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성 고유 축조방식 사라지고
새로 쌓은 돌들은 '쩍' 갈라져
문화재 자문 미반영 사유 등
구조적 문제 기록으로 남겨야

복원사업이 끝난 사천 선진리왜성 전경. /김연수 기자

임진왜란 때 만들어진 선진리왜성(이하 일본성)이 10여 년 전 유적 복원사업을 벌이던 사천시에 의해 파괴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시는 문화재 정비업체에 맡겨 중장비로 기존 일본성에 쌓여있던 돌 대부분을 빼낸 뒤 그 사이사이에 새로 들여온 돌을 끼워 넣는 방법으로 성곽을 재구축해 원형을 훼손했다. 이 때문에 본래 일본성이 가지고 있던 축조방식과 본연의 성벽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대 어떤 구조로 일본성이 지어졌는지, 어느 시점부터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등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어진 셈이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유산을 보존·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는 지자체가 안 하느니만 못한 복원사업을 강행해 성곽 유적을 망쳐놨다는 비판도 나온다.

 복원사업이 끝난 사천 선진리왜성. /최석환 기자

◇원형복원은커녕 도리어 유적 파괴 = 26일 <경남도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사천시와 정비업체는 2006년 5월 1일부터 2007년 12월 27일까지 선진리왜성 성곽 복원사업을 벌이다 성벽을 갈아엎은 것으로 확인됐다. 선진리성은 크게 통일신라·고려·조선시대에 걸쳐 축조된 토성과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만든 일본성으로 나뉜다. 그 중 이곳에 쌓인 일본성은 1597년 10월 29일부터 12월 27일까지 일본군이 한반도에 주요 거점을 마련하고자 만든 일본식 성곽이다. 모리 부자 등 왜장 11명이 성을 축조했다.

본래 선진리왜성은 차곡차곡 올린 대형 할석(쪼갠 돌) 틈새에 작은 돌을 끼워 쌓는 이른바 난적 쌓기 방식으로 만들어진 구조였다. 먼저 커다란 돌을 놓은 다음 큰 돌이 맞물린 쪽에 생긴 작은 빈틈 사이사이에 잔돌을 집어넣어 성벽을 삼는 형태다. 성벽의 견고함을 더하려 한 일본식 축조방식이다.

 복원사업이 끝난 사천 선진리왜성. /최석환 기자<br>
 복원사업이 끝난 사천 선진리왜성. /최석환 기자

기존 일본성 축조방식을 파악한 시는 원형복원을 추진하면서도 모든 구간에 이를 적용하지 않고 사업을 강행했다. 기존 돌 위에 새 돌을 올리면 붕괴할 우려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시가 성곽을 복원한 규모는 높이 1~5m, 길이 890.5m. 대부분 큰 돌 위주로만 돌을 겹겹이 올려 성벽을 둘렀다. 시는 중장비를 동원해 본래 잘 남아있던 성벽을 들어내는가 하면, 기존 돌을 빼낸 뒤 다시 쌓는 작업을 반복하기도 했다. 원형처럼 돌 밑 틈새에 작은 돌을 섞어 성벽을 삼은 건 일부(천수각 주변 성벽)에 불과했다.

◇문화재 자문위원 주문 미반영 = 시는 그 무렵 문화재청 문화재위원과 경남도 문화재위원들로 구성된 복원사업 자문위원단이 기존 축조방식을 참고해 성곽을 복원하라는 주문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이같은 내용은 사업에 잘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2007년 12월 복원사업 도급자가 낸 ‘선진리성(倭城) 복원공사 수리보고서’를 보면, 복원사업 자문위원단은 자문회의에서 기존 축조방식에 따라 성곽을 구축하라고 주문했다. 이들은 “성벽돌 보수는 기존의 잘 남아있는 구간을 참조하여 성곽돌 쌓기공법으로 시공하고, 흔적이 잘 남아있는 성곽열을 중심으로 연장 복원해야 한다”며 “현장에 나타난 성곽 쌓기대로 경사도, 돌의 크기, 가공 정도, 쌓는 방식을 본 뒤 복원하라”고 진단했다.

선진리왜성 전경. /김연수 기자

하지만 사업 과정에서는 연장 복원 등과 같은 내용만 반영됐을 뿐, 축조방식은 자문위에서 제시한 안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 당시 자문을 맡았던 한 문화재위원은 “복원할 때 큰 돌과 잔돌을 끼워 만들라는 큰 원칙 아래 일본 성곽의 특징을 잘 살려서 정비하라는 얘기를 과거 자문회의 때 했었다”고 했다. 또 다른 문화재계 관계자는 “복원이 잘되려면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면서 “먼저 유적 발굴조사를 잘 진행해서 왜성 축조 수법을 규명한 다음 그걸 근거로 설계에 들어가야 하고, 설계할 때는 제대로 된 결과를 얻어서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시공사는 왜성 특징을 잘 알아야 하고, 왜성의 특징을 기술적으로 잘 흉내 내려고 애를 써야 한다”며 “시공사가 기술이 좋았다면 쌓여있던 돌 위로 새 돌을 올려 지을 수도 있었을 텐데 자신이 없으니까 다 들어내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성곽을 두른 돌에 금이 가 있다. 선진리왜성에 가면 이렇게 갈라진 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최석환 기자

◇복원 10여 년 만에 ‘쩍’하고 갈라진 새 돌들 = 문화재계에서는 재질이 좋지 않은 돌을 선정해 사업을 벌인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일본군이 쌓아놓은 돌은 축조된 지 4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부분 금이 가지 않은 반면, 시가 새로 들여와 구축한 돌 가운데 다수는 정중앙에 금이 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새로 쌓은 지 10여 년밖에 되지 않은 돌들이 쩍쩍 갈라진 모습은 유적 곳곳에서 쉽게 엿보인다. 하지만 시는 사업을 벌여놓고도 복원한 지 오래돼 어느 곳으로부터 어떤 재질의 돌을 얼마나 들여와 성곽을 쌓는 데 썼는지 알지 못한다는 견해여서 문제로 지적된다.

선진리왜성 전경. /김연수 기자
선진리왜성 전경. /김연수 기자

한 문화재계 관계자는 “사암 계통(퇴적암) 중에서도 강도가 약한 돌들이 유적 곳곳에 쌓여있다”며 “성곽에 가보면 400년 동안 나름대로 압력을 받으면서 안정된 돌들은 멀쩡하게 남아있지만, 새 돌은 많이 깨져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강도가 센 돌로 쌓아야 하는 건데 애당초 돌 선정부터 잘못돼서 돌이 갈라지는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면서 “문루 주변 해안가 방면에 쌓인 돌들은 측면이 약간 기울어진 모습도 보이는 걸 보면 5년 안에 무너질 위험성도 있어 보인다”고 꼬집었다.

◇문화재적 가치 사라져…문화재 지정 해제 목소리도 = 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돼있는 선진리성은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가 일제 지정문화재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1997년 1월 1일 사적 지정이 해제됐다. 이후 지방지정문화재로 지정 권고돼 1998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74호가 됐다. 선진리성은 지금까지 문화재자료 명단에 포함돼 있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남아 있던 왜성의 문화재적 가치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복원사업 과정에서 그동안 볼 수 없던 새로운 형태의 성곽이 만들어졌다는 취지다. 한편에서는 문화재 지정 자체를 아예 해제해야 하는 수준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복원 전 성벽 일부. /사천시<br>
복원 전 성벽 일부. /사천시
복원 전 성벽 일부. /사천시<br>
복원 전 성벽 일부. /사천시

한 문화재계 관계자는 “새로운 형태의 성곽이 만들어진 것이기에 선진리왜성의 문화재적 가치는 없다고 봐야 한다”며 “문화재 지정 해제를 해야 할 판이지만, 훼손된 걸 돌이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 역사를 잘 보여줄 수 있는 방향으로 정비를 잘해 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복합적인 구조적 문제에 의해서 유적이 훼손되었다는 걸 기록으로나마 잘 남겨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사천시는 그동안 유적이 훼손된 사실 자체를 아예 몰랐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성일 시 문화체육과장은 “유적 훼손이 얼마나 이뤄졌는지 먼저 파악해보고 앞으로 어떻게 조치해나갈 것인지 계획을 짜볼 생각이다”라며 “문화재위원들과 논의해서 결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반면 당시 복원사업에 참여했던 업체 관계자는 필요한 자문을 거쳐서 진행된 ‘문제없는 사업’이었다고 반박했다. 그는 “왜성에 가보면 잔돌이 다 끼워져 있다”며 “축조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는 맞지 않다”고 했다. 이어 “돌이 깨지거나 잔돌이 떨어져 나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라며 “이전에 있던 돌과 똑같은 돌을 구해서 쓰는 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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