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며느리 무게·세 아들 먼저 보낸 아픔 등한국 근현대사 여성 삶 보여준 100년 생애

한 인물의 삶은 곧 한 권의 책이다. 지난 16일 어느 책에 마침표가 찍혔다. 고 황제연 씨, 향년 100세. 근현대사를 아로새긴 책 줄거리는 몹시 모질고 끈덕지다.

황 씨는 1922년 고성군 동해면 전도마을에서 났다. 9남매 맏이였던 그는 낮에는 밭을 매고, 논둑 풀을 베고, 빨래질을 하고, 보리쌀을 삶고, 소죽을 끓이고, 다듬이질을 하고, 나무를 벴다. 밤에는 삼베를 짜고,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짰다. 어린 맏이가 진 짐의 무게에 가난과 일제 수탈이 더해졌다.

지겨운 굴레에서 벗어날까, 황 씨는 1938년 전시암 씨와 결혼한다. 함께 일본으로 떠나리라 여겼건만, 식을 치르고 3일 만에 남편 전 씨는 홀로 돈을 벌러 떠났다.

▲ 1922년 생 으로 올해 만 백수로 영면에 든 황제연 씨의 생전 모습. /전홍표 씨
▲ 1922년 생 으로 올해 만 백수로 영면에 든 황제연 씨의 생전 모습. /전홍표 씨

9남매 맏이였던 황 씨는 다시, 옛 마산시 진전면 이명리 6남매 맏며느리 삶을 오롯이 짊어졌다. 남편 대신 버틸 언덕이었던 시아버지마저 결혼 1년 만에 떠나보낸 까닭이었다.

일제강점기,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도 황 씨는 억척스러운 삶을 이어갔다. 평생 글 못 배워 한이었어도, 기억력 하나로 버텼다. 돈 벌러 떠났다가 귀국한 남편은 비록 빈손이었지만, 황 씨는 억척으로 삶과 가족을 지탱했다. 나룻배를 타고 부산 국제시장에 가 계란을 판 돈으로 '동동구리무(화장품)'나 반짇고리를 떼다 팔았다.

이겨내지 못할 것 없는 억척도, 자식 먼저 잃은 슬픔 앞에 무너졌다. 2002년 둘째 아들을 떠나보낸 황 씨는 조금씩 총기를 잃기 시작했다. 차례로 셋째 아들, 첫째 아들을 잃은 황 씨는 결국 기억의 끈을 모두 놓았다.

황 씨 손자인 전홍표 씨는 그를 억척스러운 할머니로 기억했다. 전 씨는 "할머니는 맏며느리라 집안일에 애착이 컸다"며 "사소한 낭비 없이 끝까지 억척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럼에도 누군가 배를 곯으면 먹을거리를 나누는 정마저 가득했다"고 덧붙였다.

1995년 개봉한 장이머우 감독 영화 <인생>은 한 가족의 시선에서 중국의 격변을 그려낸다. 작가 위화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처럼, 황 씨의 삶은 한국 근현대사 격변과 더불어 여성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최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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