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서 2019년부터 152건 발생
최근 진주와 김해서도 되풀이
순환근무 제대로 안 되고 감사 허점
"조합장 권력 집중 근본적인 문제"

새해부터 경남지역 농업협동조합(농협)에서 횡령 사고가 잇따랐다. 자체 예방 체계, 사후 적발 체계가 있음에도 사고가 근절되지 않는 원인으로 직원 순환 체계 오작동, 다선 조합장 입김, 감사 공정성 미비 등이 지적된다. 현재 내부 통제 강화안을 담은 관련법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진주서부농협·김해부경양돈농협 = 최근 진주·김해에서 횡령 사고가 적발됐다. 진주 서부농협 사고는 직원이 고객 예금 9억 원을 빼돌려 고금리 상품에 투자한 사례다. 김해 부경양돈농협 사고는 공판장 신축 업무를 맡은 직원이 공사비를 과다 청구해 도박 자금으로 쓴 사례다. 지난해 6월에도 창녕 관내 농협 직원이 전산망 조작으로 1억 원을 빼돌린 일이 있었다.

농협 횡령 사고는 경남뿐 아니라 매해 전국에서 다양한 유형으로 벌어지고 있다. 김승남(더불어민주당, 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 의원실이 받은 농림축산식품부 자료를 보면, 2019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지역농협에서 발생한 횡령 사고는 총 152건, 사고 금액은 450억 원에 이른다. 지난해 사고 금액만 278억 원으로, 4년 동안 총 발생한 사고액의 절반을 넘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소액 횡령 예방 어려워 = 우선 횡령 사고를 막기 위한 예방 체계의 한계가 뚜렷하다. 농협중앙회 경남본부 관계자는 "큰 금액이 오갈 경우 전산망에서 감지하고 해당 농협 조합장과 책임자에게 알려 점검하게 하는 체계가 있지만 알림이 몰리면 미처 확인하지 못하는 일도 있고, 작정하고 횡령할 마음을 먹으면 적발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소액으로 조금씩 빼돌리는 경우 전산 체계로 예방하기는 쉽지 않다. 

경남 한 지역농협 감사 출신 조합원 ㄱ 씨는 "지역농협 직원은 동일 사업장에서 5년 이상 근무하거나 같은 업무를 2년 이상 할 수 없게 돼 있다"라며 "한 자리에 오래 있을수록 허점도 잘 보이고, 유혹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상임조합장 연임 제한 규정이 없다 보니 다선 조합장 권력이 비대해지는 일이 근본적인 문제"라며 "순환 근무는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지만 조합장 뜻에 따라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2019년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 전국 지역농협에서 발생한 횡령 사고는 152건·450억 원에 이른다. 사진은 농협 경남검사국이 '2022년 윤리경영 실천 결의대회'를 하는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2019년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 전국 지역농협에서 발생한 횡령 사고는 152건·450억 원에 이른다. 사진은 농협 경남검사국이 '2022년 윤리경영 실천 결의대회'를 하는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감사 운영도 조합장 입김 작용 = 모든 사고를 예방할 순 없다고 볼 때, 사후 감사 공정성은 매우 중요하다. 농협중앙회는 2년에 한 번씩 정기 순회감사, 수시로 특별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역농협이 자체적으로 감사를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감사 조직 운영방식부터 조합장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협중앙회 감사위원회는 위원장 1명, 조합장 위원 2명, 농림축산식품부 1명, 감사원 1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5명 중 2명이 조합장 위원이라 공정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농협 감사위는 지난해 '디지털감사 전환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비대면 감사 확대를 시사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김승남 의원은 "봐주기 감사라는 의심을 벗어나려면 감사위 외부위원을 더 확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현장 감사를 비대면으로 대체하면 데이터 설계 과정에서 빠지는 사각지대를 놓칠 수 있어, 근본적으로 사고를 막으려면 감사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중앙회 감사 조직뿐만이 아니다. 자산규모 1조 원 이상인 지역농협은 내부 통제를 위해 상임감사를 두는데, 감사 인사추천위원회는 조합장 1명, 조합장 추천 인사 1명, 이사 3명, 대의원 2명, 이렇게 7명으로 구성된다. 조합장 처지에서는 이사와 대의원 위원 중 2명만 설득하면 입맛대로 상임감사를 뽑을 수 있는 셈이다.

◇개선안 있어도 법안은 잠자는 중 =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차 상호금융정책협의회에서 지역농협을 비롯한 상호금융기관 횡령 사고를 막기 위한 제도 개선을 검토했다. 농협법상 농협중앙회만 둬야 하는 준법감시인을 지역 농협도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임직원의 업무상 횡령·배임 등 위반 행위와 관련한 행정 제재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 등이다. 준법감시인은 내부 기준 준수 여부를 점검·조사해 감사에게 보고하는 직책으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도 명시된 내부 통제 장치다.

금융감독원 역시 △각 상호금융 중앙회 단위조합 상시 감시 △사고 검사 수준 강화 △경영실태평가 때 내부통제 비중 확대와 평가 기준 구체화와 같은 개선안을 마련하는 중이다. 여기에는 사고 위험 업무에 종사하는 직원 순환 근무 빈도를 높이는 방안, 불시에 휴가를 보낸 뒤 업무 내용을 감사하는 '명령휴가제'를 강화하는 방안도 담겼다. 

정부가 발표한 개선 사항 중 준법감시인 의무화 방안은 윤재갑(더불어민주당, 전남 해남·완도·진도) 국회의원이 지난해 10월 농협법 개정안에 담아 대표발의했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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