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매체·공공기관 외래어 남용 부추겨
우리말글 올바른 이해·사용 되돌아봐야

"신문도 나이 많은 사람에게는 무익한 존재가 되었다." 매일 신문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어느 노신사의 자조 섞인 탄식이다. 신문을 읽다 말고 스마트폰으로 연신 낯선 단어를 검색하던 그는 두꺼운 돋보기안경 속 눈매가 불쾌감으로 일그러지면서 격앙을 이어갔다. 국어순화에 본보기가 되어야 할 언론마저 정체불명의 외래어와 외국어 문자를 필요 이상으로 쓰고 있어서 속절없이 까막눈이 된 것 같다며 일탈적이고 경박한 글쓰기 세태를 책망했다.

인터넷 보급과 전파 미디어의 발달로 뉴스를 접하는 매체로서의 종이 신문은 점차 대중들로부터 외면받는 실정이다. 하지만 시대정신을 담은 기사를 읽을 때면 지적 자극을 받을 수 있고,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석과 인정세태(人情世態)를 그린 지면을 훑어보다 보면 무엇이 오늘의 주된 이슈인지,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곱씹으며 여유와 무료함을 달랠 수 있기에 여전히 신문을 찾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읽기 어렵고 무슨 말인지조차 쉬이 이해가 안 되니 '사회의 목탁' 역할은커녕 뉴미디어 환경 속에서 살아남을 수나 있겠느냐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외국어나 외래어·신조어를 남발하는 잘못된 행태가 이토록 만연한 데에는 대중매체와 공공기관이 한몫했지 싶다.

얼마 전 한 일간지의 칼럼과 방송 보도는 충격적이었다. "난민포비아와 '헤이트스피치 특별법'", "코로나블루 현상…웰니스를 겨냥한 가전제품이 대세", "웹소설 원작의 웹툰이 바로 노블 코믹스다", "글로벌 대기업과의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오픈 이노베이션 추진 등을 논의했다", "칼럼 첫 문장으로 쓰기 좋은 클리셰가 있다", "지금의 정치는 비토크라시다", "이번 참사 원인은 클라우드 매니지먼트의 부족 때문", "신규 국내관광 수요 창출을 위해 '워케이션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호주, 일본, 그리고 한국까지…아시아 '인베이전'" 등의 글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몰라 무지하고 과문한 나의 이면이 들켜버린 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쨌건 신문 지면에 등장하는 외래어 중에는 눈에 익은 단어도 더러 있어 줄거리를 대개 어림할 수 있다지만, 공공기관의 문서나 홍보 사이트 등에서 쓰는 리쇼어링, 규제 샌드박스, 스튜어드십 코드, 라이프로깅, 초격차 스타트업, 메타버스 플랫폼, 콜드체인, 해커톤 논의… 이러한 용어들은 일반 국민이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벅차다.

말과 글은 시대의 반영이라고 하지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정책홍보에도 이로울 텐데 공공기관마저 외래어 남용을 부추기는 꼴이라니!

우리말만 써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대체할 우리말이 없다든가, 외래어를 사용하는 것이 의미가 더욱더 분명해진다면 그렇게 하는 게 외려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마치 '연구'나 '사업' 대신 '프로젝트'라 해야 정책 비전과 전략이 더 돋보이고, '언택트'가 '비대면'보다 더 전문적 표현이라고 여기는 듯한 언어의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새해를 맞아 대중매체와 정부 당국은 공공언어 사용 실태를 스스로 돌아보고 사회적 지혜와 역량을 모아 우리말과 글에 대한 바른 이해와 올바른 사용을 위해 부심하길 바란다. 말과 글을 통하여 역사와 문학이 이어지고, 문화와 예술이 쌓이고 쌓여 문명을 이룩한다는 사실, 지금 우리 모두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조광일 수필가·전 마산합포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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