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 피해자 장영준 화백이 일본 법정에 선다. 16세 때 피폭을 당하여 한평생을 원폭으로 인한 온갖 질병을 안고 살면서 네 번째 소송의 판결을 기다리는 그의 기나긴 싸움에 응원을 보낸다. 유감스럽게도 장 화백과 그 가족이 살아온 억겁의 세월은 한 개인의 상처가 아니다. 7만 명이 넘는 원폭피해자, 성 노예로 끌려간 수많은 여성과 전쟁터로, 탄광으로 끌려간 수많은 사람들, 이 땅에 드리워진 침략의 상처가 아직도 너무나 생생하게 남아있고 그것을 치유하려는 노력보다 고통의 절규가 넘쳐나는 현실에서는 이 땅에 사는 모두의 상처라고 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정부는 여태껏 1965년의 한일 청구권 이후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비양심적인 태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지만 우리 국민과 정부의 대처에도 문제가 많았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피해에 대해 제대로 된 요구를 하지 못한다면 국가로서의 존립가치가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확실히 제대로 된 국가가 아닌 셈이다.

국민도 흥분보다는 현명하지 못한 것과 상처받은 이웃을 제대로 품지 못한 잘못을 반성해야 한다. 정권이 미·일을 축으로 한 안보에 목을 매고 있고 경제적으로 밀착되어 있다는 사실로 이를 호도하고 국민이 지혜롭지 못하여 이를 맹신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일본이 국가적 양심을 버리는데 일조하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스스로 전쟁과 독재를 딛고 민주주의를 달성한 데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지난 역사에 대해, 철저하게 유린된 인권과 그로 인한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일본과 같은 전범국인 독일이 스스로 자성하고 철저하게 지난 일을 반성하는 까닭은 유럽과 세계에 온전하게 살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적어도 독일은 이웃이 무서운 줄 알았다는 것이다. 일본이 독일처럼 변하게 하려면 먼저 원폭 피해자를 비롯한 피해자들에 대해 우리 국민과 국가의 철저한 보호의식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 지역은 피폭자의 60%가 살았으며 그 2세들도 많다. 장 화백의 도일이 외로운 길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먼저 경남도 차원의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노력이 일본의 국가적 비양심을 일깨우는 길일뿐더러 그로써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진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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