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경남-지리산]

어느 종합편성채널에서 윤이열(82)이라는 할아버지에 대해 다뤘다. 지리산 바위 아래 집을 짓고 산 세월이 40년이었다. 몸이 좋지 않아 지리산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건강은 되찾았지만, 아내·자식과는 연락 끊긴 지 20년 가까이 됐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가족이야기를 할 때 여전히 무뎌지지 않은 마음을 내비쳤다. 그럼에도 앞으로 시간도 당연히 지리산과 함께일 것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를 만나보기로 했다. 세 가지 걱정이 있었다. 주소도 없는 할아버지 거주지를 찾아야 한다는 것, 찾았다 하더라도 안 계실 수 있다는 점이었다. 설령 만났다 하더라도 할아버지가 취재를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무작정 길을 나섰다. 지리산 베틀바위 아래 산다는 것이 유일한 정보였다.

하동군 화개면 검두마을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주민에게 '베틀바위'에 관해 물었더니 "산에 사는 노인 찾으러 왔나 보네"라고 했다. 주민은 "찾기 쉽지 않을 텐데"라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비포장도로 끝까지 가서는 차를 대고 걷기 시작했다. 한번 잘못 들어서면 되돌리기 어려운 게 산길이다. 곱게 나 있는 산길이 아니었기에 '이쪽으로 가는 게 맞나'라는 불안감이 계속 밀려왔다.

그렇게 1시간 가까이 지리산을 올랐다. 주민 말에 따르면 어딘가에 할아버지 집이 나타나야 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또 다른 곳으로 뱅뱅 돌기만 했다. 그러던 중, 무성한 나뭇잎 사이 저 너머에 바위가 보였다. 그쪽으로 조금 가다 보니 파란 천막이 눈에 들어왔다. 1시간 20분 만에 할아버지 사는 곳을 찾았다. 바위 아래 흙집, 그리고 파란 천막을 덮어씌운 간이 건물이 있었다.

어제 만났던 사이인 양 "어르신 계십니까"를 반갑게 외쳤다. 적막했다. 바위 뒤편으로 가니 기도하는 공간이 있었다. 촛불이 켜져 있었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다.

걱정했던 세 가지 가운데 두 번째 단계인 '기다림'이 시작됐다. 주변은 새소리, 그리고 바람에 반응하는 나무 소리만 들렸다.

할아버지가 사는 공간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40년 세월 동안 하나하나 많은 것을 갖춘 듯했다. 한쪽에는 토마토·가지와 같은 채소들이 열려 있었다. 불은 들어오지 않았지만 전등도 있었다. 불 밝히는 데 쓸 건전지도 많았다. 방송에서 할아버지는 건전지를 물에 넣고 삶았다. 그렇게 하면 오래 쓸 수 있다고 했다.

두 시간, 세 시간, 네 시간, 그리고 다섯 시간…. 어느새 어둑어둑해졌다. 밤 하산 길은 자신 없었다. 미련을 버리고 더 늦기 전에 산에서 내려왔다. 며칠 후 다시 찾을 계획이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방송을 봤을 때 할아버지에게서 외로움이 전해졌다. 취재뿐만 아니라 잠시나마 말동무라도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그러지 못한 아쉬움이 짙다. 지리산에서 건강히 오래오래 사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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