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성매매 단속과정에서 추락사고로 다친 이주여성을 다인실 병실에서 조사한 것은 인권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판단이 나왔다. 또한 인권위는 경찰이 이주여성을 조사하면서 인신매매 피해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식별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관련 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태국 이주여성인 ㄱ 씨는 지난해 2월께 한 마사지 업체에서 성매매를 하다 경찰단속을 피해 건물 4층에서 뛰어내렸다. 정신을 잃고 응급실로 옮겨진 ㄱ 씨가 눈을 뜨자 경찰은 통역사도 없이 휴대전화 번역기를 이용해 범죄 사실 등을 고지했다. 이후 ㄱ 씨는 다수 환자가 입원한 병실로 옮겨졌고, 병상에서 커튼만 친 채 경찰 조사가 이뤄졌다. 이주여성단체 등으로 구성된 진정인들은 "치료를 받는 상황에서 조사를 강행했으며, 인신매매 피해자 식별조치도 없었다"는 취지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12일 "경찰이 다인실 입원실이라는 공개된 장소에서 피해자 성매매 혐의를 조사한 것은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끼도록 하는 인권침해 행위"라며 "이 같은 행위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피해자의 인격권, 신체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국 내 사회적 지지기반이 미약하고 사법제도에 접근성이 낮은 이주여성을 조사하면서 신뢰관계인 동석 조치를 하지 않은 점과 관계 규정에 따라 영사기관원과의 접견·교통을 할 수 있음을 알려 보호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하지 않은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이번 조사에서 ㄱ 씨가 태국에서 에이전시로부터 허위 정보를 받아 한국에 입국했고, 태국 국적 에이전시에 여권을 빼앗긴 채 성매매 일을 하는 등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노출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경찰은 "조사 중에 인신매매 피해자임을 주장한 사실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이주여성인 피해자가 당시 한국 사법제도에 대한 접근성이 낮으며, 인신매매로 말미암은 성 착취 피해에 쉽게 노출될 위험이 큰 집단에 속했다"며 "피해자 혐의를 조사하기 전 '유엔 인신매매방지의정서'에 따라 인신매매 피해자 여부에 대한 식별조치가 선행될 필요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경찰청장에게 △인신매매 피해자 식별절차·방식 및 보호조처 등 관련 규정·매뉴얼을 세부적으로 마련하고 일선 경찰서에 교육할 것과 △이주여성 등 취약한 계층을 수사할 때 관계기관·단체와 연계해 신뢰관계인 동석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하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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