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이나 논을 가는 '겨리'라는 쟁기가 있다. 흙살이 두꺼운 평지 옥답은 보통 쟁기로 갈지만 땅심이 고르지 못한 거친 자드락밭이나 발이 푹푹 빠지는 구렁논은 이 겨리로 갈았다. 두 마리 소를 나란히 세우고 곧은 멍에를 얹어 함께 끌게 한 것이 겨리다. 한 마리가 끄는 호리보다 힘이 좋아 땅을 깊게 갈 수 있어 농사는 잘되었지만 두 마리 소를 함께 부리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겨리질을 하려면 자기 소와 세를 주고 빌린 소를 함께 부려 썼다. 논밭갈이가 끝날 동안 부리는 집에서 여물을 주고 외양간을 함께 썼다. 멍에를 같이 메고
메타세쿼이아가 줄지어 선 울타리 너머로 하루 일을 끝낸 크레인이 무거운 짐을 부리고 석양을 받으며 쉬고 있다. 자그마한 몸집에 나이 지긋한 은발 사내가 걸어온다. 지나치던 자전거가 멈추고 반갑게 손을 내민다. 사내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무어라 하면서 손을 잡고 어깨를 토닥인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사람과는 한참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다. 퇴근 차량이 밀리는 도로에서 누군가 경적을 울리며 이름을 부르자 손을 흔들어 답한다. 거제에서 조선소 쇳밥 먹은 사람들이라면 이 사내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
한국은 주몽의 나라였다. 우즈베키스탄 10대 소년에게 주몽으로 처음 알게 된 한국은 막강한 이웃 중국에 꿀리지 않는 작지만 강한 나라로 새겨졌다. 노디르백 마흐무드조노프(31) 씨는 그 한국에서 10년이 넘게 조선소 노동자로 살았다. 그동안 결혼도 하고 아이도 태어났다. 강산이 한 번 바뀌는 동안 주몽으로 기억되었던 한국을 더 많이 알고 싶어 여러 곳을 여행했다.이방인이란 벽이 생길까 싶어 회사 한국 동료와 어울리는 자리에도 빠지지 않았다. 동료들은 쾌활하고 밝은 그를 살갑게 대했다. 그러나 중앙아시아와 한국은 지리나 문화적인 거리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 신청은 온 나라가 휘청거린 사건이었다. 기업이 파산하고 거리엔 실직자가 넘쳐났다. 그러나 2000년대 초 거제에는 일거리가 넘쳐났고 사람들은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외환위기 태풍을 맞아 회사에서 정리 해고된 직장인들이나 경기 침체로 문을 닫은 자영업자들이 바람 비껴간 조선소로 몰려들었다. 현장직은 공고를 졸업한 이들과 자체 교육 과정을 수료한 이들을 채용했었으나 일감이 늘어 공채 인원만으로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협력업체는 몰려든 사람들을 현장에 바로 투입해 쉬운 작업부터 가르치며 일을 시
거제에서 조선소 망치 소리가 제대로 울리기 시작한 건 1980년대 초반이었으나 첫 삽을 뜬 건 그보다 10여 년 전이었다. 길이 뭍과 이어지면서 조선소에 밥줄을 이으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1970년 약 5만 명이던 섬사람들이 강산이 한 번 변하는 사이 배로 늘어 10만이 되었다. 조선소를 건설하고 처음으로 배를 짓던 당시 노동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불모지를 맨손으로 개척하는 수준이라 시행착오가 잦아 잔업과 철야를 밥 먹듯 했다. 병역 특례 업체라 군대식으로 속칭 까라면 까라는 분위기와 지금과 비교 불가한 원하청
배는 운송 수단으로 만들어졌지만 인류 문명 발달과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대륙 간 무역과 이주에 큰 역할을 하였고 강대국 사이 전쟁과 식민지 개척 선봉에 있었다. 고대 세계대전으로 불리는 지중해 포에니 전쟁에서 해군력이 약했던 로마를 승리로 이끈 갤리선은 중세에 이르기까지 지중해를 누볐다. 바이킹은 랑스킵을 타고 다니며 무자비한 약탈과 전쟁으로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이 해적질은 북유럽 민족이동에 따른 문명 전파와 새로운 땅의 개척과 교역 등 다양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이끈 산타마리아호는 아메리카 대륙
석탄을 가득 실은 무개화차를 끝없이 매달고 가는 기관차는 힘에 겨워 기적을 비명처럼 내지르며 엉금엉금 기어갔다. 한국전쟁 피난민이 몰려들어 지은 판잣집들은 다닥다닥 조개무지 포갠 듯이 부산 산비탈을 타고 올랐다. 용호동 소막 마을은 일본이 소를 수탈해가며 검역 시설로 지은 소 막사를 피난민들이 판자로 칸을 지르고 구들을 놓아 살던 판자촌이었다. 모든 게 부족하던 시절이었던 1960년대 말, 학교도 당연히 부족했다. 아이들은 2부제 수업으로 생긴 반나절 놀거리를 찾아 미로 같은 골목을 헤집고 다녔다. 아이들 달음질로도 따라잡을 수 있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 경칩도 지났지만 바람 끝 아직 매섭고 동백이 통꽃으로 툭툭 떨어지는 2019년 거제는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았다. 3월 7일 오후 5시가 넘어서자 퇴근하는 조선소 노동자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다. 공정이 밀린 부서는 늦게까지 잔업을 하기에 업무 종료 시각이 제각각이므로 사무실에서 공장에서 야외 작업장에서 독과 안벽 선박에서 일손을 놓고 한꺼번에 퇴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거리로 나선 노동자들 = 노동자들은 샤워실이나 사내 식당도 들르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 가까운 회사 출입문으로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