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마을 공동체가 부서졌다
21만 44㎡ 땅 놓고 벌어진 갈등
4년 투쟁 끝에 얻어낸 승리...불안은 여전해
갈등 대신 화해와 치유의 길로 걸을까

뒤로는 짙은 녹음이 둘러싸고, 앞으로는 호리병 모양 바다를 머금은 이곳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수정마을. 시내까지는 10㎞ 넘게 떨어진 외딴 마을을 찾는 손님은 거의 없었고, 몇 안 되는 주민들이 모여 사는 조용한 동네였다.

어촌계 건물 외벽에 쓰인 '대한민국 홍합 1번지'라는 글자는 세월을 만나 하얗게 빛이 바랬지만, 한때 수정마을 주민들은 홍합으로 밥벌이했다. 마을 여자들은 종일 쭈그려 앉아 까만 껍데기를 깠다. 여름이면 뙤약볕에 얼굴이 검게 그을리고, 겨울이면 찬 바람에 손이 얼었다.  

일당 2만~3만 원으로 생계를 이었다. 풍족하지 않은 삶이었지만, 불행하진 않았다. 잔잔한 바닷물결 위로 햇살이 부서져 내리고, 저 멀리 지평선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아름다운 풍광은 오롯이 수정마을의 것이었다. 주민들은 서로 밥을 지어 나눠 먹으며 세월을 보냈고, 마을 공동체를 일궈왔다. 

수정마을 전경. 뒤로는 울창한 숲이, 앞으로는 호리병 모양 바다가 있는 수정마을은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김구연 기자
수정마을 전경. 뒤로는 울창한 숲이, 앞으로는 호리병 모양 바다가 있는 수정마을은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김구연 기자

◇ 원수가 된 이웃사촌 = 이 평화로운 마을에 '갈등'이라는 손님이 찾아왔다. 1990년 당시 마산시가 수정만 공유수면 매립 면허를 승인했다.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지을 예정이라고 했다. 4년 뒤 마산시는 매립공사를 시작했다. 아름다운 바다 일부를 흙으로 덮었다. 그렇게 21만 44㎡(6만 3538평) 터가 만들어졌다. 

세상은 있는 그대로 남겨 두는 법이 없다. 옛날부터 그랬다. 오랜 시간 사람들은 땅을 놓고 싸웠으며, 때로는 서로를 죽이기도 했다. 소유가 정해지면 누구의 것이냐에 따라 그 위에 새로운 걸 만들고 부쉈다. 그게 세상 이치였다. 

2006년 마산시는 STX중공업과 조선 블록 공장을 유치하겠다는 약정서를 맺었다. 2007년 마산시는 경남도에 매립사업목적변경인가를 요청했다. 

새로 제시한 마산시 도시기본계획에서 수정마을은 택지 용도가 아닌 공업 지역으로 바뀌었다. 매립지 위에 조선기자재단지나 복합산업단지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마산시는 3000~5000명 고용 창출과 연간 6000억 원의 경제 효과를 들이댔다. 2008년 85억 원, 2009년 159억 원, 2010년 191억 원의 지방세수를 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민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날벼락처럼 조선소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접했다. 마을 안에 조선소가 들어선다면 아름다운 풍광은 지워지고, 희뿌연 하늘과 탁한 공기, 오염된 바다가 주민들을 맞이할 게 분명했다. STX중공업은 그 대가로 개발 보상금을 내놨다. 

어느덧 마을주민들은 누가 돈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찬반으로 갈려 싸웠다. 그렇게 수정마을 공동체는 산산조각이 났다. 가족보다 가깝게 지내던 이웃사촌은 원수가 되어 마주하기만 해도 으르렁댔다.

◇마을 지켜낸 주민들 = 바다를 동무 삼아 한평생 홍합을 까고, 텃밭을 일구던 할머니들이 세상 이치를 거부했다. 수정마을에 있던 트라피스트수도원의 수녀들도 가세했다. 반대에 나선 한 수녀는 열무를 묶어서 마산 시내로 팔러 나가던 할머니와 나눈 대화를 들려줬다. 수녀는 할머니에게 열무를 다 팔면 얼마 버느냐고 물었더니 6000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루 1000원 쓰고, 5000원 저금한다고.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 평생을 살아온 그들이었다. 

STX중공업은 토지 보상금으로 1000만 원이 넘는 돈을 주겠다고 회유했다. 사는 동안 그렇게 큰돈을 한 번에 만져본 적이 없었던 그들이었다. 할머니는 돈을 받지 않았다. 왜 그랬느냐고 물으니 할머니는 "그 돈이 내 돈이냐"고 되물었다. 할머니들은 수정마을의 아름다운 풍광과 소중한 공동체를 '자기 것'이라 여기지 않았다.

이들은 경남도청, 마산시청, 국회, STX중공업 서울 본사까지 가리지 않고 전국을 다니면서 수정마을을 지키려 했다. 4년 동안 이어진 싸움, 결국 그들이 이겼다. 2011년 5월, 통합 창원시와 STX중공업은 토지용도변경을 포기했다. 

'수정마을 운동'은 주민들의 힘만으로 땅을 지켜낸 몇 안 되는 사례로 남았다. 수정마을 운동은 한평생 논밭을 일구고, 홍합을 까면서 가정을 꾸렸던 할머니와 봉쇄 수도원에서 신앙생활에만 전념했던 수녀들의 승리였다. 

과거 마산시가 수정마을 바다를 매립한 자리에는 21만 44㎡(6만 3538평) 부지가 생겼다. 아직 이 터는 비어있다. /김구연 기자
과거 마산시가 수정마을 바다를 매립한 자리에는 21만 44㎡(6만 3538평) 부지가 생겼다. 아직 이 터는 비어있다. /김구연 기자

◇치유를 위한 움직임과 불안 = 10여 년이 지나 희소식이 들려왔다. 2020년 12월 '수정마을공동체회복추진위원회'가 꾸려졌다. 경남도 온라인 도민제안 정책플랫폼 경남 1번가에 수정마을 공동체 회복 정책지원 요청이 채택됐다. 아주 오랜만에 찬반으로 갈렸던 주민들이 마주 앉아 얼굴을 바라봤다. 

여러 제안이 오갔다. 사업비 3000억 원을 투입해 국내 최초 서비스 로봇 실환경 실증기관을 구축하는 '로봇테스트필드 혁신사업'도 논의됐다. 지역 청년 24명이 2박 3일 동안 수정마을에 머무르면서 마을 재생에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수정마을 활성화를 고민하는 청년단체 '수정과'도 생겼으며, 경남대 LINC 3.0 사업단이 수정마을학교를 열기도 했다.  

홍합으로 키워낸 자식들이 모두 외지로 떠나고 수정마을에는 400가구 남짓 남았다. 마을은 고요해졌지만, 언제 시끄러워질지 모른다. 과거 마산시와 STX중공업이 수정마을 안에 갈등을 초래했듯 말이다. 수정마을 운동에 동참한 한 수녀는 통합 창원시와 STX중공업이 용도 변경을 포기했을 때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승리 속에서도 불안을 느꼈다고. 

"덤덤했어요. 어쨌든 땅은 남아 있잖아요. 땅을 산 사람들이 그걸 가만히 두겠어요? 돈이라면 못 하는 게 없는 세상이잖아요. 언젠가 또다시 터지리란 불안이 들었죠."

바다를 메운 21만 44㎡ 터는 여전히 비어있다. STX중공업에서 채권단인 농협으로 넘어갔다. 앞으로 이 땅의 주인이 누가 되느냐, 그리고 무엇을 들이느냐에 따라 수정마을의 미래는 달라진다. 과거의 아픔을 반복할 수 있으며, 그때 겪은 상처를 치유할 수도 있다. 우리는 수정마을에 다음 손님으로 누구를 초대해야 할까. 지나간 20여 년의 세월을 되짚으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다시, 수정마을에 주목해야 할 때가 왔다. 

/김다솜 박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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