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 복원사업 감독관에 비전문가 배정
전문지식 부족 탓 문화재 훼손 인지 못해
문화재계, 학예연구관 채용 등 보완 촉구
시 "절차 문제 없어...융통성 있게 해야"

복원사업이 끝난 사천 선진리왜성 전경. /김연수 기자

애초에 유적 훼손을 막을만한 체계가 사천시에 존재하지 않았다.

사천 선진리왜성(일본성) 성곽을 갈아엎어 물의를 빚고 있는 사천시가 10여 년 전 문화재적 전문지식이 없는 공무원을 감독관 자리에 앉혀 복원사업을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원형 정비에 나서면서도 전문 감독관을 두지 않고 공사를 강행한 것이다. 문화재계 인사들은 왜성 전문가가 아닌 시청 공무원을 감독관으로 내세운 사천시를 비판했다.▶26·27일 자 1·18·19면 보도

28일 전직 선진리왜성 복원사업 감독관과 준공 검사자, 문화재 자문위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사천시는 사업 과정에서 문화체육과 소속이던 건축직 공무원(지방시설주사)을 선진리왜성 복원사업 감독관으로 배정했다. 시가 발주한 공사는 건축·시설 담당이 감독관을 맡는다는 관례에 따른 조처였다.

그러나 해당 공무원은 사실상 이름만 총괄 책임자로 올렸을 뿐, 매일같이 공사 현장을 감독하지 않았다. 한 번씩 왜성에 가더라도 유산이 훼손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공사 감독관직뿐만 아니라 사업 설계검토자와 준공검사자도 지방시설주사였던 공무원들이 직을 맡았는데, 그들 또한 전문지식이 없어 사업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과 경남도 문화재위원들로 구성됐던 왜성 복원사업 자문위원단은 2006년 5월부터 1년 6개월여간 진행된 공사 현장에 한 차례 방문했다. 관에서 열린 자문회의에는 세 차례 참석했다. 하지만, 이들은 공사가 끝난 뒤 주문대로 복원이 이뤄졌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사업이 잘못되더라도 책임지는 자리에 있지 않아 요청이 있을 때만 성곽복원 관련 견해를 전달하고 말았다는 뜻이다.

원형 복원사업이 끝난 선진리왜성. 문화재계에서는 본래 모습을 되찾기는커녕 새로운 형태의 유적이 탄생했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최석환 기자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당장 문화재계에서는 왜성 전문가가 아닌 일반 공무원을 감독관에 앉혀 복원사업을 벌인 것을 두고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관련 공사를 담당하는 건축직·토목직 공무원들이 설계안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시공 업체에 넘겨버리는 사례가 많은 데다, 비전문가들이 안을 보더라도 문화재적 지식이 부족해 문제점을 가려낼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문화재계 인사는 “감독관을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은 건 큰 문제”라며 “시청에 학예사를 두고 감독하게 하는 구조로 가는 게 맞았을 거다”라고 말했다. 이어 “감독 업무를 주면 학예사는 스스로 공부해서 발굴 성과를 토대로 설계된 복원안이 제대로 시공되고 있는지 꼼꼼히 훑어보고, 자문 과정도 거쳐 문제를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이런 형태로 앞선 복원사업이 진행됐다면 지금과 같은 훼손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시청 안에 학예연구관을 뽑아 문화재 사업 전반을 맡겨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시는 문화재 사업을 자문위원들에게 들은 의견을 반영해서 진행한다고 말하겠지만, 자문위원들도 큰 틀에서 문화재 분야 전공자니까 자문을 맡는 거지 세부 영역별 지식이 많아서 그런 건 아니다”라며 “이는 선진리왜성 복원사업 자문위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천시를 포함한 모든 지자체가 직급 있는 학예연구관을 채용해 문화유산 관련 사업을 담당하게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도내 각 시군에 전문가를 둬야 더 좋은 쪽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리왜성 전경. /김연수 기자

사천시는 비전문가가 감독관을 맡아 복원사업을 벌였다는 지적과 관련해 절차대로 진행된 사안이라고 밝혔다. 김성일 시 문화체육과장은 “감독관 선정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 문제없는 사안이었다“며 ”문화재 사업은 융통성 있게 담당을 정해서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학예연구관 제도 도입을 두고 이성규 시 인사팀장은 “학예연구관 채용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채용을 검토하고 있진 않다”며 “연구관이 있으려면 직렬별 직원이 많아야 하는데, 시 학예사는 1명뿐이다. (재정 여건상) 학예사 추가 채용도 지금은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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