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에서 세 번째 퀴어문화축제가 열립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만 갖춘다면 누구나 입장할 수 있습니다.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존중의 단계로 넘어가기 어렵습니다. 경남에서는 언제부터 퀴어문화축제가 생겼을까요. 성소수자 인권이 우리에게도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기사는 성소수자와 퀴어문화축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드리고자 씁니다.

 

2018년 사천에 사는 한 고등학생이 다짐했다.

'경남에서 퀴어축제를 열겠어!'

그해 서울에서 생애 첫 퀴어축제를 경험하고 돌아온 후였다. 5년이 흘렀지만, 그곳에서 느낀 강렬한 감정은 여전히 생생한 듯이 보였다. 그때를 회상하며 먼 하늘을 바라보는 듯한 그의 눈길, 이내 다시 싱긋 웃을 때 반짝이는 눈망울, 또 마치 기도를 하듯 꼭 쥔 두 손은 검정 마스크로 가린 표정을 대신했다.

"울컥했어요. 늘 저를 숨기는 데만 익숙했거든요. 퀴어축제에서는 저를 당연하게 받아주고 또 인정해줬어요. 경남으로 돌아와도 잊히지 않더라니까요. 늘 혼자 힘들어했는데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동네에도 분명 나 같은 사람들이 있을 텐데…."

 

활동명 민규(23), 그는 2018년 지역에서 함께 전국 퀴어축제를 돌아다니던 지인 몇 명과 의기투합해서 경남퀴어축제 조직위원회를 꾸렸고, 2019년 11월 비로소 경남 창원에서 처음 퀴어문화축제를 열었다.

제1회 경남퀴어문화축제가 2019년 11월 30일 롯데백화점 창원점 옆 도로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 참가자들. /김연수 기자

당시 창원의 대로를 비우고 열린 축제는 성소수자들에게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기회였다. 민규 씨가 서울 축제에서 느꼈던 울컥한 감정과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느끼는 자존감을 경남지역 성소수자들과도 오롯이 공유한 것. 그러나 이성애자들은 '느낀다'는 감각도 없이 누리는 일상적 행복을 축제장에서야 누리는 역설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4년 전 첫 축제는 '퀴어'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번 두 번째 대면 축제는 모두의 축제로 꾸리는 것이 화두이다. 성소수자들만이 가시화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 누구든 구별 없이 어울리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민규 씨는 "처음 축제를 연다는 생각으로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오는 25일 오전 11시 창원시 성산구 창원광장 남쪽도로(상남동)에서 제3회 경남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온라인에서 개최했다. 2021년부터 중단됐다가 올해는 다시 야외에서 열게 됐다. 

-두 번째 대면 축제라서 감회가 남다를 듯하다.

"대면 축제를 다시 개최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공백기가 있었던 만큼 처음 축제를 연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다. 이번에는 '문화축제'에 방점을 뒀다. 대중적인 축제가 되었으면 한다. 지역에서 축제가 열리면 그냥 지나가다가 '재미있어 보이네'라면서 편하게  구경하고 논다. 퀴어문화축제도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와서 즐기면 된다. 사실 그래야 더 의미가 있다."

 

-축제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어떤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나?

"편안했으면 좋겠다. 제가 경남에 살다 보니까, 경남에는 성소수자 소통창구 혹은 정말 힘들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나밖에 없다는 공허함, 쓸쓸함이 있었다. 축제에서는 그런 감정을 덜었으면 좋겠다. 다녀가실 때는 아무런 걱정 없이 오늘 하루 행복했다는 그 기억만 딱 가지고 가셨으면 좋겠다."

민규 씨는 지나가는 듯한 말로 경남지역에는 벽장 속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수도권처럼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숨어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냈을 때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 지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조차 가늠할 수가 없는 '불확실성'은 그 자체로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민규 경남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이 창원 한 거리에 서 있다. /김연수 기자
민규(활동명) 경남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이 창원 한 거리에 서 있다. /김연수 기자

-경남에도 가시화되지 않아서 그렇지, 성소수자가 많지 않나?

"정말 다들 꼭꼭 숨어 계시더라. 갑자기 대뜸 '나 성소수자예요' 하고 나올 수도 없는 거고, 그렇다고 경남에 이렇다 할 모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숨게 된다. 그래서 제가 열어드리고 싶은 거다. 다들 나오셔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 또 너무 힘들 때는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축제장까지 발걸음하는 게 힘든 분들 분명 있을 거다. 어찌 보면 용기가 필요한 거니까. 다만 경남에서도 퀴어축제가 열리니까, 어디선가 축제 소식을 접할 그들에게 경남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고, 당신이 잘못된 게 아니라고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첫 축제는 청소년으로서 '축제를 한 열어보자'라는 열정으로 추진했다면 이번에는 동력이 다를 것 같다. 축제 기획자로서 마음가짐은 어떤가.

"퀴어 축제를 반대하시는 분들이 두드러지지만, 반대하지도 찬성하지도 않는 무관심한 분들이 사실 훨씬 더 많다. 그래서 이 축제나 퍼레이드가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면 오히려 반감을 사게 되는 건 아닐까 이런 걱정도 한다. 드러내지 않는 반감이 더 무섭다. 성소수자 가시화도 물론 중요하지만, 시민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한다. 성소수자끼리도 정체성이 정말 다양한데 당사자가 아닌 분들은 얼마나 더 어렵겠나. 이제는 반대하지도 참여하지도 않는 무관심한 분들에게 저희가 최대한 다가가야 한다고 본다."

 

-퀴어퍼레이드는 어떤 의미가 있나?

"항상 숨겨왔던 나 자신을 이렇게 당당히 드러내고 거리를 걸어갈 수 있다는 것, 그것만큼 행복한 시간도 없을 것 같다. 사실 축제가 끝날 때가 두렵다. 축제장을 벗어나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 길 말이다. 퍼레이드를 하면 저와 함께해 주는 사람들하고 다 같이 나간다. 그러면 든든하다. 저희가 1회 때 원래는 창원광장을 반 바퀴 내지 4분의3를 도는 코스였는데, 그 당시 반대하시는 분들과의 충돌이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4분의 1바퀴만 돌았다. 참 아쉬웠다. 올해는 축제장을 크게 한 번 감싸는 코스로 창원광장을 2분의1 정도 돌 예정이다.  창원광장은 굉장히 크고 또 대표성이 있는 장소다. 그곳에서 무지개를 펼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축제장을 찾아주실 분들이나 시민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축제'이기 때문에 공연도 있고, 참여형 부스도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지나가다가 그냥 들어오시라. 분명 '생각보다 재밌는데?'라고 느끼게 될 거다."

/김연수 기자 ysu@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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