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개발 정책으로 파괴되는 생태계
생명 개념 없나 알고도 모른 체하나

가을은 누리는 자의 것이다. 맘만 먹으면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아도 맘껏 보고 즐길 수 있다. 직장 주변 공원도 좋고, 근처에 있는 대학 캠퍼스도 좋다. 곱게 물든 단풍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바쁜 와중에도 잠시잠시 짬을 내 예쁜 가을 풍경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짜증이 밀려올 때가 있다. 하천과 강은 보이는 곳곳마다 파헤쳐져 있다. 산에 나무는 베어진 채 널브러져 있다. 도로는 늘 공사 중이다. 정말 답답한 노릇이다.

하천 공사는 끔찍할 정도로 계속된다. 공사 과정을 지켜보면 왜 그렇게 진행하고 있는지 이유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생명이 살아 숨 쉬는 하천 바닥을 모조리 파헤치고 긁어낸다. 양쪽 제방엔 멀리서 실어온 돌을 켜켜이 쌓는다. 그 위에는 다시 콘크리트로 도배하다시피 한다. 산 중턱에서 시작된 제방 공사는 큰 강과 바다가 만나는 끝 지점까지 이어진다. 굴착기가 내는 굉음이 일 년 내내 계속되는 곳도 있다. 그곳에 터 잡아 살던 무수한 생명은 흙탕물 속에서 오도 가도 못한 상태로 죽어 간다. 그런 와중에 개구리, 두꺼비, 물고기뿐만 아니라 새들 개체 수도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이제는 호모 사피엔스 차례란 말이 떠오른다.

고개를 들면 멀리 보이는 산도 마찬가지다. 울창했던 숲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없다. 키 큰 나무를 모조리 베어내고 작은 나무를 심는다. 큰 홍수가 나면 토사가 밀려 내려와 산사태가 날 게 불을 보듯 뻔한데도 벌목은 멈추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돈 때문에 벌이는 공사 같다. 새로 심은 나무가 탄소 흡수를 더 많이 한다는 말은 앞뒤 맞지 않는 궤변일 뿐이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이해하기 힘든 도로도 무수히 많다.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도로인데도 비싼 세금 들여 계속 공사 중이다. 굽은 도로는 직선으로 만들고, 막힌 곳은 새 도로를 뚫는다. 무지막지하게 산과 강을 파헤친다. 하늘 높이 솟은 다릿발이 서로 경쟁하듯 쭉쭉 뻗어 있다. 무서우리만큼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 사이엔 친환경 도로라는 문구도 보인다.

지리산 자락도 마찬가지다. 제 역할 못 하고 생태계만 파괴하고 있는 소수력 발전소가 문제다. 소수력발전으로 남강 상류인 임천의 수위 변화가 심각하다. 하천 유지수가 공급되지 않아 물고기 이동은 물론, 물 흐름도 없다. 멸종위기 1급인 천연기념물 호사비오리가 해마다 찾는 곳이다. 하천 수위가 낮아진 현재는 호사비오리뿐만 아니라 다른 생물도 보이지 않고 있다. 발전 수익도 없고 수 생태계만 파괴하는 강 구조물을 아직도 꾸역꾸역 유지하고 있다.

'웃기고 있네'는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좀 더 적나라하게 얘기하면 '이 ××들이, 웃기고 있네'로 표현할 수 있겠다. 왜들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개념이 없어서다. 개념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물에 대한 일반적인 뜻이나 내용'이다. 일반적인 뜻이나 내용조차 모르는 무지가 만들어 낸 참사다. 생태계에 대한 개념, 생명에 대한 개념이 없고 오로지 돈만 판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다음으로 짐작되는 이유는 정책을 담당하는 분들의 '영혼'이 가출했거나 아니면 어디에 팔아먹었을 가능성이다. 알고도 모른 체한다는 것이다. 개념 없고, 영혼 가출한 분들은 팔짱 낀 채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말한다. "자꾸 공격하지 마시고 같이 좋게 생각합시다."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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