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보상은 진화위 진실규명과 별도
피해자·유족들 법원에 소송 제기
증거 부족 등 패소하는 경우도 있어

진화위 내 보상심의위 신설 등 제안
해법 담긴 개정안 국회 행안위 계류 중
"고령인 피해자 고려해 문제 해결 시급"

"증거가 부족하다는 대법원 판결을 듣고 창원으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울었다. 멀쩡하던 아버지가 보도연맹사건으로 죽고 집안이 풍비박산 났는데 국가는 또다시 우리 가족을 외면했다."

◇민간인 희생자 두 번 죽이는 배·보상 소송 = 조정숙(72·창원시 마산회원구) 씨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인 1950년 7월 마산지역 국민보도연맹 사건 때 희생됐다. 

어머니와 함께 힘겹게 생계를 유지하던 조 씨는 2005년 출범한 1기 진실화해위원회에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한 진실규명 신청을 했다. 다행히도 해당 사건과 관련해 국가 책임이 인정된다는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다. 

그는 "아버지가 그렇게 희생되고 할머니는 화병으로 4년 만에 돌아가셨다"며 "어머니 혼자 나를 돌보셨는데 친척들이 찾아와 우리 때문에 공무원에서 떨어졌다며 매일 같이 행패를 부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나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며 "온갖 수모를 다 당했던 어머니의 한을 풀어주고 아버지 명예를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었다"고 덧붙였다.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경남유족회, 민주노총 경남본부, 민주당·정의당·민중당·노동당·녹색당 경남도당 등 16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이 2019년 7월 23일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기본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경남유족회, 민주노총 경남본부, 민주당·정의당·민중당·노동당·녹색당 경남도당 등 16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이 2019년 7월 23일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기본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진실화해위원회 결정 이후 조 씨는 지난 세월을 보상받고 아버지의 온전한 명예회복을 위해 2011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판결까지는 햇수로 5년이 걸렸다. 조 씨는 이 기간을 "죽지 못해 살았다"고 표현했다. 

조 씨의 바람과 달리 재판은 지지부진했고 1심부터 항소심까지 연이어 패소했다. 그럼에도 조 씨는 대법원 판결은 다를 거라는 기대감을 안고 최종 판결 날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는 "주위에서 다들 안 될 거라고 말했지만,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면서 "패소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는 며칠 동안 밥도 못 먹고 내내 울기만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조 씨는 아버지 사건과 관련해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 다시 진실규명 신청을 했다. 아버지가 당시 마산형무소에 있었다는 기록과 아버지의 희생 사실을 입증할 관련 서류를 추가로 찾았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돈 몇 푼 받자고 이 복잡한 소송을 했던 것은 아니다"며 "돌아가실 때 눈도 못 감은 어머니를 봐서라도, 갑자기 끌려가 죽은 아버지 혼을 봐서라도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그는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죽기 전까지 승소하고 국가 사과와 제대로 된 보상을 받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2013년 7월 천주교 마산교구청 강당에서 열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 제63주기 6차 창원지역 합동위령제 및 추모식에서 유가족들이 눈물을 닦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2013년 7월 천주교 마산교구청 강당에서 열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 제63주기 6차 창원지역 합동위령제 및 추모식에서 유가족들이 눈물을 닦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 결정과 동시에 배·보상해야 = 현행법상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진실규명 결정을 받더라도 당사자 혹은 유족들은 각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이마저도 법원마다 판단 기준이 다른 까닭에 유족들이 패소한 사례도 있다. 

또한, 배·보상 소송은 조 씨 사례처럼 법원 판결까지 수년씩 걸린다는 문제도 있다. 대다수 판결이 대법원까지 이어지며 짧게는 3~4년, 길게는 6년이 넘게 재판이 진행되기도 한다. 

노치수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경남유족회장은 "유족들 대다수가 70~80대라 재판 진행되는 1·2년이 이분들에게는 피 말리는 시간"이라며 "소송 비용도 만만치 않고 패소할 수도 있으니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괴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 회장은 "법원에서는 진실화해위원회 결정 외에 증거를 추가로 요구하기도 한다"며 "70년이 더 지난 사건인데 증거가 있을 리 있겠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로 조 씨 사례처럼 법원이 증거를 요구하거나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결정문을 신뢰하지 않으면 재판에서 질 가능성이 크다. 

조 씨 사건을 맡았던 이명춘(법무법인 정도) 변호사는 "당시 법원에서 진실화해위원회 결정문 자체를 잘 안 믿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그렇다 보니 유족들이 증거를 가져오거나 목격자가 증언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런 자료가 남아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2기 진화위 결정이 추가될 텐데 법원이 증거 문제를 걸고 넘어지면 실질적인 보상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며 "현시점에서는 진실화해위원회 결정을 토대로 적정 금액을 지급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과거사 배·보상 관련 내용을 담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제1소위에 계류 중이다. 해당 개정안은 20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도 다뤄지지 않았다. 

개정안 주요 내용은 △보상심의위원회 신설 △진실화해재단 설립 명문화 △조사기간 연장 △유해의 조사·발굴 근거규정 마련 등이다. 

이 가운데 '보상심의위원회 신설'이 배·보상 문제 해결을 위해 제시된 해법이다. 

개정안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사건은 국가가 보상 근거 및 절차규정을 마련해 피해자들이 개별적으로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지 않더라도 실질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명시돼 있다. 또한, 소멸시효가 완성된 1기 진실화해위원회 결정 사건도 구제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정근식 전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은 "현재 독립 국가기관인 진실화해위원회가 조사를 해서 결정을 내린 사안을 법원에서 한 번더 판단을 하고 있다"며 "피해자 중심주의 시각으로 보면 진실화해위원회에 심의위원회를 두고 배·보상 문제를 다루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 전 위원장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정부가 과거사 문제 해결에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가 중요한데, 지금까지 모습을 보면 비중 있게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며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희생자들의 완전한 피해회복을 위해서라도 배·보상 문제는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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