울이는 대학의 사례가 나와 있다.

2018년 일본 메이지대학·국제기독교대학·쓰다주쿠대학 학장은 공동으로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 등 개인 존엄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대학을 만들기로 약속했다. 이 대학들은 관련 법제도 연구자와 기관과도 제휴를 맺었다.

2016년 미국 법무부와 교육부는 연방 지원을 받는 모든 대학에 지침을 내려 보냈다. 제목은 ‘트랜스젠더 학생과 관련해 동료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편지에는 “정부 재정적 지원을 받는 대신 트랜스젠더 학생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학교가 학생이 정체화한 성별대로 대우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다”는 내용이 쓰여있다.

대학을 넘어 모든 성소수자의 인권침해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이 꼽힌다. 차별금지법은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인종, 장애, 성적 지향성 등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평등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성소수자는 물론이고 여성, 이주 노동자, 장애인 등 우리 사회의 평등을 바라는 각계각층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으나 법안은 제자리걸음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건 2006년. 그로부터 16년이 지났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장예정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우리 사회는 아직 성소수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치권에서 귀담아들으면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하고 있었다”며 “성소수자 인권을 보장하고 차별을 금지하는 일에 정치권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 위원장은 “차별금지법은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인권 보장의 기반이 될 것”이라며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차별과 혐오로부터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고, 예방하는 역할도 마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다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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