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울수록 단맛 강해져, 설날 전후 가장 맛 좋아

# 어릴적 강렬했던 첫 만남

어린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가 산 속에 움막을 짓고 농사를 지으시던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함께 살던 큰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졌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왜냐하면 마을에서 멀지도 않은 뒷산에 농사를 핑계로 움막까지 지어 사실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두 분의 첫 손자로 사랑을 독차지했던 나는 가끔 그 움막에서 함께 지냈다. 가뭄이 들었던 여름날이었을까? 해가 중천에 떠 움막 안이 답답했던 나는 뒤편의 밭으로 올라갔다. 무엇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다.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나 하는 불만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지금쯤 아래 마을에선 사촌 누나들과 이웃 형들이 멱도 감고 공기놀이도 하며 재밌게 놀고 있을 것이다. 마른 흙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먼지로 일어났다. 절망적으로 고개를 숙였는데 순간 빨갛고 조그만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딸기였다! 할아버지 상에나 오를 거칠고 쓴 나물들이겠거니 싶었다. 그간 예사로 봤던 것이다. 그런데 그 투박한 잎 아래로 몸을 숨기고 있었던 것은 딸기였던 것이다. 도둑질이라도 하듯 따 먹었다. 가뭄에 말라 육질은 단단했고 신맛이 강했다. 때문에 세 알을 채 못 먹었지만 왠지 끌리는 맛이었다.

벽장에 숨겨둔 사탕을 훔쳐 먹듯 틈틈이 몇 알씩 따 먹으며 고된(?) 움막생활을 버텼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마도 그 강한 신맛이 각인되었던 모양이다. 때문에 나에게 딸기는 언제나 여름이다.

진주 수곡 딸기./김구연 기자 sajin@

# 내 딸아이 추억이 되다

30여 년이 지난 몇 년 전 여름, 그 사이 두 분은 돌아가셨고 당시 내 또래의 딸이 내게 왔다. 유치원을 다녀온 딸아이의 간식으로 내가 만든 것은 딸기셰이크다.

지난 초봄, 딸기를 손질해서 한 번 먹기 적당한 양으로 위생봉투에 싸 냉동실에 보관했었다. 믹서에 우유와 꿀을 넣고 간다. 너무 퍽퍽해도, 너무 묽어도 안 된다. 몇 번 하니 요령이 생긴다. 티스푼으로 떠먹기 좋을 정도면 된다.

지금은 초등학생이 된 딸은 아직도 그날의 기억을 이야기한다. 나도 아이에게 딸기로 각인한 기억을 선물한 것이다.

그리고 그 두 기억엔 '여름딸기'에서 '겨울딸기'로, '일본딸기'에서 '국산딸기'로 변한 딸기의 변천사도 녹아있다. 내가 어린시절 먹었던 여름딸기는 일본딸기였고, 딸에게 만들어 준 딸기셰이크의 딸기는 국산 겨울딸기다.

   

# 겨울딸기

딸기 취재를 위해 찾은 수곡면과 대곡면은 모두 하우스 겨울딸기를 재배한다. 국산 종자인 '설향'은 껍질이 부드럽고 수분이 많아 싱싱할 때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굳이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딸기는 갓 따서 그냥 먹는 것이 가장 좋다. 겨울딸기는 설날 전후로 나오는 것이 가장 맛있다. 가장 추울 때 맛있다는 말인데 기온이 떨어지면 딸기가 속으로 익어 단맛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시금치가 이즈음 단맛이 강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조리가 필요 없는 딸기를 맛있게 먹기 위해선 잘 고르는 것이 첫 번째 관문이다. 모든 과일이 그렇듯 딸기도 꼭지가 파릇파릇하고 싱싱한 것을 골라야 한다. 과일의 선도를 알아보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그리고 붉은 색이 전체적으로 선명하고 광택이 있으며 표면의 씨가 육질에 싸여 속으로 들어간 것이 맛있다.

또한 마트나 시장에서 딸기를 구입할 땐 포장용기 겉 부분만 보고 사면 안 된다. 투명한 도시락용기의 경우 들어서 속을 보고 사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겉은 윤기가 나는데 속은 뭉개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 온 딸기를 손질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가정에선 딸기 꼭지 뒷부분 과육까지 잘라내고 물에 씻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잘려나간 과육 부분으로 딸기의 비타민 성분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물에 오래 담가도 안 된다. 수분이 많고 껍질이 약한 딸기는 흐르는 물에 잠깐 씻어 꼭지를 따서 먹는 것이 좋다.

딸기의 잔류농약에 대해 걱정하는 분도 많다. 하지만 겨울딸기는 딸기 꽃의 수정을 위해 벌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벌은 농약에 매우 민감해서 독성이 강한 농약은 사용할 수가 없다.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 분들은 식초나 소금물에 잠깐 담갔다 내면 된다.

씻은 딸기를 설탕에 찍어 먹는 분들도 있는데 이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설탕과 함께 먹으면 딸기의 비타민B 성분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반면 딸기는 유제품과 함께 먹으면 좋다고 알려져 있다. 우유가 딸기의 신맛을 중화해 주기도 하고, 딸기에 거의 없는 단백질과 지방, 칼슘을 보충해 주기 때문이다. 우유, 요구르트 등과 따로 먹어도 좋고, 믹서에 갈아 먹어도 좋다. 단맛의 유혹을 못 버리는 사람은 생크림에 찍어 먹거나 믹서에 갈 때 꿀을 넣어도 좋다.

딸기는 잼으로도 많이 만들어진다. 흔히 값싼 중국산 등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농가에 따르면 잼 용으로도 국산이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공동 선별장에서 잼 용 딸기를 따로 선별하기도 하고, 부지런한 농가는 5월이 넘어서도 잼 용 딸기를 출하한다고는 하나 벌이에 비해 드는 품이 더 든다고 한다. 딸기를 14개월 농사라고 하니 그 농가 입장에선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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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취재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기업 ㈜무학이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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