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정부 쓰레기 매립장 추진하자
지역단체·주민·학계 보존 운동
화석박물관 지어 무료 운영하고
방문자 안내 등 업무 자원봉사
매년 화석 3000여 개 발굴

독일 남부지방인 헤센주 다름슈타트시 인근에 있는 메셀 피트(Messel Pit)는 세계 4대 화석산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화석의 보물창고라고 불릴 정도다. 1995년 독일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이 화석산지는 신생대 에오세인 4800만 년 전에 분화한 화산 분화구 지형으로 화석의 양과 질, 다양성 면에서 세계적으로 손꼽을 정도이다. 화석 보존 상태도 뛰어나다. 특히 말과 원숭이 등 포유동물 진화 초기 단계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정도로 학술적 가치가 높으며, 현재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다. 한때 움푹 팬 지형 탓에 쓰레기 매립장으로 묻힐 뻔했으나 지역 주민과 단체, 학계가 중심이 돼 오랫동안 보존 운동을 펼쳐 지금 모습을 지켜냈다. 주 정부의 무관심과 개발에 맞서 시민의 힘으로 자연유산이 보존된 상징적인 화석산지라서 의미가 더 깊다.

독일 헤센주 다름슈타트시 인근 메셀에 있는 화석박물관 전경. /이영호 기자<br>
독일 헤센주 다름슈타트시 인근 메셀에 있는 화석박물관 전경. /이영호 기자

◇'시민운동 상징' 메셀 화석박물관 = 박물관은 독일 대표 관문인 프랑크푸르트에서 승용차로 40분 거리에 있어서 접근성이 좋다. 메셀은 화석산지가 발견된 곳 지명이다. 주민 3000~4000명이 사는 조용한 시골 마을 같은 곳이다. 마을 주택가에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화려한 박물관은 아니다. 독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통식 주택을 고쳐 만든 것으로 보이는 아담한 박물관이다. 건물 두 동 중 한 동만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1970년대 초 주 정부가 화석산지를 쓰레기 매립장으로 사용하려고 하자 이를 반대했던 메셀지역 단체와 주민들이 직접 세운 것으로, 1980년 건립됐다. 지금도 중앙이나 지방정부 지원 없이 지역 단체 지원과 기부 등으로 주민이 직접 운영한다. 관람료는 무료다. 지역 주민 30여 명이 자원봉사로 참여하고 있다. 박물관 운영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일이나 방문자 대상 안내 역할을 맡고 있다.

메셀 지역 주민과 단체 등이 화석산지 보존 운동을 펼쳐된 사진으로, 화석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이영호 기자<br>
메셀 지역 주민과 단체 등이 화석산지 보존 운동을 펼쳐된 사진으로, 화석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이영호 기자

취재진 안내를 맡은 올해 79세인 주민 그룬딩어 씨도 이곳 토박이로 박물관 소개와 운영 현황, 전시물 등을 자세하게 설명해줬다. 코로나19 탓에 박물관도 2년 가까이 문을 닫았다가 최근에 다시 열어서 아직 방문객은 많지 않다고 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독일과 유럽 여러 나라 학생들 견학 방문이 많았다고 알려줬다.

박물관 1층은 오랫동안 비행기 연료와 가정용 등으로 사용했던 오일셰일(oil shale)을 채취했던 화석산지 과거와 화석 발굴 시기까지 역사, 오일셰일이 나왔던 암석,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다.

발굴된 주요 화석은 2층에 있다. 유인원과 박쥐 등 포유류, 뱀과 악어 등 파충류, 조류, 어류, 식물 화석 등 다양하고 풍부하게 발굴된 화석이 눈길을 끈다.

메셀 화석박물관에 전시 중인 유인원 화석으로 털 모양 등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화석 보존 상태가 매우 좋다./이영호 기자<br>
메셀 화석박물관에 전시 중인 유인원 화석으로 털 모양 등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화석 보존 상태가 매우 좋다./이영호 기자

그중에서 손상 없이 온전한 상태로 발견된 희귀 유인원 화석을 소개했다. 털 모양과 마지막 먹이 흔적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매우 좋았다. 그런데 진본이 아닌 복제본이라고 했다. 체계적인 보존과 관리가 될 수 없었던,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기 이전, 화석 가치를 몰랐던 지역 주민이 몰래 헐값에 팔아넘겼는데, 지금은 노르웨이 오슬로 자연사박물관에 있다고 설명했다. 화석산지의 체계적인 보존·관리 중요성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그룬딩어 씨는 설명하는 내내 비록 박물관이 소박하고 작지만 개발 위기에서 지켜낸 시민운동의 상징적인 건물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주 정부가 화석산지를 쓰레기 매립장으로 조성하려고 해서 지역 단체와 주민, 학계가 중심으로 보존 운동을 펼치며 18년간 싸워서 지켜냈다. 이 박물관은 그런 상징적인 공간이다."

독일 메셀피트 화석산지에 설치된 화석산지 전체 모습을 소개한 표지판. /이영호 기자<br>
독일 메셀피트 화석산지에 설치된 화석산지 전체 모습을 소개한 표지판. /이영호 기자

◇중요 관광자원으로 활용한 방문자센터 = 메셀 피트 화석산지가 있는 방문자센터는 화석박물관에서 3㎞ 정도 거리에 있다.

헤센주는 주민 등 지속적인 반대와 함께 1987년 법원의 쓰레기 매립장 건립 계획 승인 철회 판결이 내려지자 사유지였던 메셀 피트를 사들여 보존에 나섰다. 이후 프랑크푸르트 젠켄베르크 자연연구협회가 1991년 본격적인 발굴과 연구를 시작했고, 1995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시간과 메셀의 세계'를 주제로 한 방문자센터는 2008년 건립됐고 2010년 8월 27일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위탁 운영되고 있다. 방문자센터 내에는 메셀 피트 지하 500m 깊이까지 시추한 코어를 전시해 이곳의 퇴적층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방문자센터는 화석산지로 바로 연결된다. 개별로는 갈 수 없고 입장료를 내면 일반인과 가족 단위로 나눠 가이드 투어(1~2시간)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 메셀 피트를 철저히 보호하고 관리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한다. 가이드는 일반 직원이 아니라 생태학을 전공한 박사 출신 전문가가 맡았다.

독일 메셀피트 화석산지 방문자센터 내부 모습/ 이영호 기자<br>
독일 메셀피트 화석산지 방문자센터 내부 모습/ 이영호 기자

입구를 들어가려면 두 개의 철문을 지나야 한다. 또 메셀 피트 주변은 철조망으로 벽을 세워 화석 훼손이나 도난 등을 막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메셀 피트 전체를 조망하는 전망대가 나온다. 남북 1㎞, 동서 700m, 깊이 60m 규모인 메셀 피트는 분화한 화산 지형으로 가운데가 움푹 꺼졌다. 쓰레기 매립장 건립이 추진된 주요 원인이 됐다. 낮은 지형 때문에 홍수 등 원인으로 오랜 기간 신생대 다양한 동식물이 겹쳐 묻히면서 화석이 됐다.

첫 화석이 발견된 건 1875년이다. 그 당시에는 화석 특성상 잘 부서지는 데다 보존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 사진과 기록만 남아 있다고 한다.

본격적인 화석 발굴이 이뤄진 이후 최근까지 신생대 포유동물, 파충류, 어류, 곤충류, 식물류 등 화석 4만여 개가 발굴됐다. 메셀 피트에서 발굴된 화석은 질과 양, 다양성에서 우수하고 보존 상태도 뛰어나다. 특히 포유동물 진화 초기 단계를 파악할 수 있는 화석이 많이 발굴돼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가이드 투어는 화석산지 바로 옆으로 난 임도를 따라 맨 아래쪽에 있는 분화구 중앙으로 이어졌다. 가이드는 투어 중간에 미리 보관해놓은 발굴된 화석 표본을 보여주며 자세하게 설명해줬다.

화석산지 북서사면에 화석산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형 콘크리트가 무더기로 쌓여 있는 낯선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주 정부가 쓰레기 매립장 건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버린 콘크리트 건축 폐기물이다. 과거 잘못된 개발을 미래 세대에게 알리고자 치우지 않고 그대로 뒀다고 한다. 현재 독수리가 둥지를 틀면서 주요 서식처가 됐다고 했다.

분화구 한쪽에서는 프랑크푸르트 젠켄베르크 자연연구협회의 화석 발굴 작업이 한창이었다. 매년 새로운 화석 3000여 개가 발굴되고 있다. 여기에서 발굴된 화석이 워낙 대량이다 보니 독일 각 지역에 있는 박물관 등에 분산 전시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젠켄베르크 자연사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에는 메셀 피트에서 발굴한 화석을 전시한 공간이 따로 있을 정도로 메셀 피트 화석이 중요 전시물이다.

주 정부는 앞으로 방문객을 위해 10억여 원을 들여 메셀 피트 전경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케이블카 같은 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다. 화석산지를 전혀 훼손하지 않는 방법으로 추진한다고 한다.

/허귀용 기자

 

 

관련기사

관련기사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