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책임관 활용 천차만별
업무 실적 아예 없거나 부실

보도자료 감수, 조례 용어 정비 등
김해, 거제, 거창 등 노력 엿보여
공무원 공공 언어 쓰기 교육도

누구나 읽기 쉬운 보도 자료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국어책임관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국어기본법은 “공공 기관이 공문서를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경남에는 국어기본법 규정에 따른 국어책임관이 없고, 업무실적 자료도 없다고 답변한 지자체가 있다. 정보 공개 청구를 하고 나서야 일부 업무를 추진한 사례도 드러났다.

또 문화재·관광 시설 안내판·표지판 속 용어를 정비했다거나 문해 교실을 운영했다는 데 그친 사례가 많았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보도 자료가 우리말로 쉽게 쓰이지 않는 이유다.

보도 자료를 사전에 감수해 더 쉬운 우리말을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지자체도 없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지자체가 훨씬 더 많았다.

<경남도민일보>는 지난 12일 각 지자체에 국어책임관 지정 현황과 업무 실적 정보를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국어책임관 없다? = 고성군과 남해군은 국어책임관 제도를 모르고 있었다. 고성군·남해군은 국어책임관 지정 현황과 업무 실적 자료가 ‘부존재’한다고 답변했다. 국어기본법은 공공 기관의 홍보나 국어 담당 부서장을 국어책임관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책이나 업무를 효과적으로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쉬운 용어 개발·보급과 정확한 문장 사용 장려, 공공 기관 직원 국어 능력 향상 등이 임무다.

또 지자체는 국어책임관 업무 실적을 해마다 1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통보해야 한다.

그런데도 고성군과 남해군은 업무 실적 등이 없다고 한 것이다. 재차 문의했더니 고성군 관계자는 “우리 군에는 국어책임관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약 10분 후 착오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뒤늦게 보내온 답변 자료에서도 ‘쉽게 다듬은 말 홍보·사용 협조’ 외 특별한 업무는 없었다. 고성군은 최근까지도 보도 자료에 ‘비치코밍(해변 정화)’, ‘계도(알림·일깨움)’ 등 외국어와 어려운 한자어를 쓰고 있다.

남해군도 마찬가지다. “관련 자료가 없다”고 했다가 다시 한 번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확인 결과 지난해와 올해 ‘쉽고 바른 공공언어 군민과 함께 씁니다’ 등 사업을 실적으로 내놨는데, 국어책임관은 없다고 밝혔다. 업무는 있는데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남해군은 보도 자료에서 별다른 뜻풀이 없이 ‘SOS랩’, ‘ICT(정보통신기술)’ 등 외국어·외래어를 남발하고 있다.

함양군도 국어책임관이 없으며, 업무 실적도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역시 착오가 있었다며 다시 답변을 보내왔다.

함안군 국어책임관은 <경남도민일보>가 정보 공개를 요청하고 나서, 부랴부랴 일부 업무를 시행한 것으로 보인다. 10월 12일 정보 공개를 요청했는데, 10월 17일에 함안군 누리집에 공공 언어 개선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게시했다. 국립국어원에서 지난해 8월 내놓은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 및 표기 안내서> 개정판이다.

24일 기준 이 게시물 조회 수는 ‘13’이다. 함안군 공무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됐을지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의령군이 내놓은 국어책임관 2021~2022년 업무 실적은 ‘공무원 대상 공공 언어 바르게 쓰기 교육 권장’, ‘내부망 다듬은 말 전파’, ‘한글사랑 지원 조례 제정’이 전부다.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자 애쓴 이극로 선생 등이 나고 자란 ‘한글 도시’임을 자랑하고, 국립국어사전박물관 건립을 추진 중인 것을 고려하면, 국어책임관의 역할은 초라하기만 하다.

통영시는 지난해 누리집 내에 ‘어려운 공공용어 신고’ 게시판을 신설하고 올해 홍보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실적은 확인하기 어렵다. 또 올해 문화재 안내판 순화 작업을 했다고 밝혔는데, 욕지도 패총 안내판 정비 1건이다.

하동군도 문화예술 분야 담당 부서장을 국어책임관으로 지정하고, 공문서 용어 점검과 순화어 발굴 등을 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창녕군은 지난해 국가 지정 문화재 안내판·안내문 정비와 안내판·안내문 학술 용역 결과 보고서 자료집을 발간했다는 게 끝이다.

합천군은 올바른 한글 사용과 행정 용어 순화 ‘홍보·협조’ 등에 그쳤다.

이 밖에 많은 시·군 국어책임관은 결혼 이주 여성이나 노인 등을 대상으로 한 ‘문해 교실’을 업무 실적으로 내세웠는데, 국어책임관 본연의 업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말’ 사용 노력도 = 김해시 국어책임관은 올해 보도 자료 95건, 지난해 101건을 감수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8월과 올해 1월 누리집 속 외국어 등을 정비했다. 국립국어원 공공언어통합지원 서비스를 활용한 행정 언어 순화 사업도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공공 언어 바르게 쓰기 계획에 따라 김해시 공무원 56명이 교육을 이수했고, 새올행정시스템에 ‘국립국어원’ 바로가기를 만들어 전 직원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

특히 올해는 김해시 국어 진흥 조례 일부를 개정해 국어 진흥 계획 수립과 시민 의견 청취, 한글날 기념행사 등 근거를 신설했다.

거제시 국어책임관은 지난해와 올해 자치 법규 용어 순화를 추진해 조례와 규칙에서 모두 159건을 정비했다. 같은 기간 보도 자료 등도 사전에 합계 2600건을 검토했다고 밝혔다.

또 직원들이 공문서 작성 때 필요한 국어 능력을 키우고자 2년간 온라인·대면 교육으로 합계 311명이 수료하게 했다.

거창군은 올해 24개 부서에 국어책임관을 지정했다. 올해 직원을 대상으로 한 ‘국어문화학교’ 온라인 교육을 60명이 이수하고, ‘찾아가는 국어문화학교’ 교육도 19명이 이수했다.


거창군 국어책임관도 새올행정시스템에 국립국어원 바로가기를 만들어 직원의 접근성을 높였다. 또 올바른 국어 사용을 위해 문화재·관광 안내문 감수를 경상국립대와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맡겼다.

산청군 국어책임관은 지난해 조례 37개 속 어려운 한자어, 일본어 투 등 용어를 정비한 게 눈에 띈다.

◇모범 사례 보니 = 경남교육청은 도내 공공 기관 중 쉬운 우리말 사용에 가장 모범을 보이고 있다.

우선 도교육청과 산하 기관 34곳에 모두 24명 국어책임관과 109명 국어담당자를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난해 보도 자료 771건, 인터뷰 자료 53건을 감수해 되도록 쉬운 우리말을 사용하고자 노력했다.

또 국어 바르게 쓰기 위원회 구성·운영, 경남교육청 국어 바르게 쓰기 조례 개정, 2021~2025년 국어 바르게 쓰기 운영 계획 수립 등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각 교육지원청에서도 신규 임용 공무원에게 공문서 작성법을 교육한다거나 직원 월례회 때 보도 자료 작성법 교육, 직원 대상 알기 쉬운 공문서 작성 안내 등을 하고 있다.

/김희곤 기자

※ 감수 김정대 경남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