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외침, 메이데이 - 조난 신호에 응답하라

거제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하청업체 비정규직 6명 숨져
노동자 트라우마 현재진행형
내달 26일 파기환송심 '촉각'

거제도 앞바다에서 '조난 신호'가 들려온다. 누군가 마음이 갈 길을 잃었다고 외치고 있다. 그들은 2017년 5월 1일 오후 2시 50분쯤, 거제도 조선소에서 대형 사고를 겪었다. 그날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가 일어났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7안벽 해양플랜트 마틴링게 프로세스 모듈 건조 현장 메인덱에 있던 노동자들은 '쾅' 하는 소리를 들었다. 크레인 메인지브와 쇠밧줄이 덮친 메인덱에는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쉬던 노동자들이 있었다. 사고로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다.

트라우마로 13명이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다. 사고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 수에 비하면 지극히 적다. 그들은 살았으나 살았다고 말하길 주저한다. 산재 적용 기간은 이미 끝났거나 약물치료를 받으면서 산다. 그마저도 포기하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이들도 있다.

사고 당일은 '노동절'이었다. 1886년 8시간 노동제 쟁취를 위해 싸운 미국 노동자들을 기리는 날이다. 노동절이 오면 전 세계 각국에서 노동자 권리를 위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런 날에 노동자들이 죽고 다쳤다.

토탈 노르웨이 법인(Total E&P Norge), 에퀴노르(Equinor·노르웨이 국영 석유기업), 페토로(Petoro AS·노르웨이 국영 석유기업)에서 발주한 마틴링게 프로세스 모듈은 노르웨이 부근 북해에 고정식으로 세우는 원유 채굴시설 일부 설비였다. 공사 기간 38개월짜리, 사고 당시 공정률은 약 93%였다.

▲ /일러스트 서동진 기자 sdj1976@idomin.com
▲ /일러스트 서동진 기자 sdj1976@idomin.com

노동절은 휴일이지만, 막바지 작업을 앞두고 노동자들이 투입됐다. 대부분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15개 업체 하청 노동자들이 겹쳐 일했다. 같이 하면 안 되는 작업이 동시에 이뤄졌다. 바삐 일하던 노동자들이 한숨 돌리던 휴식시간에 사고가 났다. 노동자들이 좁은 공간에 몰린 탓에 피해가 컸다. 간이화장실과 흡연실이 고작인 휴게 공간은 중량물을 취급하는 대형 크레인 가까이 있었다. 삼성중공업은 크레인 충돌 방지를 위한 위험성 평가나 구체적인 안전 대책을 수립하지 않았다. 2016년에는 중장비를 옮기던 작업 차량이 넘어져 근처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숨졌고, 2015년에도 25m 아래로 떨어져 숨진 노동자가 있었다. 이전에도 삼성중공업에서는 크고 작은 산업재해가 빈번했지만, 대형 참사를 막진 못했다.

예견할 수 있는 위험이었다. 2017년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조사위원회는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원인을 이렇게 짚었다. '원청 생산 담당 부서에서 선박 인도일을 지키고자 작업공정을 재촉', '원하청 관계가 중첩되면서 무리한 작업공정 진행', '재해 발생 위험 증가로 이어지는 재해 발생 메커니즘 작동'.

메이데이(Mayday)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노동절, 또 하나는 조난 신호다. 선박에서 조난된 이들은 '나를 구하러 와 달라'는 의미에서 "메이데이"를 외친다. 마창거제산재추방연합의 도움을 받아 생존자를 만났다.

"진짜 왜 관심을 보일까. 그때 저에게 아무 이유 없이 100만 원을 그냥 주신 분이 계셨거든요. 사회운동 하시는 분인지 누군지도 잘 몰랐어요. 감사하게 생각은 하는데, 왜 줬을까. 그리고 왜 계속 이 사고에 관심을 보이는 걸까. 이게 좀 궁금했어요. 왜, 내가 이야기를 하면 뭐가 달라지는 게 있을까, 이런 게 되게 궁금했어요. 항상."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로 트라우마를 겪는 20대 청년이 물었다. 뭐가 바뀌긴 하느냐고. 왜 관심을 보이느냐고. 꼭 답해야 할 질문이었다. "아픈 기억을 꺼내 죄송하나 노동자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면 다시 꺼내야 한다"고 답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생겼는데, 여전히 현장에서는 수많은 노동자가 떨어지고 끼이고 부딪혀 죽고 있다.

생존자 한 명, 한 명이 하나의 답으로 다시 나뉜다. 누구는 크레인만 보면 심장이 두근거린다. 터널이 무너지거나 엘리베이터가 떨어질까 발길을 쉽게 내딛지 못한다. 마음의 상처가 깊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다. 가슴 속에 묵힌 화가 치밀어 오른다. 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밤새 그를 그리워한다.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피해자들에게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삼성에서 진심으로 피해자에게 사과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억울하진 않았을 거예요", "우리가 장례식장에서 계속 버틴 건 삼성이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은 진심 어린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피해자만 있고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사과는 책임자가 있어야 받을 수 있다. 책임자는 누가 지목할까. 사법부의 몫이다. 법원은 사고 현장 관리자를 업무상과실치사상, 안전조치의무 위반 등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재판장에 불러냈다. 그러나 1심에서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무죄가 선고됐다.

항소심에서 1심 일부가 파기되고, 무죄에서 유죄로 돌아섰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삼성중공업에 크레인 사고 책임이 있다고 했다. 대법원은 사고 현장 관리자에게 안전조치 의무가 있다고 내다봤다. 삼성중공업이 사업장 규모와 작업의 성격, 안전 보건상 뒤따를 수 있는 위험, 산업재해 발생 빈도 등을 고려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 판결이 뒤집히면서 사건은 다시 원점이다. 5월 26일 파기환송심을 앞두고 있다.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는 끝나지 않은 문제다. 우리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참사를 지켜만 봐야 한다. 지금도 계속되는 그들의 조난 신호를 더 많은 이들에게 들려주고자 한다. 우리는 이 조난 신호에 응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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