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력발전소와 1.5㎞ 거리 위치…연기·악취·소음·진동에 곤욕
덕명마을, 암 발병률 8% 달해…발전소에 저감시설 설치 요구
신덕마을, 구토·어지럼증 호소…을 관계 벗어나 권리 찾기 나서

고성군 하이면 주민들은 길게는 1983년부터 약 40년간 삼천포화력발전소를 옆에 두고 살고 있다. 지난달 30일 삼천포화력발전소 1·2호기가 가동을 멈췄지만, 바로 옆에 새로운 석탄발전소인 고성하이화력발전소 1·2호기가 올해 안에 차례로 가동될 계획이다. 주민들은 "앞으로 30년 더 피해를 보고 살아야 하느냐"며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발전소로부터 북서쪽에 신덕마을, 동쪽에 덕명마을이 있다. 두 마을회관에서 발전소까지 직선거리는 1.5㎞ 정도다. 신덕마을은 들판을 끼고, 덕명마을은 높이 150m 야산을 끼고 발전소와 이웃하고 있다. 김동인 덕명마을 피해대책위원장과 이은호 신덕마을 이장을 만났다. 주민들은 올 들어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게 됐다. 고성하이 1·2호기가 시험운전에 들어간 이후 발전소에서 내뿜는 연기나 악취, 소음과 진동, 야간 빛 공해가 다시 일상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환경·건강권에 관한 각성 = 김동인 위원장은 20년 전 덕명마을에 터를 잡았다. 해운·조선업에 몸담으면서 전국의 많은 어구를 둘러봤는데, 이곳 환경에 반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자식들 오면 여기 있다가 가라는 말을 못 하고, 살겠다고 하면 말려야 하는 상황"이다. 김 위원장은 "마을과 발전소가 같은 지층으로 연결돼 발전소 공사나 발전사업이 마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오래전부터 물고기 폐사나 검게 변한 조개류 등을 보면서 양식장 어민들도 체감해왔다"고 전했다.

▲ 고성하이화력발전소를 가리키고 있는 이은호 고성군 하이면 신덕마을 이장. /이동욱 기자
▲ 고성하이화력발전소를 가리키고 있는 이은호 고성군 하이면 신덕마을 이장. /이동욱 기자

왜 새로 석탄발전소(고성하이 1·2호기)를 만들었는지 그는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주민들은 "발전소 공해로 환경과 생명이 저당잡힌 꼴"이다. 김 위원장은 "올 초부터 옥내 저탄장 안에 가스가 생기고 석탄끼리 부딪치는 자연 점화로 불이 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악취나 연기가 발생해 이후 조사했다고 하지만, 아직 명확한 대안을 전해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지난해 말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올 초에는 이름도 닮은 하동화력발전소 옆 명덕마을을 다녀왔다. "명덕마을 주민 암 발병률이 7.4~7.5%였다는데, 우리 주민 230명 중 암 투병이 18명이었다. 암 발병률이 7.7~7.8%다. 우리 마을은 영향을 주는 곳이 석탄발전소밖에 없어서 대기, 지질, 유해물질 변화 등에 관해 지표가 될 수 있다."

대책위는 공해 저감시설 설치와 소음을 줄이는 나무 심기를 발전소 측에 요구했다. "에너지와 저탄소 정책 등 세계적 흐름으로 보면 국가가 석탄발전소 폐쇄를 공약해야 하는 상황이다. 발전소도 도덕적 경영, 환경오염 중단, 지역 환경과 주민 건강권을 생각해야 한다. 고성군과 발전소가 마을 적당한 위치에 측정기를 설치해 사계절 내내 대기환경, 소음과 진동 등을 감시해야 한다. 서로 믿는 관계에서 발전소를 가동하자는 것이다. 그다음이 기업 이윤이다."

▲ 마을과 고성하이화력발전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김동인 고성군 하이면 덕명마을 피해대책위원장. /이동욱 기자
▲ 마을과 고성하이화력발전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김동인 고성군 하이면 덕명마을 피해대책위원장. /이동욱 기자

김 위원장은 해안 침식 등으로 논란을 겪는 강원 삼척화력발전소를 보면서 이곳 바다에도 악영향이 있을지 걱정이다. 석탄발전소 인근 마을 간 소통과 연대가 절실하다고 느낀다.

"과거 자치단체 재정 자립도가 열악해 발전소를 유치하고 자랑하던 모습은 이제 창피해 어디 이야기를 못 하겠다. 위정자가 주도하고 마을 주민을 동원해 연대서명을 하게 하고, 마을 대표들은 발전시설에 관해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고 동의했다. 이런 과정이 지금의 기후위기에 일조했다. 마을이든 자치단체든 발전소든 제 역할을 못하면 세계가 걱정한다. 각성해야 한다."

◇면밀한 조사 요구 = 신덕마을에는 650여 명(300가구)이 산다. 하이면사무소도 있고 마을치고는 인구가 많은 편이다. 이은호 신덕마을 이장은 올 1월 말 선거에서 처음 당선됐다.

"마을 봉사가 즐겁다"는 그는 이장 가운데에서도 어린 1980년생이다. 자신의 고향은 인근 고성 하일면 춘암마을이고, 처가가 신덕마을에 있다.

▲ 고성군 하이면 신덕마을에 걸려 있는 고성하이화력발전소 비판 펼침막. /이동욱 기자
▲ 고성군 하이면 신덕마을에 걸려 있는 고성하이화력발전소 비판 펼침막. /이동욱 기자

이 이장은 지난 선거에서 '강한 신덕'을 내세웠다. 이 구호는 발전소와 무관하지 않다. "과거에는 환경이라는 문제를 세심하게 못 챙겼다. 그리고 마을은 발전소와 관계에서 항상 을이었다.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우리의 환경과 권리를 찾겠다는 것이다. 이런 진심을 주민들이 지지해주셨다고 생각한다."

발전소를 둘러싸고 그동안 정치와 언론이 보여온 행태에는 배신과 실망이 컸다고 한다. 유해시설이라는 발전소의 약점을 악용해 지역이 아닌 개인의 이익을 위해 정기적으로 마을과 발전소를 드나드는 기자도 목격했다.

▲ 고성군 하이면 덕명마을<br /><br />들머리에 걸려 있는 고성하이화력발전소 비판 펼침막. /이동욱 기자
▲ 고성군 하이면 덕명마을 들머리에 걸려 있는 고성하이화력발전소 비판 펼침막. /이동욱 기자

"공사를 하면 지역민은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이 있었다. 발전소가 눈에 띈 것도 10년 남짓이다. 이전에는 발전소와 돈, 높은 양반들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는 것이 많았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지역이 망했다는 인식이 커졌다. 앞으로는 다를 거고 사회 문제를 보고도 지나치지 않을 거라는 주민들의 기대가 있다고 본다."

올 2월 마을 주민들은 악취에 구토와 어지럼증 등으로 보건소와 병원 신세를 졌다. 이 이장은 낙동강유역환경청 등 기관의 조사가 면밀히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성하이는 친환경 기술과 같은 수식어를 붙여 들어왔지만, 옥내 저탄장 안에서 독한 냄새가 밖으로 빠져나오는 문제가 있었다. 민가와도 가깝다. 장기적으로 24시간 감시해 원인을 잡아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조사가 발전소에 면죄부를 주는 게 되어선 안 된다. 가습기 살균제도 처음에는 괜찮다고 했지 않느냐. 주민들은 종일 밭일 하는 사람도 있고, 30년을 같이 살아야 한다. 10분, 하루, 한 달, 1년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근본 대책 없이 운영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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