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각저총 벽화에 남아…먼 옛날 제의 중 하나 추정
우승자 황소 타고 돌던 풍습…이제는 꽃가마 타고 뒤풀이
북한 매트 위에 선 채로 시작…세계 곳곳 비슷한 종목 존재

요즘 초등학생들이 학교에서 체육 시간이든 노는 시간이든 씨름을 하는 모습을 보긴 아주 어려울 것이다. 하물며 동네에서야 오죽하랴. 오래된 기억이지만, 학교는 물론이고 마을에서도 씨름하며 노는 친구들이 꽤 많았다. 샅바가 없으면 없는 대로 바지춤을 그러쥐고 상대를 넘어뜨리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아주 흔했다.

지금은 씨름을 볼 수 있는 곳은 선수들이 경기를 펼치는 체육관이거나 그 영상이 나오는 실내일 것이다. 어느새 씨름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아니라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선수들의 것으로 특화되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씨름은 선수들의 스포츠로 남거나 시간이 좀 더 흐르면 AI를 장착한 씨름 로봇의 경기로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창원시립마산박물관에서 개관 20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모래판 위의 거인, 천하장사'를 6월 15일 시작해 10월 17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하고 있다. 김성률, 이만기, 강호동. 이름만 들어도 '천하장사'라는 말이 툭 튀어나올 정도로 이들과 씨름은 등호 관계를 지닌다. 하긴 요즘 어린 세대 혹은 젊은 세대에게 이만기나 강호동은 방송인으로 더 알려졌겠다. 그만큼 씨름이 한때 인기 스포츠 종목이었음을 방증하는 일이기도 하겠다.

▲ 1986년 3월 9대 천하장사 이만기가 꽃가마를 타고 있다. /연합뉴스
▲ 1986년 3월 9대 천하장사 이만기가 꽃가마를 타고 있다. /연합뉴스

◇씨름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박물관 기획전시실에 들어서면 바로 왼쪽에 '씨름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안내한 글귀가 있다. "씨름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다양한 형태로 전승됐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는 의식으로, 군사 훈련을 위한 무예로, 또 축제의 흥을 돋우는 유흥거리와 민속놀이로서 면면이 그 명맥을 이어왔다."

안내문 옆에 있는 그림을 볼까. 중국 길림성에 있는 고구려 초기 고분 각저총에 새겨진 벽화로 고구려인과 눈과 코가 큰 서역인이 씨름하는 모습이다. 그 옆에 노인이 심판을 보고 있다. 또 한쪽에는 나무가 그려져 있고 새가 앉아 구경하고 있다. 옛사람들 인식으로 새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존재이며 그런 새가 앉아 있는 나무는 신단수라 부르는 우주목이다. 말하자면, 이 씨름은 제의의 하나로 진행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 김홍도 작 '씨름'. /경남도민일보 DB
▲ 김홍도 작 '씨름'. /경남도민일보 DB

이것만 보더라도 씨름은 고구려 이전부터 행해진 놀이임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씨름을 많이 즐겼나 보다. 씨름이 그림으로 남은 사례가 많다. 대표적으로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에 나오는 씨름을 들 수 있겠다. 한 사람이 들배지기를 하고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샅바를 맨 다리를 보아 오른씨름이고 이는 전라도 지역의 씨름임을 알 수 있다. 엿 파는 아이, 둘러앉아서 즐기는 관중의 모습이 재미있게 그려졌다.

씨름 그림은 신윤복의 '행려인물도'에서도 발견된다. 신윤복의 그림에선 씨름하는 사람들이 모두 웃통을 벗고 겨룬다. 조선 후기 유숙의 그림에서도 씨름이 등장하는데, '대쾌도'라는 이 그림에는 한쪽에선 씨름 경기를 하고 또 한쪽에선 택견 경기를 하고 있다. 태평성대를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씨름의 기술

샅바를 잡고 상대를 넘어뜨리면 이기는 놀이라서 기술이랄 것도 없겠다 싶은데 이 단순해 보이는 경기에도 수많은 기술이 사용된다. 오죽하면 샅바싸움이라는 말도 있듯이 샅바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기선을 제압하기도 하고 놓치기도 한다.

△샅바: 예전에는 줄을 허리에만 매는 '줄씨름'이 있었다. 지금은 허리와 다리에 함께 매는 샅바로 굳어졌다. 샅바 고리를 어느 다리에 끼우느냐에 따라 왼씨름과 오른씨름으로 나뉜다. 오른 다리에 끼우는 왼씨름은 주로 경상도와 강원도에서 행해졌고 반대쪽에 끼워서 하는 오른씨름은 경기도와 전라도에서 전승되었는데 1972년 씨름협회가 왼씨름으로 통일했다.

△손기술: 앞무릎치기, 앞무릎짚기, 모둠앞무릎치기, 앞무릎뒤집기, 앞무릎짚고 밀기, 뒷무릎치기, 옆무릎치기, 오금당기기, 앞다리 들기, 손짚이기 등 10개가 있다.

△다리기술: 밭다리걸기, 밭다리치기, 밭다리감아돌리기, 안다리걸기, 왼안다리걸기, 덧걸이, 오금걸이 등 7개가 있다.

▲ 지난해 10월 고성군에서 열린 회장기전국장사씨름대회에서   경남대 최원준이 상대를 넘어뜨리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해 10월 고성군에서 열린 회장기전국장사씨름대회에서 경남대 최원준이 상대를 넘어뜨리고 있다. /연합뉴스

△발기술: 호미걸이, 낚시걸이, 뒤축걸이, 뒷발목걸이, 무릎대어돌리기, 연장걸이, 빗장걸이, 앞다리차기 등 8개가 있다.

△들기술: 들어튕겨배지기, 들며차내어배지기, 들며튕겨배지기(들배지기), 들어잡채기, 후려던지기, 들어찧기, 들안아놓기, 들어낚시걸이, 들어호미걸이 등 9개.

△허리기술: 왼배지기, 오른배지기, 엉덩배지기, 돌림배지기, 차돌리기, 어깨걸어치기, 업어던지기 등 7개.

△혼합기술: 잡채기, 뿌려치기, 밀어치기, 등채기, 등쳐감아돌리기, 애목잡치기, 정면뒤집기, 측면뒤집기, 목감아뒤집기, 끌어치기, 꼭뒤집기, 앞으로누르기, 통안아넘기기, 허리꺾기 등 14개.

이렇게 55개의 씨름 기술은 대한씨름협회가 2004년 신체 부위에 따라 기술을 분류해 정리한 것이다. 이름하여 '씨름 기술 55수'라고 한다.

◇씨름 궁금증 풀기

씨름은 2017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31호로 지정되었고 201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남북 공동으로 등재되었다. 그렇다면 북한의 씨름과 남한의 씨름은 같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북한의 씨름은 매트 경기장에서 상의를 입고 일어서서 샅바를 잡는 점이 모래판에서 앉은 상태에서 샅바를 잡는 남한과 다르다.

▲ 1964년 제1회 전국씨름대회 포스터. /정현수 기자
▲ 1964년 제1회 전국씨름대회 포스터. /정현수 기자

씨름 경기에서 우승하면 주로 황소 트로피를 많이 받는데, 이는 옛날부터 씨름장사에게 황소를 주었던 데서 기인한 것이며 지금은 씨름장에서 황소를 타고 돌 수 없으니 가마를 타는 우승 축하 뒤풀이를 펼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단오와 백중, 추석에 씨름을 즐겼다. 요즘은 실내경기가 대부분이어서 설날에도 경기가 펼쳐진다.

한때 씨름 경기가 있는 날이면 온 가족을 TV 앞으로 모여들게 하던 전성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야구와 축구 등 다른 종목에 밀려 인기가 예전만큼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창원시는 2020년 10월 전국 최초로 '씨름 진흥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세계의 문화유산까지 된 씨름이 다시 온 국민의 민속놀이로 부활하기를 기대한다.

◇외국의 씨름은

많은 나라에서 씨름과 비슷한 놀이가 행해지고 있다. 마산박물관에서 영상으로 소개하고 있는 몇 가지를 살펴본다.

△야을르 귀레쉬(터키): 선수들은 가죽바지를 입고 온몸에 오일을 바르고 경기에 참여한다.

▲ 몽골인들이 몽골의 씨름인 부흐를 하고 있다. /정현수 기자
▲ 몽골인들이 몽골의 씨름인 부흐를 하고 있다. /정현수 기자

△부흐(몽골): 체급과 나이 구분 없이 경기가 이루어지며 선수들은 짧은 상의와 하의를 입으며 가죽 신을 신는다.

△루차 카나리아(스페인): 테레로라는 원형 경기장에서 시합하며 반바지에 반소매 옷을 입는데 왼손으로 상대의 바짓단을 잡는 형태가 우리의 샅바 잡기와 비슷하다.

△뤼트(세네갈): 세네갈에서는 축구보다 더 인기 있는 스포츠다. 두르는 형태는 다르지만, 반바지에 샅바를 두르고 경기한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