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쌀값 폭락에도 정부가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않자 농민들이 나락논을 갈아엎었다.

산지 쌀(정곡)값은 지난 5일 기준 20㎏이 4만 1185원이다. 2018년 5월(4만 3066원) 이후 가장 낮은 가격을 기록 중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산물유통정보로 검색한 쌀 소매 가격(20kg 상품 기준)도 8월 4만 9640원으로 2018년 9월(4만 9465원) 이후 가장 낮았다.

가파른 물가 상승에도 쌀값만 유독 폭락하는 기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 가격 기준으로 밥 한 공기에 드는 쌀을 100g으로 잡으면 205원꼴이다. 4인 밥상을 차려도 쌀값은 1000원도 채 되지 않는다.

지난달 기준 식료품과 비주류음료 소비자물가지수 114.69(2020년 100 기준)와 비교해보면 모든 물품값이 죄다 오르는데 쌀값은 자꾸 떨어진다는 농민들의 아우성이 투정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거창군 마리면에서 20년째 100마지기(약 6611㎡) 쌀 농사를 짓는 윤동영(48) 씨는 올해 직불금 1500만 원을 더해 5500만 원을 벌었다.

지난 14일 타작을 한 윤 씨는 올 농사에 들인 돈을 대략 따져봤다. △기름값 500만 원 △농자잿값 1000만 원 △기계 감가상각비 2000만 원 등 모두 3500만 원가량 들었다.

직장인으로 치면 연봉 2000만 원인 셈, 1마지기에 20만 원꼴 번 셈이다. 그는 그래도 100마지기나 짓는 농민이어서 그 정도라도 남지만 소규모 농사에 기계 빌리고 사람 사서 농사짓는 농민은 그보다 수익이 훨씬 적다.

15일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소속 농민이 함안군 가야읍 묘사리 논을 트랙터로 갈아엎고 있다. /김구연 기자
15일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소속 농민이 함안군 가야읍 묘사리 볏논을 트랙터로 갈아엎고 있다. /김구연 기자

“기계가 없는 농가는 비용이 더 들 겁니다. 농사, 안 짓는 게 맞습니다. 누가 농사짓겠다고 농촌으로 오겠습니까.”

15일 함안군 가야읍 묘사리 한 볏논에 ‘쌀값보장’ 펼침막을 건 트랙터가 들어갔다. 트랙터는 논을 갈아엎었다. 논에는 수확도 하지 않은 나락이 빼곡했는데, 죄다 갈리고 짓뭉개져서 흙속에 묻혔다.

이날 모인 농민들은 “45년 만에 가장 크게 떨어진 쌀값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논을 갈아엎는다”고 말했다.

전년 수확기(10~12월)보다 가격이 내려가는 현상인 역계절진폭은 지난 5일 기준 23.1%였다.

잇단 풍작으로 쌀값이 크게 떨어졌던 2016년 역계절진폭 9.9%도 비할 바가 아니라고 농민들은 입을 모았다.

이날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과 농민은 대정부 투쟁을 선포했다. 쌀값은 크게 떨어지고, 생산비는 크게 오르는 탓에 “이대로는 못 살겠다”는 구호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농민들의 화는 정부로 향했다. “무관심과 무대책으로 농업을 무시하고 농민을 천시한다”는 것. 쌀값이 자꾸만 떨어지는데 정부가 별다른 대책을 내지 않고 있다는 질책이었다.

이들은 올 하반기 나락 적재 투쟁을 시작으로 시군 농민대회, 경남농민대회, 농기계 대행진 등 오는 11월 16일 전국농민대회 성사까지 모든 수단을 써 싸우겠다고 말했다.

경남 도내 농민들은 이날 밥 한 공기 300원 보장과 함께 △작년 재고 쌀 모두 격리 △쌀 수입 전면 중단 △양곡관리법 개정 △농업예산 확대와 농업생산비 보장 등을 요구했다.

/최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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