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워터젤리
딸이 여덟 살 때였지.
경기도 부천에 사는 할머니 집에 가는 길이었어.
우리는 웬만하면 가는 길에 휴게소를 다 찍고 가는 편이야.
아내는 딸 간식은 챙겼는데 '워터젤리'라는 게 있더라고.
젤리인데 액체 비슷해서 빨대로 먹는 것 같아.
"엄마, 이거 좀 드세요."
또 초등학교 들어갔다고 '효도'라는 것을 배웠나 봐.
엄마에게 한입 권하는 모습이 대견하더군.
하지만 딸은 엄마 흡입력을 간과했지.
한 번에 쑥 빨려 들어가는 젤리에 화들짝!
효심이고 나발이고 빨대를 꽉 움켜쥐더군.
가까스로 젤리의 절반 이상을 지켜냈어.
본능이 먼저지 뭐.
2. 팥빙수
딸 학원 앞 건널목에 있는 빵집 앞에서
샌드위치와 팥빙수를 먹었어.
뜨거운 햇살 아래 딸과 함께 거리 테이블에 앉으니
유러피언이 이런 건가 싶더군.
길만 건너면 되는 학원에 갈 시간이 다 됐다며
자꾸 몇 시냐고 묻는 거야.
그래서 다음, 다음 신호 바뀔 때 건너면 된다고 했지.
팥빙수는 절반 정도 남았고.
"아빠, 있잖아… 나 사실 학원 조금 늦어도 돼."
머뭇거리면서 딸이 말하더군.
그래, 학원 시간이 따위가 뭐가 중해! 일단 먹어야지!
딸은 네 번째 신호가 바뀔 때 마지막 얼음 덩어리를 원샷 하더군.
좋아 죽겠는데 입은 얼얼하고 머리는 깨지는 듯한 그 표정이
조금 안타까웠어.
이승환 기자
hwan@idomin.com
2023년 3월부터 시민사회부 1호기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