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경남-대중가요 속 경남]하동 출신 작사가 정두수

1941년, 다섯 살 아이는 외할머니·이모와 함께 하동장에 갔다. 아이는 하모니카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이를 본 이모는 시집가기 전 마지막 선물로 하모니카를 쥐여주었다. 아이는 그때부터 틈만 나면 뒷동산에 올라 하모니카를 불었다. 눈앞에는 섬진강 하동포구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아이는 이 마음을 훗날 노랫말에 담았다. 1966년 은방울자매가 부른 '하동포구 아가씨'다.

'하동포구 팔십리에 달이 뜰 때면 / 정한수 떠 놓고 손 모아 빌던 밤에 / 부산 가신 우리임은 똑딱선에 오시려나 / 쌍계사의 인경소리 슬프기도 한데 / 하동포구 아가씨는 잠 못 들고 울고 있네'

하지만 이것만으로 성이 차지 않아 같은 제목의 다른 노랫말을 만들었다. 1972년 하춘화가 부른 '하동포구 아가씨'다.

'쌍돛대 임을 싣고 포구로 들고 / 섬진강 맑은 물에 물새가 운다 / 쌍계사 쇠북소리 은은히 울 때 / 노을 진 물결 위엔 꽃잎이 진다 / 팔십리 포구야 하동포구야 / 내 님 데려다주오'

작사가 정두수(79) 씨 이야기다. 이름 석 자만으로는 선뜻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설명해야겠다.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 들고양이들의 '마음 약해서' 같은 노래를 만든 작사가다. 한평생 만든 노래만 3500곡이 넘는다.

그는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에서 태어났다.

"하동에는 지리산이 있고, 섬진강이 있고, 한려수도가 있습니다. 제 아호가 삼포(三抱)입니다. 세 가지를 관대하게 품었다 이거죠. 태어난 하동 고전면 성평리는 금오산 아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별을 따는 마을이라 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러한 어릴 적 기억이 몸에 배어있다 보니 노랫말로 샘물같이 뿜어나오는 거죠. 아무리 길어 올려도 계속 솟아나더군요. 그래서인지 제 글을 두고 흔히들 '차 맛'이라고 하더이다."

고향 관련해 만든 노래만 67곡이다. 학창시절 부산서 학교에 다녔는데, 방학 때면 뱃길로 고향을 찾았다. 이때 마음을 담은 노래가 이미자가 부른 '삼백 리 한려수도'다. 이 밖에 '섬진강', '지리산', '섬진강 연가', '노량대교', '내 고향 하동포구', '하동사람' 같은 노래를 만들었다. 스스로도 고향 관련 노랫말이 너무 많다는 걸 느꼈다. 애써 피해서 그 정서만 담은 것이 '꽃잎 편지', '목화 아가씨', '감나무골', '아랫마을 이쁜이' 등이다.

그의 휴대전화 컬러링은 나훈아가 부른 '물레방아 도는데'이다. 이 역시 그가 만든 노래로, 일제강점기 고향과 작별하고 전쟁터로 향한 삼촌에 대한 마지막 기억을 담고 있다.

이러한 노래 대부분은 이미자·나훈아·남진·하춘화 같은 당대 최고 가수들이 불렀다. 여기서는 진주 출신 남인수(1918~1962) 이야기가 덧붙는다.

"남인수 선생이 고향에서 폐결핵 요양을 하고 있었죠. 고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가수지망생 친구와 무턱대고 남인수 선생을 찾아갔어요. 저는 직접 쓴 시를 보여줬습니다. 남인수 선생은 아주 좋다면서 나중에 같이 음악 하자는 말을 했죠. 군대 다녀오니 선생은 이미 세상을 뜬 후였습니다. 같이 작업하지 못한 한이 남아서 이미자·나훈아·남진 같은 가수들에게 제 열정을 모두 쏟아부었죠."

그는 대부분 노래를 작곡가 박춘석(1930~2010)과 호흡 맞췄다. 서울서 자란 박춘석은 "아름다운 고향을 품은 당신이 부럽다"면서 하동을 함께 찾아 곡 작업을 했다고도 한다.

정 작사가는 시간이 지나서 강원도 홍천, 충북 보은, 경북 문경 관련 노랫말도 만들었다. 그곳 사람들이 '하동 노래만 하지 말고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노래도 만들어 달라'는 이유였다. 관련 노래비가 전국에 14개나 되는 이유다.

그는 자신이 만든 수많은 노래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건 이미자가 부른 '고향의 꿈'이라고 한다. 현재 그가 살고 있는 곳은 경기도 광주시다.

"스무 살 이후 서울에 정착해 지금껏 타향살이하고 있습니다만, 고향에 대한 연정을 버릴 수는 없죠. 어릴 때 눈에 담았던, 마음에 품었던 것들…. 지우려 하면 더 고통스럽죠. 유언장 같은 마음으로 쓴 노래가 '고향의 꿈'입니다. 하동 노래의 결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접 한 가락 들려주었다.

'지금쯤 고향 집에는 떠날 때 심어놓은~ 하얀 목련꽃이 달빛에 젖으면서 곱게 피겠네~ 몸은 떠나도 마음속에 사무치는 고향~ 아득한 고향 하늘에 구름이 흘러갈 때~ 내 마음은 고향 하늘에 여울져 흘러서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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