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주민들 입맛 돋우는 색다른 돈가스

담백한 돈가스를 오랜만에 만났다. 창원시 의창구 서상동 창원과학고등학교 앞 ‘비비돈가스’가 그 주인공이다. 점심시간 가게는 손자를 데리고 온 할머니부터 주부 모임, 직장인 모임 등 남녀노소 돈가스를 즐기러 온 이로 가득했다.

건축가에서 요리사로 변신한 50대 아저씨

비빔밥과 함께 먹는 돈가스라는 뜻에서 지은 ‘비비돈가스’ 문을 열기까지 허명(57) 씨와 아내 이복희(56) 씨는 다시 태어나는 기분으로 창업에 임했다.

“나이 육십 앞두고 불확실한 업종에 왜 뛰어드느냐는 얘기를 친척이며, 친구며 주변에서 귀에 닳도록 들었어요. 하던 건축업이나 계속하면서 남에게 일 맡기고 돈이나 타먹지 왜 주방에서 생고생하느냐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지금은 다들 아무 소리 못하죠. 즐겁게 일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 이제는 다들 응원해주고 있어요.”

고향이 옛 마산 월영동이었던 허명 씨는 서울의 한 건축회사에서 일했지만 IMF 외환위기 때 실직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은 서울에 둔 채 창원에서 건축업을 계속 이어갔으나 그것마저 시들해졌다.

남은 일생을 부지런히 제 몸 움직이며 일할 수 있는 게 뭐있나 고민 끝에 결심한 요식업은 그의 인생 제2막을 알리는 원동력이다.

“5년 정도 전국에 있는 맛집을 돌아다녔어요. 떨어져 지내며 고생했던 아내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같이 여행하며 맛난 음식을 먹으러 다녔는데, 다니다 보니 재료에 대해 관심이 가고 나중에는 요리사를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고 말았어요. 무엇보다 아내와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거죠.”

아내 이복희 씨도 요리사가 되겠다는 남편을 응원하며 발 벗고 나섰다.

/김구연 기자

“남편은 한 번 마음먹은 일은 끝까지 해내는 성격이에요. 5년 동안 같이 여러 음식을 맛보던 과정에서 남편은 요리사가 되길 희망했고, 돈가스라는 메뉴를 정하고는 요리 학원이며 창업센터며 열성적으로 다녔어요.”

나이 오십을 훌쩍 넘기고 젊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요리를 배우며 창업을 준비하는 일은 자신을 내려놓는 것에서 출발했다.

“요리 선생님이나 요리사 선배들에게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예를 갖췄어요. 대부분 여성이거나 남성이라도 젊은 친구들이 전문 과정에 들어와 있었는데, 처음에는 다들 곧 안볼 사람처럼 대하더라구요. 적당히 하다 나가떨어지겠지 생각들 했겠죠.”

누구보다 열과 성을 다했던 허명 씨는 “몇 년 하고 접을 생각이었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장기적으로 보고 창원에 대표 음식점으로 남겠다는 각오로 가게를 열었다”고 했다.

하루 두 번의 기름교체 시간 공지

비비돈가스 사장이자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허명 씨가 자신있게 내놓은 왕돈가스와 샐러드돈가스를 맛봤다. 인기 메뉴인 왕돈가스는 돼지고기에 빵가루를 입혀 노릇하게 튀겼다. 어른 손바닥 2개 크기만한 돈가스는 기름기가 잘 빠져 배불리 먹어도 느끼하지 않았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맛의 비결은 단연 돼지고기의 질과 상태다.

허명 씨는 “돼지고기를 숙성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생고기를 이틀에 한 번 함안까지 가서 사옵니다. 배달을 안해주니 직접 가서 사와야지요. 잡은 고기를 바로 쓰면 근육이 경직돼 있어 맛이 없지요. 이틀을 숙성해 근육을 이완시킵니다.”

구입한 돼지고기 등심은 힘줄을 제거하고 먹기 좋은 크기로 손질해 저온 냉장고에서 우선 하루를 숙성한다. 그다음 칼집을 넣어 화이트 와인과 마늘을 추가해 하루 더 숙성한다.

허 씨는 주문을 받는 즉시 숙성된 돼지고기에 빵가루 옷을 입혀, 170도 온도에 3분 동안 튀겨낸다.

냉동 돼지고기는 금방 티가 나기 마련이다. 씹으면 보통 퍽퍽하고 질기다. 비비돈가스의 돈가스는 입안에 넣을 때까지 고기와 튀김옷이 혼연일체를 이루며 부드럽게 씹히고 촉촉함도 살아 있다.

/김구연 기자

튀김 기름 교체시간 오전 10시 30분, 오후 4시.

비비돈가스는 주방 앞에 손님들이 볼 수 있도록 기름 교체시간을 안내해놓고 있다.

허명 씨는 “같은 기름을 오래도록 쓰면 고기 냄새부터 다르다. 손님들에게 약속한다는 생각으로 기름 교체시간을 내걸었다”고 설명했다.

물론 교체시간을 공개하지 않고 기름을 교체할 수도 있었지만 나중에 혹시 마음이 변할까봐, 흔들릴 그때마다 손님들이 지적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었다.

소스도 중요한 맛의 포인트다.

“소스 만드는 데 장장 5시간 30분이 듭니다. 재료 손질하고 계량해서 믹서기에 분쇄하는 데만 2시간이 걸리고, 여기에 밀가루를 버터에 따로 볶는 시간 1시간, 섞어서 불 위에서 졸이는 시간 2시간 30분을 합치면 그리됩니다.”

토마토, 양파, 당근, 파인애플, 바질, 월계수잎 등 27가지 재료가 들어간 소스는 연갈색과 연주황색의 경계에서 빛에 따라 달리 보인다.
다행히 비비돈가스는 돈가스를 소스 통에 담갔다가 빼거나 소스로 범벅하지는 않지만 왕돈가스에 소스가 뿌려져 나오는 것은 아쉽다.

샐러드돈가스처럼 소스를 따로 뿌려 먹거나 찍어 먹을 수 있도록 하면 손님 기호를 더 존중할 수 있으리라.

샐러드돈가스는 야채를 즐겨 먹는 이들이나 맥주 안주가 필요한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메뉴다.

“샐러드돈가스는 드레싱 소스를 별도로 만듭니다. 사과, 당근, 생강 등을 갈아서 만들고 있지요. 물론 소스를 사서 쓰면 간편하겠지만, 천편일률적이고 영혼이 없는 맛이죠.”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돈가스

비비돈가스에서는 밥이 돈가스 옆에 얹혀 소스를 머금는 일은 없다. 미니 뷔페식으로 비빔밥 코너를 따로 마련해 뒀기에 밥그릇에 밥만 담아오거나 다섯 가지 고명으로 취향에 따라 비빔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다섯 가지 고명은 알배추무침과 콩나물, 부추나물, 무채, 김가루다.

“고명은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달리해서 냅니다. 돈가스를 대부분 단순 메뉴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죠. 중년층도 즐기고, 고객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비빔밥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도록 했지요.”

학교도 가까이 있지만 주택이 주변에 밀집해 있어 가족 단위 손님이 특히 많다. 손자에게 돈가스를 먹이려 찾아왔던 할머니가 더 즐겨 찾는 식당이 됐다.

/김구연 기자

“‘만 원 내고 먹는 음식에 이처럼 대접 받는 기분을 느껴본 적도 없는 것 같다’던 손님 말을 잊을 수 없었어요. 요리사는 음식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요리 솜씨로 손님을 대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슴 깊이 새겼지요.”

주인장 허명 사장이 건축 전공을 십분 발휘해 직접 가게를 단장한 덕분에 세련되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가 눈길을 끈다. 가게 중간 문을 나서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과 테라스가 마련돼 나들이 나온 기분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메뉴 및 위치>
◇메뉴: △수제 왕돈가스 8500원 △수제 돈가스샐러드 9500원 △수제 안심돈가스 9000 △수제 돈가스 정식 9500원 △어린이 수제 돈가스 5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9시 30분.
◇위치: 창원시 의창구 평산로 135번길 21(서상동).
◇전화: 055-282-8700.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