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청년은 제때 배달 못했다 사과하는데
계란판될 재벌 신문 발행은 더 늘어나네

야간근무로 아침 퇴근을 하여 억지 낮잠을 청하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앳되어 보이는 우체국 직원이 잠깐 문을 열어 달란다. 등기라도 왔나 싶어 문을 여니 신문을 들고 서있다. 신문이라면 편지함에 꽂아두고 가면 될 것을 굳이 자는 사람까지 깨우다니 처음이신가 보다 했는데 아니다. 오늘 신문을 배달하지 못해 내일 함께 배달하겠노라고 죄송하다는 말씀드리러 왔단다. 그럼 손에 들고 있는 신문은? "선생님은 신문을 잘 안 읽으시나 봐요?" 편지함에 꽂혀 있던 어제 신문이란다.

그날그날 읽어야 할 신문을 배달하지 못했다고 미안해하는 젊은이가 건네는 어제 신문을 받으며 얼굴이 화끈했다. 이 친구 날 갸웃 쳐다보더니 자기가 배달하는 이 신문에 칼럼 쓰는 누구와 이름이 같은데 그 누구시냐고 묻는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그렇다하니 글 잘 읽고 있다며 악수를 청하는데 맞잡은 손이 곱아들어 펴지질 않는다. 이미 인터넷 판으로 읽었지만 들릴락 말락 폭 내쉬는 숨소리를 낸 젊은이 앞에 그 말을 꺼내기엔 너무 궁색하고 부끄러웠다.

"신문이요!" 지금은 거의 사라진 두부 장수의 종소리와 함께 새벽을 여는 소리가 들리고 마당에 떨어진 신문에는 오만 가지가 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생담배가 손가락 사이로 타고 들어오는 것도 잊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골똘하셨다. 아버지가 다 읽고 출근하시면 할아버지가 들고 나가신 신문은 동네 어르신 모인 팽나무 그늘 평상에서 갑론을박 제공자가 되어 가끔 다 이긴 장기판을 뒤엎기도 했다. 어머니는 방송편성표 드라마 줄거리를 미리 읽고 수다거리를 장만하셨고 우리들도 사회면 사건 사고 기사를 뻥튀기해 날랐다. 한 번 보고 화장실 휴지로 가거나 포장지나 벽지 대용으로 쓰이는 신문이 아니었다. 한자가 많이 섞여 있던 신문이 공부도 시켜주었다. 학교에서 매를 맞아가며 외워도 익혀지지 않던 한자가 주워들은 풍월로 문맥을 끼워 읽다보면 맞추는 짜릿함과 함께 머릿속에 쏙쏙 박혔다. 방학 숙제로 인기 있던 자료 오려붙임책을 만드는 데도 버리지 않은 신문이 큰 역할을 했다. 숙제뿐만 아니라 모두가 필요한 정보를 신문에서 오려 책을 만들어 두고 보았다. 그런 정보나 지식 외에도 연예인들의 화보와 신변잡기를 오려 모으거나 연재소설이나 시편을 골라 모으는 문학도도 있었다.

얼마 전 계란판 신문이란 말을 듣고 설마 그럴 리야 했다. 새벽을 달리고 거리에서 흩날리던 "신문이요! 호외요!" 외침이 사라진 지 오래다. 주차장이나 지하철 신문 판매점도 보기 힘들고 옆자리에서 펼쳐든 신문이 불편하지만 귀퉁이 시사만화 훔쳐보는 재미도 옛날이야기다.

일부 재벌 신문사에서 몇 개월씩 무가지를 넣고 자전거나 청소기 같은 경품을 제공하며 구독 경쟁을 벌이던 전쟁터도 이젠 인터넷 포털로 옮겨갔다. 인터넷이 정보와 지식 전달 시장을 장악하면서 종이신문 위상은 추락하고 독자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대표 재벌 신문 발행 부수는 늘어났다. 이들은 왜 보지도 않고 바로 계란판 공장이나 외국 수출 컨테이너로 보내는 신문을 찍어낼까?

여러 보도에서 정부 지원이나 기업의 광고와 협찬에서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서란다. 참 기가 찰 노릇이다. 신문만이 가진 장점에 공을 들이고 질 높은 기사를 만들어 가면서 새롭게 바꿔야지 이따위 잔머리로는 정말 추억 속에만 남는 유물이 될 것이다. 지금 인터넷 매체들은 독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과 질 낮은 기사, 검증되지 않은 폭로로 난장판이다. 비위만 맞추다보니 독자는 정보와 지식의 편식으로 정신 건강이 허약해졌다. 종이신문이 차원 높은 고급 언론으로 부활하길 바란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