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발생 2곳 입구서부터 저지
출입·인터뷰 모두 완강히 거부
지역 교사들 "관리 밖…화약고"
주민 "부득이 온 아이도 많아"

하동 기숙형 서당에서 2018년 5월 집단 성폭행 사건, 2020년 2월, 5월, 올해 2월까지 학생 간 폭력·가혹 행위가 잇따라 발생했다.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곳 서당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여러 차례 일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학생들의 생활공간이자 방과 후 교육의 순기능 역할을 했던 서당이 왜 이렇게 폭력사건 등이 빈번히 발생하는 곳으로 얼룩졌는지, 서당·학교 관계자·지역 주민을 만나 실태와 문제점을 들어봤다.

"여기 왜 왔어요?"

하동 읍내에서도 한참 산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청암면 한 마을. 지난 1일 오전 마을길을 따라 올라가니 펜션·농원 등을 지나 한 서당이 보였다. 학생 폭력사건이 발생했던 곳 중 한 곳이다.

◇경계심 드러내는 서당 = 아이 10여 명이 마당 한쪽 바위와 잔디 위에 옹기종기 앉아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학생이 '왜 왔느냐'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어린아이들은 흙장난에 열중이었다. "서당에 유치원생부터 중3까지 있어요." 한 아이가 말했다. 서당 생활이 어떤지 묻자, 또 다른 아이가 "휴대전화 사용 금지고, 자전거·퀵보드 못 타요"라고 했다. "그래도 친구들하고 같이 노니까 재미있어요. 개구리도 잡고, 꽃으로도 뭘 만들기도 하고요. 여기 찾아보면, 도롱뇽도 있어요." 숙소 쪽 신발장에는 슬리퍼·운동화 등 신발 30여 켤레가 빼곡히 놓여 있었다. 한 아이는 "다 좋은데, 엄마 아빠 못 보는 게 힘들어요. 엄마는 서울, 아빠는 경기도에 있는데, 여름방학·겨울방학·명절에만 봐요"라고 말했다. 아이들과 몇 마디 나누는 사이에 서당 관리자가 황급히 나와서 돌아가 달라고 했다. 서당을 둘러볼 수 없고, 서당 훈장을 만날 수도 없다고 했다.

학생 폭력 사건이 발생했던 또 다른 마을의 서당도 찾았다. 노래방 기기로 학생들이 노래 부르는 소리가 서당 밖에서 간간이 들렸다. 입구에 들어서자 서당 관계자 2명이 막아섰다. 어떠한 인터뷰도 할 수도 없다며 완강하게 말했다. "우리도 지금 너무 힘들다. 내 자녀도 여기서 산다. 애들이 이번 사건이 알려지면서 학교에서 놀림을 당해서 학교에 안 가려고 한다. 잘못이 있는지 법정에 가면 알지 않겠느냐"고 했다.

▲ 학생 간 폭력 사건이 발생했던 하동 한 기숙형 서당. 툇마루에 걸터앉아 있는 학생들과 어린이 보호 차량이 보인다. /허귀용 기자
▲ 학생 간 폭력 사건이 발생했던 하동 한 기숙형 서당. 툇마루에 걸터앉아 있는 학생들과 어린이 보호 차량이 보인다. /허귀용 기자

◇"학생 서당 생활은 화약고" = 경남도교육청은 하동 서당 인근 초·중학교 재학생 약 80%가 서당에서 집단거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초등학교는 전교생 74명 중 61명이, 한 중학교는 전교생 49명 중 39명이 하동 이외 지역인 서울·경기 등 타지에서 와서 서당에서 생활하고 있다.

초등학교 관계자는 "일반 학교와 달리 여기는 학생 전출입이 잦다. 올해만 해도 벌써 학생 9명이 가고, 10명이 왔다. 1년에 전출입 학생이 100여 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집단으로 생활하면서 위계질서 등에 따라 구타 등이 빈발했던 것 같다"며 "서당이 자기가 관리할 수 없을 만큼 학생을 받아서 관리가 안 되니까 학생들끼리 폭력을 묵인한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의 서당 생활은 '화약고'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 폭력 사건은 교사가 학생 생활을 관찰하면서 상담을 통해서 알아냈다고 했다.

한 중학교 관계자도 "우리도 서당에서 오는 학생이 많은데, 학생 변동이 많다"며 "학생들이 언어 표현 등이 거칠어서 언어순화 등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 학교는 3년 전 '위클래스'를 구축하고 상담교사를 둬 학교 폭력 관련 설문조사를 한 달에 한 번씩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통 학교 폭력 설문조사는 학교마다 연 2회 진행한다.

한 교사는 "아이들이 자신이 원해서 서당에 오는 것이 아니고 부모 사정에 의해 보내지면서 아이들 나름의 충격과 상처가 있다"며 "서당이라는 공간은 통제가 많다 보니, 오히려 학교에서 학생들이 에너지를 분출하고 발랄하게 지낸다"고 말했다.

◇주민들 '청학동 부정적 이미지' 우려 = 서당이 있는 지역 주민들은 청학동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기는 것을 우려했다.

한 주민은 "예전에는 청학동에 예절학습 등 체험학습을 하러 많이 왔는데, 이번 사건이 알려지면서 이제 누가 체험학습을 하러 오겠느냐"며 "체험학습으로 지역이 활성화됐는데, 그마저도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또, 학생 100여 명이 지역을 떠나게 되면 학교 존립도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했다.

또 다른 주민은 "'청학동 서당'이라고 보도되는데, 청암면 묵계리 5개 마을(원묵·학동·청학·장고·묵계) 중 원묵·학동·청학 3개 마을에 서당이 있다. 그런데 청학동에서는 이번에 알려진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는데, 청학동이라고 묶어서 보도해 불만이 많다"고 토로했다.

▲ 학생 간 폭력 사건이 발생했던 하동 한 기숙형 서당 신발장에 학생 신발이 빼곡히 차있다. /우귀화 기자
▲ 학생 간 폭력 사건이 발생했던 하동 한 기숙형 서당 신발장에 학생 신발이 빼곡히 차있다. /우귀화 기자

서당 인근에 있는 지역 주민은 언론과 접촉을 꺼렸다. 대부분 서당이 평소 잘 아는 이웃과 다름없기에 서당 관련 이야기를 하는 것을 피하려는 듯했다.

하동 다른 지역의 주민은 이번 사건은 관리·감독을 못한 행정기관에 책임이 있다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횡천면 한 주민은 "부끄러운 일이다. 행정에서 지속적으로 관리하지 않아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 하동군과 교육청·경찰서 등 행정기관이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 모두 직무유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동읍 주민은 "2~3년 단위로 이런 사건이 종종 발생한 것으로 안다. 학원과 달리 서당은 제도권 안에 들어 있는 게 아니라서 행정당국과 교육당국의 업무 담당이 모호하고 불분명해 관리가 안 되다 보니 이런 문제가 일어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행정·교육당국의 관리 부재와 서당의 부실한 운영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당 운영 상황을 잘 아는 하동읍의 또 다른 주민은 "사회 전체적으로 가정이 무너지니까 피할 곳 중 하나가 서당이다. 양질의 교육을 하고 싶어서 보낸 부모도 있겠지만 가정 상황이 좋지 못해서 부득이하게 들어온 아이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교육청이나 행정의 책임 소재를 떠나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들이 이번 사건으로 분출됐다고 본다. 서당만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이고, 복합적으로 이번 사건을 바라봐야 하고, 그런 시각으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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