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때 피폭 온갖 질병 달고 살아…일본 법원 네 번째 소송 판결
미국 원자폭탄이 떨어진 1945년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 16세 소년은 아버지를 찾아 시내로 향했다. 시내 전체는 새까만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피부가 벗겨진 사람들 몸에서는 기름이 흘렀다. 다행히 아버지는 산에 피신해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3개월 후 아버지는 소년과 함께 밀항선을 타고 마산으로 돌아왔으나 원폭 후유증인 폐 이상으로 사망했다.
16세 소년도 67년이 흐른 지금 골수형성이상증후군으로 백혈구가 감소하는 병과 싸우고 있다. 창원시 진해지역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장영준(83) 화백의 현재진행형 얘기다.
"당시에는 원자폭탄이 뭔지 알기나 하나. 원자폭탄이 떨어진 시내를 돌아다녔으니 방사능에 목욕한 셈이다. 이후 군대에 갔는데 코피가 터지고, 잇몸에 고름이 생기고, 시력이 나빠지더라. 그러다 30살 넘으니 증세가 없다가, 40살 이후 다시 이상이 생겨 지금까지 겨우 버티고 있다."
장 화백의 이러한 사연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장 화백은 14일 일본 나가사키 재판정에 선다. 일본 시민사회계 도움으로 진행 중인 원폭 피해 소송 판결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네 차례 같은 소송을 진행했지만 '증인을 찾아 피폭 관계를 입증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모두 각하 결정이 났다.
장 화백을 격려하기 위해 지난 11일 방문단이 병원을 찾았다. 송인식 동서화랑 관장, 김종오 창원보훈지청장, 문화예술계 후배들이었다. 박영빈 경남은행장도 격려의 선물을 보냈다. 이들은 장 화백에게 작은 힘을 주기 위해 내달 경남은행 아트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도록 돕고 있다. 이들 덕에 장 화백은 간간이 엷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14일 일본 법정에서 장 화백이 어떠한 소식을 들고 올지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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