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항쟁 관련 지원금 신청자 79% 탈락…유공 직접 입증·소득 선별 '행정 편의' 지적
김경훈 "실질적 도움 안 돼" 이창곤 "조례 취지 살려야" 김영환 "당사자 의견 수렴을"

경남도가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를 예우하겠다며 지급하는 위로금이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경상남도 부마민주항쟁 기념 및 지원에 관한 조례(이하 부마민주항쟁 지원조례)'를 근거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에게 위로금 지급을 시작했지만 반응은 싸늘하다. 지원 대상자 선정과 지원금의 규모가 비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조례의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부마민주항쟁 지원조례'는 2019년 12월 26일 제정됐다. 부마민주항쟁을 기념하고 관련자와 유족을 예우·지원하고자 마련한 조례다. 조례는 제7조에서 관련자와 유족에게 위로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경남에 주소를 두고 거주하는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와 유가족이 대상이다.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는 항쟁으로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 상이를 입은 사람 등 중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 및 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에서 관련자로 심의, 결정된 사람을 말한다.

◇예우에 복지사업 기준 적용 = 모두 75명이 위로금 지급을 신청했다. 김해에 사는 부마민주항쟁 관련자 김경훈 씨도 위로금 지급을 신청했지만 '해당 사항 없음'을 이유로 대상에 들지 못했다. 신청자의 21%인 16명만 대상으로 선정됐다. 모든 관련자가 위로금 지급 대상이 되지 못한 까닭은 '기준'이다.

경남도는 '월 소득액이 기준 중위소득 100% 이하인 가구'로 대상을 한정했다. 올해 기준 중위소득 100%는 △1인 가구 182만 7831원 △2인 가구 308만 8079원 △3인 가구 398만 3950원 △4인 가구 487만 6290원 △5인 가구 575만 7373원 △6인 가구 662만 8603원이다.

▲ 김경훈  부마민주항쟁  관련자. /김은주 인턴기자
▲ 김경훈 부마민주항쟁 관련자. /김은주 인턴기자

4인 가구인 김경훈 씨는 '해당사항 없음'을 이유로 위로금 대상자가 되지 못했다. 선정되지 못한 관련자는 모두 소득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기준 중위소득은 여러 경제 지표를 반영해 산출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 같은 복지사업 수급자 선정에 활용한다.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를 예우하는 위로금 지급 대상 선별 과정에 복지사업 기준을 적용한 것이다.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인 김영환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회장은 그 기준이 부당한 이유를 짚었다.

"지급 대상자와 아닌 자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했습니다. 기준을 바꾸거나, 기준 자체를 없애 모든 관련자나 유족에게 도움이 되도록 했었어야 한다는 겁니다. 복지사업 기준을 적용할 거라면 차라리 위로금이 아니라 생활지원금으로 바꿔 정말 힘든 관련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한다든지 말이지요."

사실 위로금 지급 신청부터 문턱은 높다.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로 인정받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고, 입증 책임도 신청자에게 있어서다.

"관련자 인정을 받으려면 본인이나 유족이 심의위원회에 신청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판결 기록, 군경 관련 자료 같은 공적 증빙자료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자료가 없다면 인우(현장에서 목격했거나, 관련자와 같이 활동한 자 또는 직접 목격을 하지 않았으나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아는 자) 보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인우 보증은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이 사망했거나, 행방을 모른다면 개인이 찾을 방도가 없습니다." 김영환 부회장이 설명했다.

◇아쉬운 배려…대화 필요해 = 위로금 액수도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를 당혹스럽게 했다. 김경훈 씨는 "실질적인 예우라면 최소한 생활에 도움이 될 정도여야 한다"고 말했다. 위로금 지급 대상자 16명에게는 1인당 매월 5만 원을 지급한다. 올해 관련 예산은 2250만 원인데, 16명에게 12개월 동안 지급될 위로금 총액을 계산하면 960만 원이다.

예우가 시혜로 뒤바뀐 까닭은 무엇일까. 김영환 부회장은 "관련자를 예우하는 조례이지만 처음부터 관련자 의견을 듣는 과정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조례 제정 추진 당시 토론회에 참석했던 김경훈 씨도 김 부회장 지적에 동의했다. 현장에서 의견을 제시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 그는 "행정 편의적 접근"이라고 반응했다.

▲ 김영환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회장. /김은주 인턴기자
▲ 김영환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회장. /김은주 인턴기자

부마민주항쟁 관련자가 단순히 '액수'가 적다고 위로금 지급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인 이창곤 부마민주항쟁 경남동지회 부회장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은 엄청난 지원이나 예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국가 폭력에 따른 피해로 지금도 겪는 불안감, 국가를 향한 불신을 없애주길 바랐을 뿐입니다. 국가나 지자체에서 예우를 해주겠다고 했을 때 큰 안정감을 느꼈습니다. 막연한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말이죠. 하지만, 시혜 대상으로 바라본 듯합니다. 그마저도 기준을 정해서요. 기대감도 주지 않고, 좌절감도 주지 않았다면 오히려 낫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돈을 받겠다고,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말이죠."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는 작든 크든 트라우마(강력한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 건강 질환)를 호소한다. 복지사업 수급자조차 부정적 낙인 효과를 우려하는 현실임을 감안한다면,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를 위로하겠다는 행정 조치에 배려가 부족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

이창곤 부회장은 조례 의미를 재고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부마민주항쟁 참여자가 대한민국 민주화에 엄청난 이바지를 했다는 사실을 국가가 인정하고 의미를 부여했고, 그 기여에 맞는 예우와 지원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가가 지켜야 할 이념이 훼손되고, 탄압받고, 희생당할 때 어떠한 사회적 배려를 해야 하고, 사회적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지를 의미하는 겁니다. 그런데 기대가 컸던 조례가 현실적으로 관련자에게 실망감을 주고 나아가 항쟁 의미를 훼손했습니다. 김경훈 동지 말처럼 행정 편의적으로 접근한 탓이죠."

첫 단추를 잘못 끼웠지만 바로잡을 기회는 충분하다. 대화를 통해서다. 이창곤 부회장은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와 만나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대화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실질적인 지원 고민을 =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들은 나아가 실질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김경훈 씨는 "예산을 확대해서 일괄적으로 지원하는 방식도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김영환 부회장은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를 진심으로 예우하겠다면 트라우마를 겪는 항쟁 참여자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의료 방안을 모색했으면 한다"며 "항쟁 참여자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조례 목적을 되새겼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이창곤 부회장은 "조례는 국가가 국민에게 행한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폭력을 반성하고, 미래 세대가 같은 비극을 겪지 않아야 한다는 경계와 교훈을 담고 있다"며 "조례 본래 취지가 잘 반영된, 관련자와 시민이 충분히 공감할 조례 시행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 이창곤  부마민주항쟁경남동지회  부회장. /김은주 인턴기자
▲ 이창곤 부마민주항쟁경남동지회 부회장. /김은주 인턴기자

조례는 제4조에서 '경상남도민은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역사적 사실의 규명을 위해 함께 노력하여야 한다'며 도민 책무를 규정한다. 이창곤 부회장은 "부마민주항쟁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관련자를 예우하고, 위로금을 준다는 거냐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며 도민 관심을 호소했다.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일부터 10월 20일까지 옛 부산직할시와 마산시 등에서 일어난 민주 항쟁이다. 당시 항쟁 참여자가 외쳤던 구호는 '독재 타도'와 '유신 철폐'. 유신은 박정희 정권 최대 실책으로 꼽히는 '유신헌법'을 일컫는다.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해 독재를 정당화했다. 특히 제53조에서 긴급조치를 규정했는데, 대통령이 긴급조치를 발동하면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할 수 있었다. 더욱이 긴급조치 1호는 유신헌법을 부정하거나 반대하면 영장 없이 체포하고 비상군법회의에서 15년 이하 징역에 처했다.

이창곤 부회장은 "길을 가다가, 버스를 타고 가다가 대통령을 비판하고 헌법을 바꿔야 한다고 혼잣말이라도 하면 잡혀갔다"며 "영장도 없이 군법회의에 끌려가 15년 이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쳤고, 정부의 부당함을 꾸짖은 시민항쟁이 바로 부마민주항쟁"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도는 위로금 지급 추가 신청을 받고 있다. 관련 보도자료에서 도는 "이번 위로금 지원으로 우리나라 4대 민주항쟁의 하나인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시민 의식이 보다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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