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39명 하루 산타로 변신해 아이들 만나
아이들과 스케이트 타면서 추억 쌓기
사라진 공동체 회복에 힘 모은 청년들

산타를 믿습니까? 착한 일을 하면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믿으면서 한 해를 보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합니까? 어느덧 어른이 됐지만 그를 애타게 기다리던 겨울날을 잊지 못합니다. 혹시 산타를 믿지 않습니까? 어느 날 갑자기 불쑥 선물을 주고 가는 이를 ‘산타’라고 부른다면, 그는 어쩌면 아주 가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청년 산타들이 지난 23일 창원 의창스포츠센터 빙상장에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있다. /김다솜 기자
청년 산타들이 지난 23일 창원 의창스포츠센터 빙상장에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있다. /김다솜 기자

“올해는 무슨 착한 일을 했어요?”

아이들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또박또박 답한다. 이다은(9) 양은 아픈 엄마를 돌봐줬다고 했다. 이 양은 “엄마가 아파서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물티슈를 떼서 엄마 이마 위에 올려 줬다”고 말했다.

“울지 않고 부모님 말을 잘 들었어요”, “친구에게 생일선물을 줬어요”, “학습지를 미루지 않고 잘 풀었어요”. 산타는 올해도 착한 일을 한 아이들에게 목도리를 선물했다.

지난 23일 오후 창원시 의창스포츠센터 빙상장은 ‘산타 마을’로 변했다. 이날 하루 ‘산타’를 자처한 어른들이 아이들 손을 맞잡았다.

경남청년내일센터, 경남대학생겨레하나, 창원주민대회조직위원회 청년봉사단은 ‘사랑의 몰래 산타 대작전’을 준비했다. 이 행사에 청년 39명, 아동 33명이 함께했다. 아이들에게 선물을 직접 전달해주는 청년들은 ‘산타’가 되고, 나머지 봉사자들은 ‘산타 요정’이 되었다.

청년 산타들은 아이들과 함께 스케이트를 타면서 추억을 쌓았다. /김다솜 기자
청년 산타들은 아이들과 함께 스케이트를 타면서 추억을 쌓았다. /김다솜 기자

◇아이 속도에 맞춰 달리는 산타 = “저는 부모님 일을 도와줬어요. 빨래하고, 설거지도 했고요. 쓰레기도 버렸어요. 아직 세 살밖에 안 된 동생이 있는데 동생도 잘 돌봐줬어요.”

최한결(10) 군이 말했다. 이날 하루 최 군의 짝으로 맺어진 산타요정 조태후(31) 씨가 곁에서 살뜰히 아이를 챙긴다. 조 씨는 “평소 아이들을 좋아한다”며 “아는 동생이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 산타 모집 공고를 보고 알려줬는데 거리낌 없이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산타와 함께 빙상장에서 스케이트를 타기로 했다. 산타는 아이의 발에 맞는 스케이트를 신겨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김가을·서명재(12) 군은 태권도 학원에서 만난 친구 사이다. 이들은 부모님 권유로 행사에 참여했다. 처음 스케이트를 탄다면서 한껏 들뜬 표정을 지었다.

아이들은 산타와 함께 빙상장으로 들어섰다. 아이들이 빙판 위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산타들도 아이들의 속도에 맞춰서 느릿느릿 움직였다. 아이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손을 잡아주고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느덧 빙판에 적응했는지 점점 빨라졌다.

“우리 저기서부터 여기까지 안 넘어지고 왔어!”

여기저기서 빙판 위에 엉덩이를 찧는 소리가 들려왔다. 산타는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스케이트를 잘 타고 있다면서 격려하는 말도 아끼지 않았다.

1시간 넘게 스케이트를 타니 아이들 볼이 붉게 물들었다. 이세빈(8) 양은 “오늘 산타할아버지도 만났고, 산타 요정이랑 같이 스케이트 타서 재밌었다”고 웃었다. 산타 요정도 즐거웠다. 김민기(27) 씨는 “친구가 연말에 뭐라도 해보자고 제안해서 하게 됐다”며 “봉사는 처음이라 걱정했지만 아이들과 함께여서 재밌었다”고 말했다.

청년 산타들이 23일 사랑의 몰래 산타 행사가 끝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다솜 기자
청년 산타들이 23일 사랑의 몰래 산타 행사가 끝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다솜 기자

◇배려로 만든 하루 = 17살부터 34살까지 다양한 나이대 산타가 찾아왔다. 산타들은 아이들을 만나기 전 배려를 교육받았다. 아이들도 존중받기를 원하니 반말보다는 존댓말을 사용해야 하고, 취향을 물어보는 질문을 주로 하라고 안내받았다.

이혜원(26) 씨는 “외모를 칭찬하지 말고, 결손가정이나 조부모 가정이 있을 수 있으니 부모님이라 말하지 말고 보호자라는 단어를 쓰라고 배웠다”고 말했다.

이 씨는 “아이들과 일대일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좋았다”며 “아이들에게 특별하지는 않아도 훈훈한 경험을 만들어주고, 나중에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까지 미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사랑의 몰래 산타는 경남청년내일센터 등이 2015년부터 매년 이어온 행사다. 아이들에게 선물을 줄 수 있도록 봉사자들에게 1만 원씩 걷었다. 경남청년내일센터와 진보당 의창구청년위원회, 꽃피는열두달, 개인 등에게서 70여만 원을 후원받기도 했다.

김서진 2023년 사랑의 몰래산타 봉사단장은 “요즘 공동체가 많이 사라지고, 개인주의가 극대화됐다”며 “청년들끼리 공동체 문화를 어떻게 하면 다시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행사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연민의 감정으로만 다가갈 때가 잦잖아요. 이 사람은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봉사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연민을 넘어 연대로 가야겠더라고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가 다 같이 잘 살 수 있을지 고민하면 좋겠어요.”

이날 행사가 끝나고 나서 산타와 아이들은 아쉬움을 남긴 채 헤어졌다. 산타들은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당부도 잊지 않는다.

“내년에도 착한 일 할 거죠?”

/김다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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