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재발견-마산] 이름 사라졌어도 미더덕·아귀찜에 남은 '마산'

마산 바다는 사납지 않다. 육지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태풍이 다가오면 인근 바다에서 배들이 몰려든다.

그런데 이 순한 바다는 인간이 쏟아내는 각종 오·폐수를 떠안아야 했다. 1970~1980년대 수출자유지역이 한창 재미 좋을 때였다.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은 "전국에서 가장 더러운 바다였다"라고 한다. 다행히 인간이 뒤늦게라도 손을 내밀어 이제 '죽은 바다' 신세는 면했다.

이러한 시간 속에서도 이곳 바다는 먹을거리를 꿋꿋이 쏟아내고 있다.

마산은 미더덕 주산지다. 전국 생산량 가운데 70%가 진동면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 몫이다. 바다가 잔잔하고 수심도 깊지 않아 양식하기 좋은 환경이다. '물에서 나는 더덕'이라는 미더덕은 오래전부터 풍어제를 지낼 때 빠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미더덕 /박민국 기자

천덕꾸러기 취급받던 때도 있었다. 우리나라 모든 해안에 서식하는 미더덕은 양식장이나 선박에 달라붙으며 해를 끼쳤다. 그런데 1970년대에 이 지역에서는 불청객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피조개 양식장에 서식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이놈들만을 위한 양식에 눈길 뒀다. 나라에서는 없애는 데 힘을 쏟고 있던 터라 장려는커녕 제재를 가했다. 그러던 끝에 1990년대 들어서야 양식허가가 났다. 이후 2005년 진동에서 첫 축제가 열렸고, 2006년에는 특화사업으로 육성되기도 했다.

미더덕 동생쯤 되는 오만둥이는 좀 덜한 대접을 받는다. '여기저기서 막 자라 흔하디흔하다'고 해 이름에 '오만'이 붙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씹히는 맛'에서는 어느 음식에 뒤지지 않는다.

미더덕을 까는 아낙네들의 손길이 바쁘다. /박민국 기자

'아귀찜' 앞에 '마산'이 떨어질 수 없다. '마산 아귀찜'은 1960년대에 '혹부리 할매' 손에서 나왔다는 얘기가 있다. 당시까지 아귀는 흉측스럽게 생겼다 하여 내다 버려졌다. 장엇국 팔던 '혹부리 할매'는 어느 어부가 "버리기 아깝다"며 주고 간 것을 지붕에 던져두었다고 한다. 20일 정도 지나 바짝 말라있는 아귀를 보고서는 콩나물·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쪄보았다고 한다. 물론 훌륭한 맛이었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에 '건 아귀찜'을 전문적으로 내놓는 곳이 들어섰다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원조 증명서'를 보유하고 있는 식당이 따로 있기도 하다.

'아귀'가 표준어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아구'라 한다. 어느 여주인 고향이 전라도인데, 그곳에서는 '아구'라 불렀다는 것이 배경에 있다 한다. '아귀'라는 말이 불교에서는 '굶주림으로 괴로워하는 귀신'이라는 의미여서, 오늘날 '아구'를 표준어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아귀찜은 그 상차림이 소박하다. 동치미 국물 정도만 함께 따라나온다. 이러한 차림새를 두고 어떤 이들은 마산사람 기질과 연관 짓기도 한다. 즉 '수수한 상차림 속에 매운맛이 숨어있다. 어수룩하면서도 얕잡아 보는 이들을 그냥 넘기지 않는 마산사람 기질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이 지역 오동동에는 '복국거리'가 있다. 1960년대에 어느 식당이 문 연 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20여 곳이 자리하고 있다. 양철통에 찌든 술독이 아무리 씻어도 없어지지 않았는데, 복어 한 마리 넣어두자 싹 빠지는 것을 보고 '해장용 음식'으로 생각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시장 활어거리.

1980년대까지만 해도 복어 독 손질을 제대로 하지 않아 화를 당하는 일도 많았다. "맛이 이상하다"는 손님 말에 주방장이 먹었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얘기가 있다. 또한, 독 사고가 나면 판·검사들이 복국거리에서 가장 먼저 장사한 식당 주인을 찾아 자문했다고 한다.

복국집 가운데 24시간 장사하는 곳도 많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오히려 새벽 손님이 많았다고 한다. 이미 한잔 거하게 걸치고 찾는 이가 태반이라 싸움도 허다했다고 한다. 지금도 해장을 위해 찾았다가, 오히려 한잔 더 곁들이는 이가 많다.

'진주 실비' '통영 다찌'와 견주는 것이 '마산 통술'이다. 통술은 안주가 한 상 통째로 나온다 하여, 혹은 술을 얼음 통에 담아 내놓는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술이 오래갈까, 안주가 오래갈까'를 놓고 시합까지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풍성함을 대변한다. 이는 한 상 거하게 차려 내는 요정문화와도 관계있는데, 서민적으로 변형된 것이라 볼 수 있다. 1970년대에는 오동동 일대가 번성했고, 지금은 신마산 쪽이 좀 더 유명세를 치른다.

마산에는 장어촌이 몇 된다. 어시장 '장어구이거리'는 그리 오랜 역사는 아니다. 가장 먼저 들어섰다는 가게도 1990년대 중반 영업을 시작했다. 그즈음 비브리오 패혈증·돼지 콜레라 같은 것이 돌면서 회보다 장어를 찾는 이들이 늘어 이 거리가 번성했다 한다.

진동천 주변에도 장어집이 몇 된다. 이곳은 민물과 바닷물이 합쳐지는 곳이라 장어 맛이 특히 좋다고 한다. 가포동 일대 장어촌도 유명했다. 하지만 이제 주변 매립으로 바다 풍광을 곁들인 맛은 볼 수 없게 됐다.

호래기 회.

이 지역 어시장에서는 매년 가을 전어축제가 열린다. 진해만 일대에서 올라오는 통통한 놈들인 '떡전어'는 그 인기가 여전하다.

1960년대 어시장에는 바다 위에 반쯤 걸쳐 있는 집들이 있었다. 횟집촌으로 일명 '홍콩빠'라 불리던 곳이다. 물 위에 판잣집을 지은 홍콩 빈민가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이후 매립이 계속 이어지면서 1980년 말 사라졌다.

1970년대 봉암다리 아래쪽에는 '꼬시락(망둑어)' 횟집촌이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진해로 향하다 바다 위에 자리하고 있는 횟집들 보고서는 궁금증에 찾았다가 그 맛에 반했다는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마산은 홍합 주산지이기도 하다. 정부에서 각종 양식업 지원에 나섰을 때, 홍합은 이곳 바다에 집중됐다고 한다.

마산은 홍합 주산지기도 하다.

1960년 12월 1일은 마산에서 처음으로 영업허가를 받고 장사하는 식당이 탄생한 날이다. 옛 마산시 식당 영업허가증 번호 1번 '귀거래'가 그 곳이다. 오늘날까지 그 시간을 잇고 있지만, 머지않아 문 닫을 수 있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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