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연극합니다

지난 3월 31일부터 4월 10일까지 김해는 연극 물결로 술렁였다.

'제34회 경상남도연극제'가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 누리홀과 진영 한빛도서관 공연장에서 열렸다. 14개 극단이 11일간 선보인 연극은 '연극, 그 아름다움에 취하다'라는 주제와 걸맞게 많은 관객들의 호응을 샀다.

경연대회인 이번 연극제에선 진주 극단 현장이 가장 빛났다. 개인상 중에서는 연출상, 연기대상, 희곡상 등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로 평가받는 각 분야에서 수상을 기록한 데 이어 단체상에서는 영예의 대상까지 받으며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이번 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은 현장은 수상 횟수를 8회로 경신하며 거창 극단 입체와 창원 극단 마산을 넘어 최다우승극단으로 이름을 드높였다.

극단 현장 고능석(48) 대표는 "이번 연극제에 앞서 우리 극단이 7회를 받았다는 사실을 몰랐는데 언론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면서 "우리가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해 8회 수상을 따내 매우 기쁘지만 대상이라는 달콤한 열매는 때론 악마의 속삭임처럼 사람을 우쭐하게 만들고 건방지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에 더 겸손하게 연극을 하려고 한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01.jpg
▲ 고능석 극단 현장 대표./박일호 기자

극단 현장에 우승 안긴 강목발이는 어떤 작품?

이번 연극제에서 현장이 선보인 연극은 강목발이다. 강목발이는 진주의 옛이야기 중 하나로 전해지는 전설을 배경으로 만들어 낸 희곡이다. 신출귀몰한 의적이 보여주는 모습이 마치 도깨비 같다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백정의 후손이 살아가는 가상의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고 대표와 현장은 이 연극을 통해 인간의 업이란 무엇인지를 풀어내려 했다.

연극은 아주 일상적인 장면에서 시작된다. 다만, 도깨비나 집을 지키는 업신 등 신화적 요소가 결합된 부분이 작품의 특징 중 하나다.

강목발이는 지난 2015년 7월, 공연장상주단체 희곡 워크숍을 통해 자체 생산된 희곡이다. 낭동공연을 통해 가능성을 검증받은 뒤 임미경 작가와 고능석 대표와 극단 현장 배우들이 함께 힘을 모아 만들어냈다. 지난 2월 말 작품이 완성됐다.

고 대표는 강목발이에서 인문학, 진주정신을 강조하며 연출에 섬세함을 더했다.

02.jpg
▲ 고능석 극단 현장 대표./박일호 기자

그는 "과거 진주정신찾기 시리즈라는 진주 이야기를 소재로 작품을 제작했을 때 역사적 사실에 묶여 현재와 연관성이 크지 않아 아쉬운 부분을 느낀 적 있다. 이번 작품은 진주 의적 강목발이라는 설화를 인간의 업(業)과 연관해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도깨비, 업신과 같은 신화적 요소를 결합해 만든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고 대표가 말한 진주정신은 진주성 1·2차 전투와 논개의 순국, 진주농민항쟁, 형평운동 등 진주에서 일어난 굴곡의 역사 속에서 피어난 주체정신, 호의정신, 평등정신을 말한다.

지역밀착, 한국적인 색채가 빛을 발한 것일까? 심사위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이번 연극제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했다.

경연대회 우승과 함께 찾아온 대한민국연극제 출전 티켓

경남연극제는 올해로 3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경연대회다. 대회 우승으로 올해는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에 경남을 대표해 출전하게 됐다. 지난해까지 전국연극제라는 이름으로 대회가 열렸으나 올해는 지역극단의 수준이 향상됐음에 서울팀도 예선을 치러 본선인 대한민국연극제에 나서게 되면서 대회 명칭이 바뀌었다. 오는 6월 3일부터 충북 청주에서 전국 최고의 연극제가 열린다.

고 대표는 이번 대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점에 대해 동료들의 환대였다고 한다.

그는 "대상작이 이렇게 많은 상을 받게 되는 일은 흔하지 않은 일인데 이번 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은 것 중 가장 기분 좋은 시선은 잡음이 없었다는 것"이라며 "예년에는 대상작이 발표되더라도 일부 동업자들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들 했다. 근데 이번에는 심사위원 만장일치에 이어 강목발이 연극 뒤 '이번 대상은 너희야'하고 이야기해줘 무엇보다 기뻤다"고 활짝 웃었다.

03.jpg
▲ 고능석 극단 현장 대표./박일호 기자

전국대회 출전과 관련해 그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고 대표는 "전국대회에 서울팀이 출전하게 된 것은 그만큼 지역 연극의 질적 성장이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매우 유익한 대회가 되리라 본다"면서 "최고의 극단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면 모두에게 큰 자극이 되리라 본다. 과거에 서울팀이 출전하지 않은 것은 스크린쿼터제와 같은 이치였다. 하지만 질적 성장이 이뤄졌기 때문에 한번 해볼 만하다는 생각도 한다. 현 작품의 밀도, 리듬, 템포가 더 자극을 받아 좋은 현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본다"고 소신을 밝혔다.

경남을 대표해 나가는 자리인 만큼 잘하고 싶은 의욕도 있다. 그러나 상황은 여의치 않다. 현장이 지난 4월 15일과 16일 함양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한 강목발이가 대한민국연극제에 앞서 무대 위에서 하는 마지막 공연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 이전 극단 현장이 잡혀 있던 일정 탓이다. 현장은 다른 극단과 달리 상근배우가 있다. 직장인이 직장에 출근하는 것과 같이 상근배우들은 매일 극단 사무실로 향한다. 그곳에서 현장은 마임, 정극, 뮤지컬, 아동극 등 다양한 연극을 연다. 1년에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스케줄을 소화해야만 연극배우들의 삶이 보장된다. 그 때문에 강목발이를 적극적으로 연습할 시간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일정이 빠듯하지만 고 대표에겐 나름의 전략이 있다.

고 대표는 "연극제에는 많은 관람객을 채우는 데 목적을 두는데 우리는 그 부분에 신경 쓰는 대신 극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에 소박하지만 밀도 있는 모습을 넣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고 대표가 말한 중요 장면은 굿하는 장면이다. 굿하는 장면이 웅장했으면 하는 조언도 받았지만 오히려 굿하는 장면은 더 소박하게 표현하는 동시에 배우들의 밀도 있는 대사와 연기로 풀어가겠다는 계획이다. 그래서 이번 연극제에서 연기대상을 받은 최동석 씨에게도 더 다양한 표현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극단은 이제 100m 달리기 출발점에 섰다

고 대표는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연출상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대상에 극단 현장이 선정되지 않았을 때 왜? 하는 의구심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내가 만족하는 연극과 남들이 만족하는 연극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고 대표는 "이번 연극제에서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연출가는 연극의 질적 수준을 최대한 높이려고 노력하지만 그 한계치가 분명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연극은 결국 배우와 관객의 호흡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극단 배우들이 호흡하는 방법을 습득한 것 같다"고 전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