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 걸쳐 피 끓는 혁명의 계절…가고파시비 논란에 부치는 말 "가라"
4월이다. 미국계 시인 T.S.엘리엇이 '황무지'라는 시에서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한 4월이다. 엘리엇이 4월의 세계사적 비극을 두고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니겠지만 4월은 지구 상에 큰 사건이 많았던 달이다.
1861년부터 4년간 계속된 미국의 내전인 남북전쟁 첫 유혈이 흐른 날이 4월 19일이다. 이 전쟁으로 50만 명이 귀중한 목숨을 잃어야 했다. 또 중국에서는 마오쩌둥(毛澤東) 체제 말기인 1976년 저우언라이(周恩來)를 추모하고자 모인 군중을 탄압한 제1차 천안문사태가 4월 5일 시작됐으며, 1989년 6월 4일 천안문 광장에 모인 중국인들을 탱크와 장갑차로 무자비하게 진압한 제2차 천안문사태도 개혁의지가 강했던 후야오방(胡耀邦)이 그해 4월 15일 사망한 것을 계기로 그의 명예를 회복해 줄 것과 궁극적으로는 중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4월은 우리나라 역사에도 큰 획을 그었다. 1960년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이 있은 달이다. 더구나 4·19 혁명 도화선은 바로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반발해 우리 마산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가 계기가 됐으며, 4월 11일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의 시체가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면서 국민의 분노가 끌어 올랐고 결국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게 됐다.
그뿐이던가 1894년 4월 전봉준이 동학접주들과 함께 무장현(茂長縣)에 모여 탐관오리 숙청과 보국안민을 천명한 창의문을 발표한 달이기도 하다. 1년간에 걸친 동학혁명은 30만~40만 명이라는 희생자를 내는 엄청난 대가를 치렀지만 반봉건·반외세를 표방하며 일어난 최초의 민족운동이란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를 두고 시인 신동엽은 '4월은 갈아엎는 달'이라고 했다.
"…미치고 싶었다 / 4월이 오면 / 곰나루서 피 터진 동학의 함성 / 광화문서 목 터진 4월의 승리여 …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갈아엎는 달 /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일어서는 달."
요즘 마산역 앞 광장에 들어선 '가고파 시비'로 지역사회가 이은상 논란에 사로잡혀 소모적인 공방을 벌이고 있다. 허인수 마산역장의 제안으로 마산지역 로타리클럽 16곳이 돈을 보태 이은상 시비를 세운 것이 발단이 됐다. 허 역장이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가고파>를 잊지 못해 로타리클럽에 제안했고, 남마산로타리클럽 김봉호 회장 등이 제안을 받아들여 3000만 원을 들여 시비를 세웠단다.
역사적인 인물을 평가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이은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호·불호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마산의 긍지를 3·15 정신에서 찾는데 그 3·15정신을 '무모한 흥분으로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로 폄훼한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인물이 쓴 시를, 그것도 3·15정신을 폄훼한 인물의 시를 마산의 관문에 새겨 문학적 업적을 기린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래서 신동엽은 위선이 판치는 기막힌 현실앞에서 '껍데기는 가라'라고 외쳤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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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 /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 껍데기는 가라. // 그리하여, 다시 / 껍데기는 가라. …"
잔인한 달 4월이지만, 갈아엎어야 할 4월이었다. 그리고 껍데기를 벗겨내고 3·15정신을 다시 새겨야 할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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