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곳곳에 나치 선동 악용 역사 전시해
전쟁·독재 시기 미디어 상관관계 교육 펼쳐
적극적인 시민 정치 교육·언론인 지원으로
언론 민주주의 발전에 역할 중요성 각인

한국 언론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으로 인쇄 매체 힘은 더 떨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속칭 '기레기'로 표현되는 신뢰의 위기입니다. 지역신문은 더욱 쪼그라들고 있습니다.

위기에 처한 지역언론 활로를 찾고자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관한 '디플로마-로컬저널리즘' 연수에 참여해 독일(10월 18~28일)을 다녀온 이야기를 두 번에 걸쳐 소개합니다. 독일은 구텐베르크 인쇄술 탄생지이고, 그만큼 신문 역사가 오래된 곳입니다. 특히 자치분권이 이뤄진 연방국가여서 지역신문이 발전하고 사람들은 더 많이 봅니다. 부러운 일입니다.

한국과 분단을 겪은 처지는 같으나 정치체제와 사회구조가 달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독일 사회에서 언론의 지위와 언론을 바라보는 태도를 먼저 살펴봅니다. 언론을 통제, 장악하려는 한국 상황과 비교해볼 만합니다.
 
◇박물관, 역사 속 언론 교육장 =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에 들어서면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StandWithUkraine)는 선간판이 보인다.

"전쟁은 평화로운 의사소통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팀은 우크라이나 국민과 연대하고 있습니다." 이 문구는 소통 도구 역사를 전시한 박물관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단초다. 기자는 사실 들어설 때 선간판을 놓쳤고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오면서야 어떤 의미인지 알아차렸다.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에 들어서면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StandWithUkraine)는 선간판이 보인다. /표세호 기자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에 들어서면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StandWithUkraine)는 선간판이 보인다. /표세호 기자

1898년 세계 최초 우편박물관으로 설립됐고, 2차 세계대전과 독일 통일 후 우편뿐만 아니라 소통을 위한 다양한 도구를 종합한 박물관으로 거듭났다. 우편, 전화, 전보, 모스, 인쇄, 라디오, 방송, 인터넷으로 발전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1440년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금속활자는 돈 있는 사람만 소유한 지식을 대중으로 전파했고, 베를린에만 100여 개 신문이 발행될 정도로 인쇄매체가 발달한 시대로 이어졌다. 인쇄관에는 세계 최초 금속활자 고려시대 직지심체요절(1377년)도 소개돼 있다.

박물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권력의 소통 차단과 통제다. 나치(1933~1945년)가 집권해 2차 대전이 끝나기 전까지 소통을 어떻게 변질시켰고, 악용했느냐다. 신문은 통폐합됐고, 똑같은 신문만 존재했다.

나치가 가정에 배포한 국민 라디오 'VE301'도 전시돼 있다. 설명에는 "모든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나치를 전달하는 데 사용됐다"고 적혀 있다. "모든 시민은 히틀러의 말을 들을 의무가 있다", "전 독일은 지도자를 듣는다" 같은 나치 선전 구호와 "방송은 선전의 관점에서 긍정적 보도를 해야 한다"는 당시 제국선전부장 괴벨스 연설도 있다.

해설사 아드리안 씨는 "라디오는 신문과 같이 결합하면서 속도가 빨라 프로파간다 매체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 전쟁의 가장 중요한 무기로 활용됐다"며 "사람을 지배하고 그다음에 어떤 마을을 점령한다는 만화도 있을 정도로 힘이 강했다"고 설명했다.

독일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은 평일에도 학생들로 붐빈다. /표세호 기자
독일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은 평일에도 학생들로 붐빈다. /표세호 기자

방송은 어떨까. 나치 시대 이후에도 권력은 전쟁에서 더 유용하게 방송을 악용하고 있다. 전쟁을 게임 장면처럼 전 세계에 전파한 1990년 걸프전 CNN 생중계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후로 그런 충격적인 사례는 이어졌다. 이라크 후세인 체포 장면,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장면이 가정마다 그대로 전해졌다.

지금도 미디어가 악용되고, 언론이 권력에 부역하는 것은 사실이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이 벌어진 지 한 달, 이스라엘 공격으로 가자지구 사망자는 1만 명을 넘어섰으며, 어린이가 40%를 차지한다.

아드리안 씨는 "전쟁 영상을 누가 주는가?"라며 "특히 최근 팔레스타인 폭격 관련 상황과 결부해 이야기할 수 있다. 보는 상황이 완전한 사실은 아니다. 새로운 접근, 비평이 필요하다. 그래서 저널리즘, 방송을 어떻게 다루는가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상과 연결하는 인터넷 시대에 누가 연결되고, 누가 통제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평일에도 박물관은 학생들로 붐빈다. 이곳처럼 독일에는 나치가 다양한 매체를 어떻게 통제하고, 매체는 어떻게 부역했는지 기록해 교육장 역할을 하는 박물관이 많다.

마인츠 '구텐베르크박물관'에도 정보전달 수단 발전사와 함께 정보 검열 역사와 나치 언론탄압을 중요하게 전시하며, 세계언론자유지수도 소개하고 있다. 포츠담광장에 있는 '영화방송박물관'에서는 나치 시대 선전영화를 볼 수 있다. 아헨 '국제신문박물관'에는 '신문은 프로파간다 수단'이었다는 나치 시절 신문이 전시돼 있다.

아드리안 씨는 "커뮤니케이션의 역할, 2차 대전 역사에서 독일이 통신과 미디어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인식하는 것은 학생들한테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해설자 아드리안 씨가 독일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에 전시된 인쇄매체 발달을 촉발한 금속활자를 설명하고 있다. /표세호 기자
해설자 아드리안 씨가 독일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에 전시된 인쇄매체 발달을 촉발한 금속활자를 설명하고 있다. /표세호 기자

◇정부 정치교육기관이 언론인 지원 = 독일연방정치교육원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52년 서독의 수도였던 본에 설립됐다.

나치가 자행한 만행을 되풀이하지 않고자 정치교육을 하는 연방정부 기관이다. 전쟁과 독재, 유대인과 소수자를 학살한 과거를 벗어나려면 민주주의를 지키는 민주시민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라고 볼 수 있다. 교육원은 교육과 더불어 출판, 멀티미디어 콘텐츠 보급을 한다. 정치교육 세미나와 학교 교육 지원도 한다. 

언론인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도 시행하고 있다. 매달 언론인 잡지를 발행하고 언론인들이 원하는 주제로 포럼·세미나도 연다. 기자들 모임은 주로 사례를 서로 공유하면서 더 나은 기자가 되는 게 목적이다. 최근에 전쟁이 벌어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기자 20명이 교육원 지원을 받아 다녀왔다.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다니엘 씨는 "여러 주장을 지역신문이 다 모아 알려줘야 한다. 민주주의는 이렇게 이뤄진다. 발언권이나 발언을 신문을 통해서 알리는 게 언론의 목적이다"며 특히 지역언론이 민주주의를 위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일연방정치교육원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다니엘 씨가 교육원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표세호 기자
독일연방정치교육원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다니엘 씨가 교육원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표세호 기자
독일 본에 있는 독일연방정치교육원 1층 출판물 전시판매장. /표세호 기자
독일 본에 있는 독일연방정치교육원 1층 출판물 전시판매장. /표세호 기자

지역언론이 힘들어하는 부분을 모두 소통되게 알려주고, 현지인들을 위해서 무엇이 중요한지, 도시에서 정치적으로 무슨 일들이 이뤄지는지 알려주고 더 참여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원이 진행하는 시민 정치교육과 언론인 지원은 민주주의 강화로 귀결된다.

다니엘 씨는 "국가가 언론을 통제하거나 언론에 개입하면 안 된다. 언론이 민주화를 위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나치 독재 정권이 언론플레이를 많이 했었는데, 그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다"라고 설명했다.

언론을 바라보는 독일 사회의 지향은 헌법과 같은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 5조( 표현·예술·학문의 자유)에 그대로 담겨있다. 

"누구든지 자기의 의사를 말, 글, 그림으로 자유로이 표현·전달하고, 일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정보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알 권리를 가진다. 신문의 자유와 방송과 영상으로 보도할 자유는 보장된다. 검열은 허용되지 아니한다."

/표세호 기자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KPF 디플로마 로컬저널리즘' 교육 과정의 하나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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