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뽑힌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존중 사회'를 약속했다. 최저임금 1만 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 추진으로 노동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

현 정부 노동존중 성적표는 차치하고,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 공약에는 노동존중이 배었는지 먼저 물을 차례. 선거 국면 초반 노동 의제가 실종됐다는 평가가 나왔던 작년 말보다 얼마나 살이 붙었을까.

제20대 대선을 20여 일 앞두고 쟁점화한 노동 의제는 △산업재해 △근로시간 △사각지대 노동자 보호 등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김재연 진보당 후보 노동 공약은 대부분 쟁점 의제를 수용하면서도 결을 달리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따로 노동 공약을 내지 않아 주요 발언을 참고했다.

◇산업재해 = 광주 HDC현대산업개발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경기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 매몰 사고, 경기 성남시 판교제2테크노밸리 건설 현장 추락 사고 등 지난달 27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 전후로 큰 산업재해가 잇따라 일어났다.

법 시행 이후 발생한 사고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영계의 우려에 비춰볼 때 현행 중대재해처벌법 무게감은 낮다. 상시 근로자 5명 미만 사업이나 사업장은 아예 적용되지 않고 개인사업자나 상시 근로자 50명 미만 사업장은 3년 유예를 뒀다. 통계청 2019년 전국사업체조사 기준 경남지역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4만 9572곳(17.3%), 5인 미만 사업장은 23만 3857곳(81.5%)이다.

대선 후보 대부분 중대재해처벌법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풀이법 온도 차는 명확했다.

 

산업재해
이·윤, 재해 예방·엄중 제재
심·김, 기업 무한책임 강조
안, 현장 안전관리자 강화

 

이재명 후보는 산업재해는 예방이 우선이라는 전제 아래 "전문가 의견을 모아 (중대재해처벌법) 개선 필요 사항은 보완 대책을 세우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적정임금제 도입 △통합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 △노동안전보건청 신설 △산업안전보건주치의 제도 도입으로 산업재해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후보는 산업재해는 예방이 근본이라는 전제 아래 중대재해처벌법상 사고를 막을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 엄하게 제재해야 한다는 태도를 내비쳤다.

심상정 후보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범위를 늘리고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 처벌을 강화하는 등 미흡한 점을 보완,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심 후보는 나아가 산재보험제도를 고용형태 상관없이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라면 선보장하는 '원스톱 산재보험 서비스'로 전환하고 발주·설계·시공·감리자에게 권한에 상응하는 안전관리 책임을 부여하는 건설안전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으로 노동자와 시민 알 권리를 보장하고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실질적인 작업중지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철수 후보는 위험을 만드는 주체가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언급하며 국가 관리감독보다는 현장 스스로 안전을 보장할 장치 마련에 초점을 맞췄다. 안 후보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관리자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재연 후보는 산업안전 3법 추진을 내세웠다. 산업재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건설현장 노동자 안전 보장에 주안점을 뒀다. 폭염·한파 때 작업중지권을 부여하고 산업재해 사업장은 도급 금지·직접 고용을 강제하는 등 산업안전보건법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도 마찬가지 기업살인처벌법으로 바꿔 중대재해 기업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동시간 = 또 하나 주목받은 노동 의제는 '노동시간'이다. 심상정 후보가 1호 공약으로 '주 4일제'를 내고, 윤석열 후보가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업종별 주 52시간제 유연화를 강조하면서 논의가 뜨거웠다. 잠시 주춤한 분위기지만 모든 대선 후보가 태도를 명확히 한 만큼 대선 이후 사회적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의제다.

이재명 후보는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하다는 태도다. 이 후보는 실제 노동시간 단축이 자신 목표라고 내세웠다. 그는 "주 4.5일제 도입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겠다"며 "단계적 시범사업과 더불어 먼저 주 4일제나 주 4.5일제를 도입하는 기업에 다양한 방식으로 보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후보는 주 52시간제가 일자리 증가를 목표로 한 정책으로는 실패했다고 보고 노사 협의로 주 52시간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모양새다.

 

노동시간
이·심·김, 주 4일제 도입
윤·안, 유연화·기업 자율

 

노동시간 의제를 선점한 심상정 후보는 주 4일제(주 32시간제)로 과감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적 공론화·합의→시범운영→국회 논의·단계적 입법절차까지 3단계로 전환할 청사진을 내놨다. 핵심 대상은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이다. 주 4일제 도입과 더불어 평등수당 도입, 기업 세제·보험료 지원 방안 등을 내놨다. 저소득층 단시간 노동은 최소노동시간 보장제 등으로 보장하고 평등수당 등으로 부족한 소득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안철수 후보는 주 4일제를 도입하면 중소업체 어려움이 가중되리라 우려했다. 안 후보는 기업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태도다. 그는 "당분간 기업 자율에 맡기고 사회적 합의로 확대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재연 후보는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 실현을 내세웠다. 모든 일하는 사람 노동기본권 보장, 전국민노동법 실현, 최저임금 대폭 인상, 300대 대기업 법인세율 30%로 인상하는 정책을 주 4일제와 묶어 내놨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취지다.

◇사각지대 노동자 보호 = 대선 후보가 노동을 대하는 태도는 산업재해·노동시간 이외 공약에서 두드러진다.

이재명 후보는 '일하는 사람 권리보장 기본법'을, 심상정 후보는 '일하는 시민의 기본법'을 공약으로 내고 노동관계법 사각지대를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윤석열 후보도 '일하는 사람 권리보장 기본법'을 약속했다.

안철수 후보는 "IMF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확대된 까닭은 저비용으로 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기업 사용유인이 크게 작용해서"라며 사용유인을 제거하고자 산업 전반에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을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김재연 후보는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특별법'을 제정, 공공부터 민간까지 단계적으로 정규직화하는 등 비정규직 철폐에 초점을 맞췄다.

 

사각지대 노동자 보호
이·윤·심, 노동권 보장 기본법
안, 동일 노동 동일 임금 확립
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확대

 

이장규 노동사회교육원 이사는 "노동관계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부터 노동자면서 노동자가 아닌 플랫폼 노동자·특수고용 노동자 등을 포괄하는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며 사각지대 노동자 보호 공약을 강조했다.

탁종렬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은 "노동 공약을 내고도 현장을 찾는다거나 추가 발언, 견해를 밝히는 것을 자제하는 분위기"라며 "노동 공약 자체가 득표에 유효하지 않다는 판단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 수라는 점에서는 이해하지만 대선 후보 스스로 철학이나 관심, 이해도가 낮은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탁 소장은 "'이대남(20대 남성)' 현상 같은 의제에 관심이 쏠린 모양새인데 노동 의제와 별개가 아니다"며 "좋은 일자리를 어떻게 늘릴 것인지, 산업구조는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 종합적으로 제시한다면 젊은 세대에게도 노동 의제가 호응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