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무심한 행정' 생명 초토화 아랑곳 않고 돈벌이·홍보에만 군침제주 들불축제 10년째 진행 식물 53종 소리 없이 사라져
하나는 정월 대보름에 맞춰 달집태우기 혹은 쥐불놓이의 연장선상에서 '소원 빌기' 행사를 벌이는 것이고, 나머지는 억새밭을 주요 관광 자원으로 삼는 지자체가 억새를 더욱 많이 자라게 하려고 억새를 태우는 것이다.
사망자를 낸 창녕 '화왕산 억새 태우기'와 최근 논란이 된 경기 하남시 '미사리 들불축제', 제주 '새별오름 들불축제'가 전자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 중 올해 처음 선보인 '미사리 들불축제'는 학계와 환경단체로부터 집중 비난받고 있다.
주최 측인 하남시는 들불축제 장소인 억새밭이 어차피 도시근린공원 조성 사업으로 '손질'될 것이기 때문에 억새도 태우고 볼거리도 만들자는 차원에서 이 행사를 준비했다. 그러나 무심한 행정이 보기에 '폐천 용지'일 뿐인 이곳은 일반 철새를 포함해 멸종위기에 놓인 수십 종의 희귀조류와 토끼·너구리·담비 등의 서식지로 한강유역환경청도 이 일대를 '생태계 변화 관찰지역'으로 지정해 놓았다. 이런 공간을 관광객 4만 5000여 명(하남시 추산)의 한번 '불구경' 장소로 삼은 것이다.
화왕산 억새 태우기는 결국 70명 가까운 사상자를 냈고, 미사리 축제는 수십 종의 조류의 안식처를 빼앗았다.
◇식물 4종 중 1종이 죽어 = 올해로 10년째 행사를 이어 온 제주 새별오름 들불축제에 대한 환경단체의 모니터링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제주시는 겨울철 비수기 대표 관광 상품으로 지난 1997년부터 새별오름 52만 ㎡ 중 산허리부터 꼭대기까지 20만 ㎡를 태우는 들불축제를 벌여 왔다. 이에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지난해 4월부터 6월까지 새별오름 들불축제 지역(제주시 애월읍)의 식생을 관찰한 결과를 지난 1월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불을 놓지 않은 지역에서는 62과 192종의 식물이 채집됐으나 불을 붙인 지역은 45과 139종만 확인됐다. 53종의 식물이 불놀이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 지역에서 꾸지뽕나무, 찔레나무, 예덕나무, 떡갈나무 등 관목류가 사라졌다고 보고했다.
이에 제주환경련은 "새별오름의 불 놓기는 식물 생장과 다양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식생의 변화에 따른 곤충과 버섯 등을 포함한 균류의 서식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된다"며 지속적인 관찰을 요구했다.
◇억새 태우기 억새 생장에 도움 안 돼 = 이와 함께 억새로 관광수입을 올리는 지자체는 억새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자 억새 태우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지난 96년부터 '민둥산 억새 풀 축제'를 열고 있는 강원도 정선군은 해가 갈수록 억새 군락지가 줄어들자 군민과 군의회 요구를 받아들여 억새를 태울 계획을 세운다. 이를 위해 창녕군 화왕산과 전남 장흥군 천관산을 현장 방문했다.
2006년 11월 8일 열린 군의회 본회의 회의록에는 벤치마킹하고자 방문한 창녕 화왕산과 전남 장흥군의 사례가 나온다.
당시 농림과장은 "우리 군에서 창녕 화왕산 현지를 방문해 불놓기 후의 억새 생육 상태에 대해 물어보니 창녕군 관계 공무원들의 의견은 불놓기 행사 추진 후에 억새의 생육상태가 점차 나빠진다고들 했다"면서 "장흥군은 매년 9월 하순 억새축제를 해 관광자원화 홍보에 주력하면서 2년에 한 번씩 헬기로 천관산 정상에 비료를 뿌리고 억새 생육 환경에 저해되는 타 식물은 인력으로 제거하는 방법으로 억새를 관리하고 있었다"고 보고했다.
이어 "불놓기 행사 시 대형산불과 안전사고 발생우려가 잔존해 있고, 자연 생태계 파괴로 환경단체의 반발 또한 거셀 것으로 예상하며, 특히 현행법상(산림자원 조성 관리법) 산림 내에 불놓기 허가를 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며 전남 장흥군의 천관산 사례를 채택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환경단체 반대로 방향 바꾸기도 = 울주군도 2000년 신불산(1289m) 정상에 있는 억새 평원(4ha)을 태우려고 시도했다가 환경단체 반발로 중단한 바 있다.
당시 '울산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은 생태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 이 내용을 시민에게 널리 알렸다. 국민운동은 당시 신불산 정상의 억새를 태울 경우 그곳에 사는 도마뱀과 개불알꽃, 미치광이풀 등 희귀 동식물이 초토화돼 사막화가 진행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이에 울주군은 계획을 철회하고 억새 평원을 '자연생태계 공원'으로 보호하는 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당시 반대 목소리를 높였던 울산 생명의 숲 정우규 대표(식물분류학 박사)는 "억새밭을 태우면 오랫동안 쌓였던 유기물질은 모두 사라지고 무기물질도 바람에 날려간다"며 "그곳을 영양분 삼던 작은 동물과 식물, 미생물은 영양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결국은 생물이 살 수 없는 열악한 지역이 된다"고 주장했다.
◇"살아 있는 산에 불 놓아선 안 돼" = 정우규 대표는 창녕군이 억새 태우기 축제를 시작할 무렵부터 반대해왔고, 행사 장소 아래 지점에서 고산습지 3곳을 발견해 이를 알리기도 했다.
정 대표는 "불 한번 질러 하루에 관광객 1만 명이 1만 원씩 쓰게 하는 것보다 억새를 제대로 보존해 1년 내내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게 더 이익이지 않느냐"면서 "불을 지르면 생태계 파괴는 물론이고 화왕산성 돌들이 터져 무너지는데, 그에 대한 자문은 했는지 모르겠다. 애초 화왕산성은 억새 태우기를 할 장소가 아니다"고 말했다.
경희대 명예교수인 윤무부 박사는 "억새밭은 철새와 텃새의 안방 역할, 이불 역할을 하는 중요한 곳"이라며 "달집을 태우거나 논둑에 불을 놓는 것과는 비교해서는 안 된다. 억새밭에는 새뿐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가 사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윤 박사는 "한 번 볼거리 만든다고 억새를 태우기 시작한 자치단체장이 누구인지 이름을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이번 미사리 축제와 화왕산 참사를 계기로 살아 있는 산에 불을 놓는 축제는 모두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환경운동연합 안명균 사무처장은 "미사리 억새밭에는 올겨울에도 200마리의 큰 고니가 날아오는 철새 도래지였다"면서 "그런 곳을 보존은커녕 불로 태웠으니 '생태관광'을 모르고 한 짓"이라고 비판했다. 경기환경련은 지역주민의 의견을 모아 내년에는 이 행사가 열리지 않도록 힘을 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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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원 기자
dada@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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