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에 사선으로 붙이는 입춘첩
행운 부르고 액운 내쫓는 '부적'
60갑자 달력·보리 뿌리로 점 봐
굿·아홉 차례 등 지역별로 다양

2016년 3월 16일 금산 칠백의총 의총문에 붙여진 입춘첩./정현수 기자

2월 달력을 넘기면 제일 먼저 표기된 절기가 ‘입춘’이다. 2월 4일. 다음날이 ‘대보름’이다. 요즘 우리 풍습대로라면 입춘의 위세는 대보름에 비하면 ‘음메 기죽어’ 수준이다. 대보름은 설날의 마지막 날로 쳐서 달집을 태우거나 연줄을 끊거나 풍등을 날리거나 다양하고도 역동적인 행사를 펼치는 반면 입춘날에는 입춘첩을 대문이나 현관에 붙이는 정도로 끝낸다.

하지만 옛날에는 24절기의 첫날인 입춘(立春)을 중요한 날로 여겼다. 글자 그대로 봄의 시작점이기도 했고 이날을 설날로 보던 때도 있었다. 실제로 입춘과 설날이 겹쳤던 해도 있다. 20세기로 치면 1905년, 1924년, 1943년, 1992년이 그랬고 2000년대로 치면 7년 후인 2030년이 처음 겹치는 날이다. 이렇게 날이 겹치는 이유는 설날은 음력으로 치고 입춘은 양력으로 치기 때문이다.

어쨌든 설날만큼의 의미가 있던 입춘의 풍습이 과연 입춘첩 하나 붙이는 게 다였을까. 입춘을 계기로 이날 어떤 풍습이 있었는지 알아본다.

입춘을 맞아 아파트 현관에 붙여진 입춘첩./정현수 기자
입춘을 맞아 아파트 현관에 붙여진 입춘첩. 붉은 글씨로 되어 있어 부적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정현수 기자

◇부적에서 비롯된 입춘첩 = 부적(符籍)이란 게 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를 이르는 말이니 입춘첩도 이 범주의 해석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봄을 맞았으니 크게 길하리라, 봄볕 양기가 굳건하니 경사가 많으리라. 입춘첩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대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땅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였던 농사의 풍요와 복됨을 기원하는 길상의 메시지기 때문이다.

이것을 대문에다 붙이는 이유도 있다. 문이라는 것은 본디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의 연결통로이기 때문에 사람이든 귀신이든 또는 복이든 액이든 이 문을 통해 드나든다고 여겼다. 그래서 문은 생활 시스템 중에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구조물로서 지위를 획득하고 있다. 내부에 중요한 존재가 있을 때 문지기를 세우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입춘첩이 그러한 문지기 역할을 한다.

부적의 개념으로 치면 정월 초하루 서울 광화문에 문배도로 걸리는 신도와 울루나 다름없다. 신도·울루는 치우천황의 수하에서 문을 지키던 도깨비로 헌원황제의 귀신부대와 싸워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래서 귀신을 물리치는 도깨비로 우리네 인식에 각인돼 전승되고 있다. 이 이야기의 원형은 ‘탁록대전’인데, 동이족 치우와 중국 헌원 간에 일어난 전쟁을 다룬 것이다.

하여튼 입춘첩을 신도·울루처럼 대문에 부착하는 풍습이 생긴 것은, 앞서 ‘전통의 향기’ 41화로 다뤘던 ‘지신밟기’처럼 ‘벽사진경(闢邪進慶)’을 기원하는 민족성에서 발원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대문에 입춘첩을 부착할 때 11자로 붙이지 않고 위쪽은 가까이 아래쪽은 멀리해서 비스듬히 붙이는데 그 이유가 뭘까? “입춘접은 대문에 반듯하게 붙이지 않고 사선으로 비스듬하게 배치하는데, 이는 햇빛을 상징하는 빗살을 통해 벽사의 의미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빗살문은 빗살무늬토기에서부터 빗살 창호나 꽃살 등에 이르기까지 두루 쓰이는, 실로 오랜 연원의 벽사 상징이다.”(<부적의 비밀>, 자현 저, 모과나무, 140쪽)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풍속화가 이억영의 '입춘-봄의 시작'. 2014년 12월 김해민속박물관에서 기획전시했다./정현수 기자

◇<동국세시기>에 기록된 입춘 = 이 책은 조선 후기 홍석모라는 사람이 1849년경 쓴 세시풍습 기록집이다. ‘입춘’ 편에 입춘첩 풍습과 이날 먹는 음식, 그리고 행사 등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이 조선 22대 정조 임금 때 진언(긴요하고 비밀스러운 주문)을 인쇄, 배포해 문 상방에 붙여 액을 물리치도록 했다는 기록이다. 이는 입춘뿐만 아니라 단오(음력 5월 5일)에도 문에 붙이는데, 그 진언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아아나 사바하: 널리 온 우주에 가득히 계시는 부처님들께 귀의하여 받들고 이를 통해 모든 신을 안위시킨다는 뜻.

△문신호령 가금불상: 집에 깃든 신령이 상서롭지 못한 것을 물리친다.

△국태민안 가급인족: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평안하니 집집마다 넉넉하다.

△우순풍조 시화연풍: 비바람이 순조로워 시절이 평화롭고 풍년이 오라.

그리고 집의 기둥이나 문 위쪽에 붙이는 글귀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수명은 산같이 재물은 바다같이 되어라 △온갖 재앙은 가고 모든 복은 오라 △요 임금 세월이고 순 임금 세상이러라

△부모님 오래 사시고 자손만대 번영하라 △천하 태평한 봄에 사방 아무 사고 없어라 △땅을 쓸면 황금이 생기고 문을 열면 만복이 온다.

사대부 집에서는 직접 새로 글을 짓거나 옛사람들의 아름다운 글귀를 따와서 입춘첩에 쓰기도 했다.

◇입춘점 = 우리가 설날에 토정비결을 보는 것처럼 한 해가 시작되는 날을 입춘으로 보는 인식 때문에 이날 60갑자 달력으로 무슨 날인지, 또는 자연현상은 어떤지로 점을 보는 풍습이 있다.

올해 입춘은 계사(癸巳)일이다. 전해지는 입춘의 일진(日辰)을 보면 이날 갑(甲)이나 을(乙)이 들어가면 그해에 풍년이 들고, 병(丙)이나 정(丁)이 들어가면 큰 가뭄이 들고, 무(戊)나 기(己)가 있으면 밭농사 흉년, 경(庚)이나 신(申)이면 사람들 생활이 안정되지 못하고, 임(壬)이나 계(癸)는 큰물로 난리가 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올해 입춘엔 ‘계’가 들어가니 물난리가 나려나?

또 입춘 때는 보리가 뿌리를 내리는 시기라서 뽑은 뿌리로 점을 보기도 한다. 갈래가 많으면 풍년, 적으면 흉년이 든다고 보았다. 솥에 오곡을 넣어 볶아서 가장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을 이룬다고 점을 치기도 했다. 입춘날 집안의 물건이 밖으로 나가면 일 년 내내 재물이 빠져나간다고 여겨 이날에는 아무것도 빌려주지 않는 풍습도 있다.

입춘날 비가 오면 오곡이 부실하고 청명하면 곡식이 잘 익는다고 보았고, 이날 흐리고 음습하면 벌레들의 극성으로 벼와 콩 농사를 망친다고 여겼다.

◇이런 것도 있었나 싶은 입춘 풍습들 = △입춘굿: 주로 제주에서 행해졌고 무당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걸립패를 구성해 집집마다 방문해 상주, 옥황상제, 땅신, 오방신에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다.

△아홉 차례: 각자가 평소에 하는 일을 9번 되풀이하는 풍습이다. 나무꾼은 아홉 번 나뭇짐을 지고, 여자아이들은 아홉 바구니 나물을 캐고, 아낙들은 아홉 가지 빨래를 하고, 노인들은 아홉 발의 새끼를 꼬고, 심지어 밥도 아홉 번 먹어야 한다는 말이 생길 정도. 9가 최고의 수라는 인식으로 생긴 풍습인 듯. 술 좋아하는 사람은 이날 9차까지 가야 한다고 우길지도.

△적선공덕행: 남몰래 다른 이를 돕는 풍습이다. 그래야 액을 면한다고 여겼다. 요즘으로 치면 얼굴 없는 천사가 이런 우리네 풍습에서 나온 현상일 것이다.

△목우놀이: 함경도에서 행해졌다는 놀이인데, 관아에서 나무로 소를 만들어 민가에 끌고 나와 돌아다녔다고 한다.

△입춘수: 입춘을 전후로 받은 빗물. 이 물로 술을 빚어 마시면 아들을 낳고 남편의 기운이 왕성해진다는 속설이 있다.

/정현수 기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