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매체서 자주 쓰는 외국어
독자·시청자들에게 익숙해져
우리말보다 이해 쉽다는 의견도

공공 기관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언론 매체를 통해 사회로 전파된다. 우리말 대신 이른바 ‘있어 보이는’ 외국어나 외래어, 어려운 한자어를 익숙하게 만든다. 공공 기관 보도자료를 만드는 사람도 결국 신문·방송을 접하는 독자이자 시청자여서 외국어·외래어가 사회에 통용된다고 느끼면, 보도자료 → 언론 → 사회 → 보도자료 구조로 순환한다. 말 그대로 ‘악순환’이다.

공공 언어는 좁게는 기관에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언어이고, 넓게는 국민을 대상으로 한 모든 언어를 말한다. 그러므로 원활한 의사소통과 모범적 언어생활을 위해 되도록 쉬운 우리말로 써야 한다.

◇“공무원식 용어 소통 장애” = 경남을 대표하는 공공 기관인 경남도와 경남교육청의 공문서는 어떨까. 전문가 분석으로는 불필요한 외국어·외래어·한자어가 적지 않았다.

경상국립대학교 국어문화원이 분석한 경남도의 2021년 1~6월 보도 자료 150건을 보면 거버넌스, 니즈, 메카, 브랜드, 브리핑, 블루오션, 오디션, 워크숍, 원스톱, 인센티브, 인프라, 컨설팅 등 불필요한 외국어가 자주 쓰였다. 개소, 개폐, 상시, 부지, 애로사항, 육성, 장기화, 중추적, 총력, 필지, 함양 등 공무원식 한자어도 꼬집었다.

국어문화원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널리 쓰이는 외래어도 있고 따로 설명하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말도 있다. 일반 국민이 보도 자료를 쉽게 이해하게 하려면 쉬운 말로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한자어를 행정 기관에서 사용하면 국민과 소통에 큰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상국립대 국어문화원은 2018년 1월부터 2021년 6월까지 경남교육청의 고시문·공시 송달문·공개 모집문·안내문 등 공고문 100건도 분석했다.

100건의 4만 4440어절에서 어려운 한자어와 외국어·외래어는 1557개로 나타났다. 한자어는 주로 공고, 기타, 기재, 일체, 반환, 교부 등이 쓰였다. 순서대로 알림, 그 밖에, 쓰다·적다, 모두, 돌려주다, 내줌 등으로 다듬어야 한다. 홈페이지(누리집), 이메일(전자우편), 디자인(설계·도안), 시스템(체계), 팀(편·조), 컨설팅(조언·상담), 세트(벌) 등 고쳐야 할 외국어·외래어도 많았다.

◇“익숙해져” = 문제는 공공 기관이 각종 정보와 정책을 잘 알리고자 내놓는 보도 자료 등 공문서를 쉬운 우리말로 써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남도민일보>가 도내 공공 기관 20곳의 올해 보도 자료 200건을 살펴본 결과 60.5%에서 외국어, 외래어, 어려운 한자어, 번역 투 등이 발견됐다.

앞서 지난해 9월 200건을 살펴봤을 때도 외국어·외래어·합성어, 어려운 한자어가 한 번도 쓰이지 않은 보도자료는 25.5%에 불과했다.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Light up(라이트 업)’ 등 일상에서도 생소한 말을 사용한 의령군 담당자는 “매일 나오는 보도 자료 수가 많고 신속성이 중요하다 보니 감수 과정을 거치기가 어렵다. 전문 분야는 단어를 바꾸면 정확성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외국어를 쓰면서 우리말 뜻풀이를 놓치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시·군이 주민에게 보이는 소식지와 관련해 <창원시보> 담당자는 “일상적으로 흔히 쓰이는 표현은 그대로 나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스포츠 구단 홍보 담당자는 “우리말로 일일이 풀어 쓰면 지나치게 길어지고 어색해져 오히려 전달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탓에 받아들이는 시민도 익숙해져 버렸다. <경남도민일보>가 보도한 기사에서 외국어, 외래어, 어려운 한자어 등이 나타난 문구를 우리말로 풀어써서 비교하는 설문 조사에서 받은 의견을 보면, 우리말이 훨씬 이해하기 편하다는 의견이 대다수였으나 그렇지 않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한 30대는 “영어권에서 시작된 사업이나 명칭은 국내에서도 그대로 사용하고 영어로 쓰는 게 더 이해가 빠를 때도 있다”고 했다. “과거부터 익숙한 외래어 등은 그대로 써도 이해가 된다”, “클러스터(협력단지), AI(인공지능) 등 상대적으로 개념이 정립된 용어는 외국어, 외래어, 한자어 활용이 더 명확히 이해된다. 지나치게 우리말로 풀어 쓰면 읽는 사람에게 혼란을 가중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외국어가 더 읽기 편한 ‘케이스’도 있다” 등 의견도 있었다. 이런 의견은 주로 30~40대에서 많았다.

특히 한 응답자는 “외래어 등 사용이 빈번한 보도 자료를 받은 언론사 기자와 시민도 그대로 사용하는 게 익숙해져 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국립국어원의 ‘2020년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를 보면, 전국 성인 5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외래어·외국어를 우리말로 다듬는 국어 순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익숙해진 외래어·외국어는 굳이 고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이 42.2%로 나타났다. 적극적으로 순화해야 한다(48.8%), 이해하기 어려운 외래어·외국어만 고쳐야 한다(53%) 등 응답과 비교했을 때 적지 않은 수치다.

◇돌고 도는 악순환 = 공공 기관의 정보·정책을 전달하는 매체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일과 쉼의 공존을 뜻하는 ‘워케이션’이라는 말이 유행하자, 전국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앞다퉈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언론은 그것을 고민 없이 보도하고 있다.

애초 생소했던 워케이션은 매체를 통해 확산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공공 기관은 익숙해진 일상적인 단어라며 그대로 사용할 것이다.

우리말로 ‘공동 연수’, ‘연수회’ 등으로 풀이할 수 있는 ‘워크숍’이이미 그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경남도민일보>가 외국어·외래어·한자어와 우리말을 비교하는 설문 조사에서 187명 응답자 중 워크숍 뜻을 어렵게 느낀다는 사람은 21명(11.23%)으로 가장 적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유행하거나 익숙해진 외국어·외래어·한자어라도 모든 사람에게 두루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공공 기관이 바른 우리말을 쓰는 게 중요하다.

국어문화원연합회는 지난해 <공공언어 개선의 정책 효과 조사 연구>에서 “연령대가 높을수록,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공공 언어가 어렵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세대나 계층 간 차이가 아닌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공공 언어 개선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함께 나타난다. 우리말 사용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지만, 이미 익숙해진 외국어·외래어 등 개선을 부정적으로 보는 의견도 상당수 존재한다”며 “공공 언어 개선은 최대한 많은 국민을 위해 필요하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희곤 강해중 기자

※ 감수 김정대 경남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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