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에서 고민하는 남자

경남경찰청 교통관리센터에서 강석동(51) 경비교통과 교통안전계 경위와 마주 앉았다. 그는 수북이 준비한 자료를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며 메모도 틈틈이 했다. 경찰 제복을 입기는 했지만 학자 느낌이 물씬 났다. 실제 그렇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교통안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끊임없이 분석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기 때문이다.

20년 넘은 교통 업무 베테랑

지난해인 2015년 조현배(55) 청장 부임 이후 경남경찰청은 '교통 문화 개선'을 핵심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한 중심 부서가 교통안전계로서, 도로 위 안전대책을 총괄한다. 계절별·교통수단별 대책을 1년 내내 세우는 건 기본이다. 도로 단속, 출퇴근길·축제 교통 관리, 관련 시설물 정비, 요인 기동경호 등도 맡고 있다. 강석동 경위는 이를 관리하는 '안전 주임'이다.

"지난해 도내 교통사고 사망자는 390명이었습니다. 살인사건으로 연간 40여 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치죠. 결국 저는 도민 생명과 직결된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1명이라도 더 살릴 방법을 찾기 위해 하루하루 고민을 이어가고 현장을 나가야 합니다."

올해 300만 명이 찾은 진해군항제 역시 교통문제가 말썽이었다. 올해 처음으로 일반 차량 통제 후 셔틀버스 운영을 시도했지만 관광객들 원성은 크기만 했다.

"창원시가 진주유등축제를 벤치마킹해 구상안을 내놓았습니다.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진주는 개인 차량으로 시내까지 들어가는 형태지만, 진해는 축제 중심가와 떨어진 곳에서 통제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다 안내 시설·인원 부족 등 전체적으로 미숙했습니다. 의욕은 있었지만 유기적으로 돌아가지 않은 부분이 컸던 거죠. 종합평가보고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개선책을 찾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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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석 경비교통과 교통안전계 경위./김구연 기자

최근 보복·난폭운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다. 지난 2월 12일 도로교통법 개정에 따라 직접적인 처벌 근거가 마련됐다. 경남경찰청은 한 달 보름간 집중 단속을 해 하루 한 명꼴인 44명을 입건했다. 물론 단속보다는 대국민 홍보에 방점을 둔 정책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이 대목에서 '비상 깜빡이 적극 활용 캠페인' 이야기가 이어졌는데, 그는 펜으로 적어가며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강 경위는 20년 넘은 교통 관련 업무 '베테랑'이다. 그 세월 속에서 도내 도로 곳곳에 손길이 닿아있다.

"2002년 즈음에는 창원에서 가장 막히는 곳이 창원병원 사거리였습니다. 그 정체 여파가 온 시내에 영향을 끼쳤죠. 당시 시에서는 지하도 건설을 고민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800억 원 정도 필요했습니다. 저는 5억 8000만 원만 들어가는 방안을 추진했습니다. 도로구조를 개선하고, 이용이 덜한 신호를 없앤 후, 전체 신호 연동체계를 바꿨습니다. 그때부터 창원병원 사거리의 만성체증이 없어졌어요. 그 덕에 연간 1200억 원을 절감할 수 있게 된 거죠. 당시 국정감사에서 좋은 사례로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최근 창원시 성산구~진해구를 잇는 안민터널도 차량 흐름이 좋아졌다. 이 역시 신호개선, 도로구조 개편, 예산 확보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렇듯 경찰·자치단체·관련단체가 끊임없이 머리를 맞대고 손발을 맞춰야 한다. 정책 수립이라는 게 원래 그렇듯 윗선 결정이 중요하지만, 결국에는 실무자 의지가 크게 좌우한다.

"아무리 아이디어를 내도 안 먹힐 때가 있죠. 결국 사고가 일어나서야 추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어느 자치단체 공무원은 무단횡단으로 사망한 가족이 있다 보니, 위험을 제거하는 도로 개선에 아주 적극적이었습니다. 저와 아주 죽이 척척 맞았습니다. 민원이 들어오거나 개선책을 추진할 때 '된다'는 명제 아래 시도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부정적이면 생각조차 막혀버리기 때문입니다."

"아이디어 고민이 즐겁습니다"

강석동 경위는 하동군 청암면이 고향이다. 청학동과 멀지 않은 곳으로 스스로 '산골짜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외진 곳이다. 농업 관련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자연스레 품은 채 어린 시절을 보냈다. 스무 살 지나 진로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하다 순경 시험을 봤다. 준비 기간은 석 달도 안 됐지만 한 번에 합격했다. 어릴 적부터 한자를 익혀둔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중앙경찰학교에서 1000명 중에서 2등으로 교육을 마쳤다.

경찰 제복을 입고 나서는 대산지서를 시작으로 사림파출소, 창원중부경찰서, 지금의 본청 등 줄곧 창원에서만 근무하고 있다. 교통 관련 업무는 한 선배의 권유로 1995년 처음 맡아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

"현장에서 범인을 검거하는 일은 성격도 거칠고, 신체도 어느 정도 뒷받침돼야 하는데요, 저는 이쪽 분야가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창의적인 부분에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합니다. 제가 외우는 머리는 있는 것 같아요. 수학은 못 하지만 숫자는 잘 기억합니다. 수십 년 된 전화번호도 다 남아있고, 쌩쌩 지나치는 차량 속에서 지인 번호판이 눈에 들어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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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석 경비교통과 교통안전계 경위./김구연 기자

지금까지 국무총리·경찰청장 등 표창을 32번 받았다. 이 모든 건 창의적 업무 실적과 관련해 있다.

높이 4~5m 되는 신호등이 있으면 대형구조물 운송 차량이 지나가기 어렵다. 예전 창원 공단로 같은 곳에서는 이러한 차량이 지날 때마다 신호등을 해체했다가 재설치하는 식이었다. 시간·인력·비용 등 모든 면에서 비효율적이었다. 이에 버튼 하나만 누르면 접었다가 다시 원위치할 수 있는 '회전식 신호등'을 추진했다. 2003년 전국 최초 도입이었다. 지금은 전국 곳곳에 이러한 시스템이 퍼져나가 있다. 교차로 상황관리카메라 역시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예전에는 블랙박스가 없다 보니 사고가 나면 원인 규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운전자가 '신호위반 안 했다'고 우기면 밝혀내기 어려운 거죠. 그 때문에 경찰력, 소송비용, 사회적 불신 등 낭비 요소가 엄청난 거죠. 그래서 여러 각도에서 상황을 담을 수 있는 카메라를 생각했습니다. 창원 시내 몇 군데에서 운영했는데 역시나 분쟁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주요 교차로 120군데로 퍼져 나갔죠."

그는 각종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인 표현과 글쓰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안고 있다.

"한때 1년 정도는 각종 신문 사설이라는 사설은 다 읽었습니다. 창의적인 생각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글로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그때 신문을 탐독했던 게 지금까지 큰 자산으로 남아있습니다. 경찰은 부서별로 보도자료를 작성하는데요, 기자들에게 전화가 오면 잘 못 만들었다는 뜻이죠. 자료만 보고 이해하면 기자들이 전화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저는 아무래도 좀 나은 편이죠. 하하하."

교통안전교육 마련에 대한 미련

강석동 경위는 1993년 결혼했다. 아내는 지금까지 좋은 업무 파트너(?)다. 도내 교통 구조물을 살피기 위해서는 현장을 부지런히 다닐 수밖에 없는데, 아내는 드라이브 삼아 주말마다 함께했다. 지금은 각종 제보를 하기도 한다.

"시원찮은 교통경찰관보다 집사람이 나아요. 예전에는 전구식이라 신호등 나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집사람은 차에서 백미러를 보고서도 '뒤에 신호등 황색 나갔다'고 말해 줄 정도입니다. 또 생명보험 일을 하면서 눈에 보이는 게 있으면 바로바로 저한테 신고합니다. 농담으로 '한 건에 5000원'이라는 말도 주고받죠."

현장을 두루 다니고 사람들 만나기 바빠 주로 사복을 이용한다. 20대 딸·아들에게 경찰 제복 입은 모습을 별로 보여준 기억이 없다. "아빠 경찰이었어?"라는 농담을 듣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래도 그는 가족 외출 때 "저 신호체계를 이 아빠가 바꿔놓았다"라고 어깨 으쓱이며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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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석 경비교통과 교통안전계 경위./김구연 기자

"발명가들이 뭔가를 만들었을 때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하잖아요. 저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하동 촌놈이 창원이라는 거대 도시를 비롯해 도내 곳곳 교통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머리 짜내고, 그것이 성과로 이어졌을 때, 그 성취감은 대단하지요. 도로 위에서 곧바로 보이는 것이니 더더욱 그러하지요. 교통안전 업무는 결국 도민 생명을 지키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이 매력에 빠져 20년 넘게 열정을 쏟고 있네요."

조직에서 허락한다면 좀 더 많은 걸 쌓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그 속에서 현실적 한계에 대한 고민도 많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도로를 이용하잖아요. 그만큼 중요한 공간입니다. 하지만 안전의식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 체계는 없죠. 우리 사회에 교통안전 교육을 시스템화하는 것이 저의 이상적인 꿈입니다만,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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