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봉사를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타인의 시간·노동 쓰려면 대가 뒤따라야

마을 행정복지센터를 지나다가 야외에서 김장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비 오는 궂은 날씨에도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끼고, 열심히 김치를 치대는 중년 여성들의 모습. '사랑의 김장 봉사'라고 적힌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였다. 사랑, 김장, 봉사. 모두 연말이면 도드라지는 말들.

나는 '김장'과 '봉사'라는 단어에 알레르기가 있다. 매년 양가 어머니들의 노동을 보면서 '내년에는 그냥 사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김장'을 떠올릴 때 따뜻한 수육에 척척 걸쳐 먹는 김치의 아삭함을 떠올린다면 당신은 김장의 수혜자일 가능성이 크다. 욱신욱신 저린 허리와 뻘건 고춧가루가 묻은 얼굴을 떠올린다면 당신은 김장 노동자로서의 시간이 길었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주로 엄마들이 총대를 메고 준비하는 김장의 모습을 볼 때면 K중·노년 여성의 희생 결정체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김장 노동의 압박은 학교에서도 이어졌다. 얼마 전 쌍둥이 아들들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연락이 왔다. '다음 주 유치원에서 김장하는데, 봉사 가능하신가요?' 아이들이 직접 담근 김치를 지역 봉사 단체에 기부한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아침 일찍부터 방송 녹화가 있는 날이었다. 죄송하다며 거절하자, '괜찮습니다. 그럼 다른 어머니에게 연락해보면 됩니다'라는 산뜻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김장 봉사의 빈자리는 일하지 않는 엄마에게 돌아갔다. 학교나 어린이집에서 걸려 오는 봉사 권유 전화는 익숙하다. "어머니, 야외에서 운동회를 하는데 혹시 봉사 가능하신가요?", "어머니, 원에서 고구마 캐기를 하는데 혹시 봉사할 수 있나요?" 처음에는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는 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좋아서 신청했다. 프리랜서는 작업 시간을 조율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으니까. 한 달에 두어 번씩 꾸준히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걸려 왔고, 의문이 들었다.

'손이 모자라면 비용을 지불하고 대체 인력을 구하면 되잖아?' '왜 엄마들의 시간은 무한 제공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아빠들은 당연히 일할 거로 생각하고 배제하는 건가?'

이후부터 봉사 제안을 거절했다. 불편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봉사하고 싶어도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아예 갈 수 없는 엄마는 미안함을 느꼈고, 엄마가 봉사하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엄마도 있었다. 더는 엄마 봉사 인력이 구해지지 않자, 원장님은 '다들 바쁘다고 하신다. 오는 사람만 온다'고 푸념했다. 애초에 엄마라는 가상 인력을 염두에 두고 행사를 준비한 게 잘못인데도.

어릴 적 아빠가 남긴 명언이 있다. '나를 위한 일은 폼이 나지만 남을 위한 일은 빛이 난다.' 분명히 봉사는 빛나는 일이다. 사회 또는 남을 위해 애쓰는 일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세상에는 의미 있고 좋은 봉사가 많다. 하지만 문제는 유난히 엄마라는 집단에 '봉사'라는 말이 친밀하며 자연스럽게 인식된다는 점이다. 가정 내에서 엄마는 자식을, 남편을, 부모를 보살피는 돌봄노동을 기꺼이 한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돌봄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졌다. 그렇다고 돌봄 노동자 위상이 높아진 것은 아니다. 엄마의 돌봄 능력 역시 전문적인 이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사회는 엄마의 돌봄 능력을 무료로 제공받길 바란다. 엄마는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봉사하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엄마의 시간은 무료가 아니다. 타인의 시간과 노동이 필요하다면 돈을 내라, 돈을!

/김수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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