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과 여생 보내려 고향 떠난 80대 노모
존엄한 죽음 보장할 노인 돌봄 정책 필요

엄마가 온다. 남해에서 태어나 남해에서 한평생을 살아온 엄마가 남해를 떠나 창원으로 온다. 올해 초, 인공관절 수술 뒤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엄마는 부쩍 외로움을 호소했다. 그동안 친구들과 노느라 24시간이 모자랐던 엄마의 시간이 갑자기 남아돌았기 때문이다. 엄마 연세 84세.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시간은 길어봤자 5년. 평소에도 두뇌 회전이 빠른 엄마는 남은 생을 어떻게 행복하게 보낼 것인가,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리고 결심했다. 더 늙기 전에 자식들과 같이 살겠노라고. 결심이 서자 엄마가 말했다. 둘 중에 누가 나랑 같이 살래? 시큰둥한 나와는 달리 동생은 효녀였다. 기꺼이 엄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내년부터 엄마는 창원에서 동생과 한집에서, 나의 이웃으로 살게 된다. 고등학교 입학 이후 엄마 품을 떠난 지 약 30년 만의 한집살이. 엄마가 창원 자식들 곁에서 함께 살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나는 반대했다. 집 밖만 나가면 아는 사람이 널려 있는 남해와는 달리 낯선 창원에서는 외롭지 않을까, 80대 중반의 나이에 시작하는 창원살이가 자칫 엄마에게 또 다른 감옥살이가 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의견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몇몇 지인들의 부모님 장례식을 다녀오면서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게 가장 후회된다는 지인들의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는 지금보다 더 아플 확률이 높아질 것이고, 아프면 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다. 병원에 가면 함께 지내고 싶어도 지낼 수 없을 터. 엄마가 건강할 때 하루라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게 현명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늙은 부모의 자식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나도 종종 엄마의 마지막을 생각한다. 엄마의 가장 큰 소원은 집에서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잠을 잘 때 조용히 떠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특히, 요양병원은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한다. 누구보다 냄새에 민감한 엄마는 삭막한 요양병원 냄새를 못 맡는다.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올 수 없는 곳. 엄마는 요양병원을 저승으로 가는 문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걱정이다. 대한민국에서 노인이 아프면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곳이 요양병원이 아닌 다른 곳이 있을까?

되도록 엄마의 바람을 들어주고 싶다. 하지만 집에서 존엄하게 눈을 감을 권리를 누리려면 몇 가지 큰 희생을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 첫째, 자식 중 한 명은 생계를 포기해야 한다. 24시간 거동이 불편한 부모를 돌보며 직장에 다니는 건 불가능하다. 둘째, 전문가 뺨치는 의학지식과 비상 상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 병시중 끝에 효자 없다는 옛말을 뒤집을 각오를 다져야 한다. 이런 현실에서 어느 부모가 자식의 희생을 바라겠는가? 그렇기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수많은 노인이 아프면 결국 요양병원행을 택하는 것이다.

노인들은 행복하게 죽을 권리가 없는 것인가? 사람이 태어나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면 마땅히 행복하게 죽을 권리도 있어야 한다. 병원에 갇힌 채 하루하루 죽음의 문턱으로 걸어가는 노인들. 더는 그들의 죽음을 병원이 관리해선 안 된다. 국가가 나설 수는 없을까? 노인 돌봄 정책과 지원을 대폭 늘려 집에서 치료를 받고 집에서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한평생 나라와 자식들을 위해 희생한 부모들인데, 그 정도의 세금은 쓸 수 있지 않은가. 마지막인데.

/김봉임 종합홍보기획 ㈜브레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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