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외침, 메이데이 (1) 1971년생 박철희

박철희 씨는 그날 사고로 눈앞에서 동생을 잃었다. 현재 박 씨가 사는 서울시 강서구 마곡동에는 마곡MICE복합단지 신축 공사가 한창인데, 가림벽 위로 삐죽 선 크레인은 그를 여전히 두려움에 떨게 한다. 

고향은 전라남도 목포. 아버지 고향은 전라남도 화순. 살기 어려우니 목포까지 가셨다 어머니를 만나셨다. 삼형제를 낳았다. 나는 둘째. '그때' 사망한 건 동생.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경기도 고양시로 이사했다. 잠깐 살다가 서울로 왔다. 대학을 마치고 학과장 추천을 받아, 당시만 해도 좋은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IMF 외환위기가 겹쳐서 정직원은 못 됐다. 그때부터 여러 일을 했다. 고등학교 시간강사, 사업, 막노동. 대학교 졸업하고 줄곧 그랬다.

택배 일도 했었는데, 당시 동생은 하던 일이 잘 안 돼 친구 소개로 울산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소속으로 일했다. 굉장히 좁은 데서 기어 다니고, 먼지도 많대서 일이 끝나면 전화해서 자주 동생 안부를 묻곤 했다.

동생이 한번 와보겠느냐고 물었다. 동생이 삼성중공업으로 옮겼던 때다. 할 수 있을까, 갔다가 일을 시작했다. 그때가 2016년 11월. 태어나서 거제도는 처음 가봤다. 동생과 회사에서 마련해준 숙소에서 지냈다. 32평 정도에 10여 명도 살았다던데, 우리가 갔을 때는 7∼8명가량이었다. 삼성중공업에서 마틴 링게 프로젝트 등 수주가 많아져 노동자가 많이 몰렸다.

▲ 2017년 5월 1일 발생한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피해자 박철희 씨가 5년 전 그날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다솜 기자
▲ 2017년 5월 1일 발생한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피해자 박철희 씨가 5년 전 그날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다솜 기자

우리는 전계장을 부착하고 연결하는 생소한 일을 했다. 전계장 일을 하면 조금 더 나은 환경으로 간대서, 동생도 거제로 오면서 일을 옮겼다. 우리는 야간근무를 찾아서 했다. 둘 다 지방까지 와서 힘든 일 하는데, 가족 생각해서 하는 거니까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쉬는 날 거의 찾지 않고 일했다.

몸이 망가지는 일이었다. 예전 석탄공만 진폐증 검사를 받는 줄 알았다. 중공업도 건강검진에서 진폐증 검사를 받는다. 쇳가루 섞인 먼지. 한 곳에 보통 10분 만에 장비를 달고 나오는데, 뿌옇다기보다 시커멓게 돼서 나온다. 마스크를 안 할 수가 없다.

2017년 5월 1일. 징검다리 휴무라서 4월부터 위에서도 인원 확인을 많이 했다. 공기가 6월까지였으니까. 공정이 제대로 안 돼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 말이 많았다. 우리는 계속 일하겠다고, 평소처럼 일을 시작했다. 모든 것이 똑같았다.

오후가 되자 화장실을 가기 위해 빨리 내려왔다. 현장은 화장실 쓰는 게 힘들다. 내려왔다 올라가면 휴게시간이 끝나니까. 현장에는 화장실이 한 군데였다. 남자나 여자나 정말 힘들게 볼일을 봐야 했다.

 

동생 소개로 조선소서 함께 근무
노동절 크레인 사고로 동생 잃어
공기 빠듯하다며 안전 조치 무시

다음 일할 곳의 도면을 보다가 사고가 났다. 모르겠다. 난 살려고 그랬는지 크레인이 움직이는 게 위험해보여 계속 쳐다봤다. 동생은 도면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크레인 두 대가 꽝 부딪치면서 넘어오는 게 보였다. 눈앞이 캄캄해진다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리니까 나도, 동생도 튕겨 나갔다.

처음에는 동생이 다친지도 몰랐다. 다들 누워 있었다. 팔다리가 떨어져나가고, 신음도 못 내고…. 도저히 사내구조대로는 안 되겠다, 119에 신고했다. 다른 이들은 사내구조대에 신고했다. 쓰러진 붐대에 깔린 사람을 어떻게 옮기지를 못하니까.

사내구조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더라. 정신을 차려 피를 많이 흘린 동생을 지혈할 것을 찾았다. 일단은 겉으로 팔다리가 없는 사람이 보여 먼저 치료했고, 동생은 등에 상처가 있었는데 하늘을 보며 누워서 상처가 있는 줄 몰랐다.

119 구조대까지 왔는데, 지상에서 20m 이상 높이라 이송이 안 되더라. 사고를 냈던 골리앗 크레인으로 부상자를 내렸다. 동생은 내가 옆에 있었는데도 어쩌다 제일 마지막으로 들려갔다. 병원 가서 심정지로 사망했다. 나도 와이어에 살짝 맞아서 왼쪽으로는 다 멍이 들었던 상태라 병원에 있었다. 동생 장례를 마무리하고 서울로 왔다.

당시 공정이 빠듯해서 현장에서는 같이 해선 안 되는 작업이 병행됐다. 잘못된 작업이었다. 감독관, 정말 자주 왔다갔다 했다. 마지막에는 감독관도 작업을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문제가 보여도, 본인이 예전에 지적한 것을 승인해야만 다시 감독관 계약을 할 수 있으니까. 막바지 갑은 삼성중공업이었다. 처음 삼성중공업에서 안전교육 받으면서 매번 강조됐던 것들이 공기를 못 맞추니까 다 넘어갔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로 왜 수장에게 책임을 묻느냐면, 그들에게 사과와 대책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업은 하청했다는 이유로 아무 책임을 지지 않았고, 기껏해야 벌금 내고. 사람이 몇이나 죽었는데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말이 되나. 그때, 전태일 열사만큼 크레인 사고가 이슈가 돼서 앞으로 바뀔 것이다 생각했다. 대선 후보도 모두 우리에게 무릎 꿇고 이번만큼은 고치겠다고. 그랬던 사람이 당선이 돼도 바뀌지 않았다.

솔직히 피해자는 가장 먼저 사과를 받고 싶다. 누구든 사과를 해야 하는데 법원에서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그 자리에 있어 잘못이라고 판결을 내렸다. 어떻게 우리 잘못인가. 우리는 죽으려고 일하러 나간 것밖에 안 된다.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다. 노동자가 두 시간 넘게 일하고 10분 쉴 공간이 그곳밖에는 없었는데. 새로운 증언이 나오고, 대법원에서 결과가 뒤집혔다.

 

사고 후엔 길 걷는 것조차 힘들어
산재 심사 땐 끔찍한 당시 떠올라
동생 얼굴 보려 현장 사진 찾기도

일을 다시 시작한 것은 지난해. 가족이 곁에서 많이 도왔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는 일을 하지 못했다. 길을 걷는 일도 많이 힘들었다. 특히 여기는 주변에 크레인 같은 장비가 많아서 누군가와 같이 안 다니면, 그 밑으로는 전혀 못 지나간다. 장거리 운전도 못한다. 모든 데서 사고가 날 것 같다. 멀쩡한 건물에 들어가도, 터널에 들어가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1호 산재 환자가 됐고, 원래 2년인데 1년 더 연장해서 3년 승인을 받았다. 3개월에 한 번, 근로복지공단에서 다시 심사를 받아야 했다. '내가 정육점 고기인가?' 힘들어 죽겠는데 또 그날 기억을 끄집어내고, 등급을 판정하고.

개인병원 치료는 안 된대서 대학병원을 가면 길게는 2시간 기다렸다가 의사를 만나면 10분도 채우지 못하고 약만 받고 나와야 했다. 연장이 안 되면 당장 너무 힘들어지니까 어쩔 수 없었다. 그때는 정말 너무 힘들었다. 난 주목을 받은 사람이라 그나마 나았을 텐데, 다른 사람은 어땠을까 싶다. 왜 나았다고 그들이 판단하는지 모르겠다. 그날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 여전히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치료를 마쳐야 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유가족 서명을 하려고 제수가 거제를 가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동행한 적은 있다. 가보고 싶지 않다. 동료에게도 마지막 인사 나눌 때 알아서 건강히 살고 연락은 말자, 그냥 잊고 살자고 했다. 평생. TV에 거제가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

집이 넉넉하지 못해 나는 공부를, 동생은 일을 택했다. 군대 제대하고 많이 친해졌다. 서로 돈 욕심 없이 있는 한도에서 도우며 잘 지냈다. 명절에 가족이 모이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살아있었을 때는 사소한 고민도 들어주고 대화하고, 그래서 더 친밀했고 더 가슴이 아프다.

우리는 근태만큼은 잘하자는 신념이 있었다. 부모님을 닮았다. 휴대전화 시계가 고장 났었더라면, 그날 그냥 나가지 말자고 했을 텐데. 모든 것이 후회스럽고, 구조할 때도 왜 다른 사람을 먼저 신경 썼는지 모르겠다.

동생과 어깨동무하고 찍은 사진 하나 없더라. 동생이 보고 싶어서 사고 현장 사진을 봤다. 골리앗 크레인이 넘어진 사진을 확대하면 동생 얼굴이 보여서. 아무도 모른다.

 

용어 설명
△마틴 링게 프로젝트: 노르웨이 부근 북해에 고정식으로 설치하는 원유 채굴시설 일부 설비. 심해지층에 고정시켜 가스나 원유를 개발·생산하는 데 쓰인다.
△전계장: 전장(電裝)과 계장(械裝)을 합쳐 부르는 말. 전장은 선박에 전기장치를 설치하는 작업, 계장은 선박에 기계장치를 설치하는 작업을 말한다.
△진폐증: 대체로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를 위협하는 직업병으로, 분진을 들이마셔 폐에 생기는 섬유증식성 질병. 첫 공식 환자는 강원산업 삼표연탄공장 가까이 살던 서울시민 박길래 씨.
△붐대: 수직으로 세워 크레인 기둥에 연결된, 수평이나 일정 각도로 뻗은 철 구조물. 삼성중공업 사고 당시 크레인끼리 부딪쳐 붐대가 무너졌고, 노동자를 덮쳤다.
△감독관: 선박을 발주한 선주사 소속으로, 조선소에 상주하면서 선박 품질과 안전을 선주사 기준에 맞게 감독한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2018년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 씨가 석탄 이송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여 숨진 이후 지난한 과정을 거쳐 제정된 법.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저버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한다.
△전태일 열사: 노동자, 노동운동가. 1970년 11월 13일 박정희 정부와 자본기업에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분신. 한국 노동운동 상징.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