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유품 대소쿠리서 영감
우연이 빚는 물감의 질감 천착
"절묘한 결과물 나올 때 행복"
10월 김해 남명갤러리서 전시

뭉게구름 변화무쌍한 하늘을 올려다보면 구름 형상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강아지 모습이었다가 용의 모습이 되어 날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그리운 사람의 얼굴이 되어 마음속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미술 작품에도 그런 게 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어떤 상상력을 보태느냐에 따라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눈에 들어오는 그런 작품. 옥광 김정옥 작가의 마티에르 작품이 그러하다. 작품이 독특해서 눈에 잘 띈다. 일 년에 몇 번 전시장을 찾는 사람이라면 '아, 이 작품이 그 작품!' 하고 알아차릴 듯도 하다. 그의 작업실로 찾아갔다.

▲김정옥 작가가 15일 창원시 의창구 작업실에서 마티에르 기법을 설명하고 있다. /김은주 인턴기자 kej@idomin.com
▲김정옥 작가가 15일 창원시 의창구 작업실에서 한 손에 소쿠리를 든 채 '마티에르' 기법을 설명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불규칙한 질감이 특징이다. 부모님 유품인 대소쿠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김 작가는 말한다. 마티에르와 대소쿠리의 절묘한 만남이다. /김은주 인턴기자 kej@idomin.com

"제가 마티에르를 하게 된 건 우리 엄마 아버지의 유품인 대소쿠리에서 비롯되었어요. 플라스틱은 반들반들해서 질감이 없어요. 하지만 대소쿠리는 올록볼록 질감이 있죠. 부모님은 어린 제 머리맡에서 소쿠리를 만드셨는데, 대를 엮는 한쪽 끝에선 대의 가락들이 춤을 추는 거예요. 그런 기억이 제가 마티에르에 전념하게 된 동기이자 힘이 되었어요."

미술용어 '마티에르'는 프랑스어로 재료·재질이라는 뜻인데, 미술 영역에 활용되면서 작품의 표면이 울퉁불퉁한 질감을 가리키거나 어떤 재료를 쓰는지 어떤 기법을 적용하는지에 따라 창출되는 표면 효과를 의미하는 단어다. 우리나라에서 마티에르 기법을 쓴 대표적 화가는 화강암 질감으로 '빨래터' 등을 그린 박수근이라 하겠다.

김 작가의 마티에르 작품은 물감을 쌓아 올려서 표면을 칼로 잘라내고 다시 또 쌓아 올려서 잘라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때로는 포를 뜨듯 물감을 깎아내는 임파스토 기법을 쓰기도 한다. 칼로 물감을 잘라내는 작업을 하다 보면 표면이 거칠어지기 마련인데, 김 작가는 사포로 마감을 하지 않고 오브제를 활용한 자신만의 방법으로 끝처리를 한단다.

작업실은 아기자기했다. 완성된 작품, 진행 중인 작품이 여기저기 벽에 기대어 서 있기도 하고 작업대에 눕혀 있기도 했다. 나전칠기 느낌이 강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붉은색의 강렬함이 화면을 압도하는 그림도 있다. 또 어떤 것은 추상 속에 구상이 들어간 작품도 있다.

▲ 김 작가의 작업실. /정현수 기자<br /><br />
▲ 김정옥 작가의 작업실. /정현수 기자

"이 작품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술적인 것을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마티에르 속에 꽃게와 대나무 그림을 넣어 봤어요. 꽃게는 학업성적을 좋게 하고 대나무는 신화 속 신통한 영물이라는 의미도 있고요. 마티에르에 기원을 담아봤는데, 진주에서 열리는 단체전에 이 그림을 걸 거예요."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무엇을 그렸는지 대번에 알겠다. 부처가 좌선하여 기도하는 모습과 얼굴 앞에는 태양, 혹은 어떤 기가 둥글게 나타난 장면이다. 그런데 이게 의도하지 않은 것이란다.

"작품을 하다가 숨구멍이 있어야 할 것 같아 넣는다고 넣었는데, 불교적 느낌이 나는 그림이 되었어요. 그런데 우연히 그림을 눕혀서 보니 또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어떤 모습 같아요?"

단박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부처가 누운 모습에 가부좌한 다리 쪽이 세워졌는데…, 이쯤에서 김 작가가 손으로 형태를 그린다. 아하! 비로소 새로운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건 글로 묘사하기 난감하다. 하여튼 '19금' 장면이라는 것만 언급해둔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그림이 나오면 재미있어요. 숨구멍을 넣고 자연스럽게 해보자 싶어 작업했는데, 우연히 나도 깜짝 놀랄 결과물이 나왔을 때 정말 재미있어요."

그의 마티에르 작업은 노동력이 많이 들어간다. 물감을 칠하고 그 위에 다른 물감을 쌓아 올리고 칼로 깎아내고, 다시 물감을 쌓아 올리고 깎아낸다. 커터칼로 작업하다 보니 손에 상처가 아물 날이 없다. 통증이 심하면 장갑을 끼고 한단다. 게다가 손목을 계속 사용해야 하는 작업이기에 지금 갱년기가 와서 그런지 더 아프다고 한다. 소녀티가 물씬한 작가의 애교 어린 엄살로 비쳤다. 그래도 마티에르 작업에 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 김정옥 작 생성과 소멸 스크레치 90.9x60.6cm<br>
▲ 김정옥 작 생성과 소멸 스크레치 90.9x60.6cm

"마티에르의 매력이 이런 건가 싶어요.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의도한 대로 다 되는 거 아니잖아요. 쌓아 올리는 과정, 깎는 과정에 생성하고 소멸하고 엄청나게 많은 과정을 반복하니까 인생이나 똑같아요. 어느 날은 좋았다가 어느 날은 안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하고요. 이것도 그래요. 어느 날 우연히 빚은 그림이 절묘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때 행복감은 말로 표현 못 해요."

앞으로는 소품에 집중하고 싶다는 김정옥 작가.

"마티에르가 소품이 안 예뻐요. 큰 작품은 작업하기도 상대적으로 쉽고 결과물도 잘 나오는 편인데 소품은 안 그래요. 그런데 이번에 소품도 예쁠 수 있다는 것을 찾아냈어요. 작지만 진짜 손이 많이 가죠."

김 작가의 마티에르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일단 멀리서 한 덩어리로 보세요. 그리고 조금씩 다가오면서 살펴보시고요. 나중엔 사진을 찍어서 확대해 보기도 하고 돌려서 보기도 한다면 쌓고 깎아내는 과정에서 빚어진 오묘한 형상들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김 작가는 다음 전시로 10월 김해 남명갤러리에서 진행할 초대전을 준비하고 있다.

▲ 김정옥 작가가 15일 창원시 의창구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마티에르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김은주 인턴기자 kej@idomin.com
▲ 김정옥 작가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김은주 인턴기자 kej@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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