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연구개발사업 10년 일몰제 도입
중장기 과제 지속적인 지원 방안 필요

2023년도 연구 과제를 검토하는 연구원 내부 회의에서 실무담당자가 "○○과제는 연구개발 기간 10년을 초과해서 더는 지원할 수 없다"라고 했다. 왜 그런가를 반문한 필자에게 실무담당자는 "법에 연구개발 기간을 10년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는 모든 과학기술분야 연구개발과제에 대해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이하 혁신법)'을 따르도록 하고 있다. 그 혁신법 제12조 1항에 '연구개발과제의 전체 연구개발기간은 10년을 초과할 수 없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물론 같은 조 3항에 '최종평가 결과에 따라 후속 연구개발과제로의 연계 등 추가 지원을 할 수 있다'라는 내용이 있지만, 원칙적으로 동일한 과제명과 연구내용으로 10년을 초과해 지원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소재분야 연구개발은 기초연구에서 시작해서 기업 기술이전까지 10년을 훌쩍 넘기기 일쑤이다. 그래서 필자가 근무하는 연구원에서는 기초연구-응용연구-기술이전연구 등 단계별로 이어달리기를 하면서 한 개의 연구과제가 기술이전 될 때까지 중단 없이 연구개발할 수 있도록 중장기적으로 연구비를 지원해 주고 있다. 한 예로서 한국재료연구원이 기업에 기술 이전한 '세계1등 기술'로 선정한 10개 기술의 평균 연구개발 기간은 11년이었다.

소재 연구개발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항공기 개발기간도 평균 10년 이상이다. 미국의 거대 항공기 제조회사에 근무했던 엔지니어는 한 인터뷰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했지만, 2대의 비행기를 만들어 봤을 뿐이다"라고 했다. 새로운 항공기를 만들기까지 10년 넘는 오랜 연구개발 기간이 소요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초음속을 돌파한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가 2015년 연구개발에 착수한 이래 2026년께 생산될 계획을 고려하면 10년 넘는 체계개발 기간이 예상된다(다행히 국방분야는 연구개발 기간 제한이 없다).

또한 최근 수립되고 있는 생명·우주·나노·양자 등 기초, 거대분야의 국가연구개발사업 대부분이 10년 이상의 중장기 연구개발 계획을 담고 있다. 이렇듯 10년 이상의 연구개발 분야가 있음에도 혁신법에는 10년으로 제한해 놓았으니 연구자 입장에서는 딱한 노릇이다. 과제를 중단하거나, 최종평가를 통해 후속과제 지원을 요청하는 불확실한 행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2021년 혁신법이 제정되면서 연구개발사업의 예산 낭비를 줄이고 사업 효율성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연구개발 기간 '10년 일몰제'를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엄격한 평가 없는 관행적인 장기 지원이 연구개발 지원 예산의 경직성을 심화하고 신규 투자 기회를 없애는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정부의 10년 일몰제 도입 취지에 공감하는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10년 이상의 중장기 연구개발과 지원이 필요한 분야들이 명백히 존재하는 만큼 현실에 맞게 법률을 유연하게 적용하거나 필요하면 개정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타성에 젖지 않고, 연구 유행을 좇지 않고 오로지 하나의 기술 분야에 매진하는 연구자에게 지속적인 지원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시간에 제한받지 않고 연구에 집중할 수 있다는 믿음은 곧 뛰어난 성과로 나타날 것이다. 이 때문에 법률적 제약이 정상적인 연구개발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혁신법이 추구하는 '자율적이고 책임 있는 연구 환경 조성'의 목적이 연구개발 기간에도 충분히 반영되었으면 한다.

/채재우 한국재료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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