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상생발전 위한 융합 '시대추세'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부산·울산·경남을 묶어 동남권 특별자치도를 만들자고 전격 제안했다. 그러나 생소한 제안은 아니다. 전임 김태호 지사도 비슷한 제안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09년 1월, 연두 기자회견을 자청한 김태호 전 도지사는 '토끼와 호랑이론'을 내세워 부울경 통합을 전격 제안했다. 이야기인즉슨, 동남권은 수도권에 비하면 세 마리의 토끼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 마리의 호랑이를 만들어 수도권에 대적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해 일성으로 던진 이 통 큰 제안은 그러나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다. 울산시가 먼저 발끈했다. 도내 반응도 좋지 않았다. 구체적인 내용도 없고 부산·울산과 사전 조율도 없는 '일방통행 행정'이며 의제를 먼저 만들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김 지사 특유의 정치적인 행보라는 비난이 돌아왔다. 부산시도 며칠 후 점잖게 거부하면서 이 제안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8일 오전 '동남권발전계획 보고회'에서 김두관 지사(맨 앞)가 보고를 받고 있다. /경남도

그로부터 2년 후 2011년 3월. 구제역 여파로 미뤄졌을 뿐 사실상 연두 비전 선포식인 '동남권 발전계획 보고회'에서 김두관 지사는 '동남권 특별자치도'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전·현직 지사의 제안은 각론은 다를지언정 총론은 같은 셈이다. 이미 한 차례 거부당한 카드를 다시 꺼낸 이유는 뭘까. 이번 김 지사의 제안은 이전과 무엇이 달라졌을까.

◇김 지사 전격 제안, 왜 = 8일 보고회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단어는 '한 뿌리' '지자체 갈등' '시대 추세' 등이었다. 설명하면 이렇다. 1963년 부산, 1997년 울산이 분리되기 전에는 하나의 공동체로 모체는 경상남도인 한 뿌리였다, 분리 당시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었겠지만 최근 각종 지자체 간 갈등을 푸는 데 이 같은 지역단위는 소모적 논쟁과 막대한 행정력 낭비만 초래하므로 이제는 융합이 시대 논리로 굳어졌다, 지자체 간 갈등을 상생 발전 에너지로 치환하고 융합을 통해 참다운 지방분권을 누리자는 것이 김 지사의 '신동남권 시대'의 요체다.

취임 이후 한국토지주택공사 이전, 남강댐 물 부산 공급, 동남권 신공항 문제 등 지자체 간 경쟁이 전쟁으로 비화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차일피일 세월을 보내면서 갈등을 방관했고, 나아가 '정두언 파동'처럼 지역민에게 탓을 돌리는 행태에 김 지사는 발끈했다. 갈등을 끝내고 정부의 행정체제 개편에도 일조하며 분권을 이룰 방안으로 이번 '신동남권 시대'를 들고 나온 것이다.

낙동강 반대 입장으로 지난해 하반기 내내 전국적 관심을 끈 김 지사가 지역을 초월한 새 이슈를 만들어 '큰 뜻'을 품은 정치인으로 다시 한번 어필하겠다는 정치 행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김 지사 측은 이번 제안을 4·27 재·보선과 총선·대선까지 이어 쟁점으로 부각시킨다는 계획이어서 '대권 행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현 가능성 = 열쇠는 어디까지나 부산과 울산의 참여 의지다. 다른 자치단체장이 선점한 의제를 그대로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수용할 수밖에 없는' 합리성과 시대적인 요구에 부합 정도가 중요하다. 이 부분이 2009년 당시 김 전 지사의 제안 때와 다른 점이기도 하다.

우선 특별자치도는 2014년까지 지방행정체제를 개편하겠다는 정부의 일정 혹은 맥락과 함께한다. 정부는 100만 명 남짓 광역체제가 정부 사업을 둘러싼 갈등을 관리하기보다 부추겨왔다고 인식하고 있다. 체제개편 작업은 닻이 올랐고, 경남도의 제안을 간단히 무시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부산시는 인공습지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지만 장기적으로는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낙동강 사업에 적극적인 부산시로서는 어쨌든 대체 상수원을 확보해야 하고, 경남이 나름 제안한 대안을 다른 대안 없이 반대만 할 수는 없다. 특히, 부산시는 2007년 부산발전연구원으로 하여금 '낙동강변 천변저류지 활용을 통한 상수원수 확보'라는 연구에서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제안 방식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됐다. 김 전 지사 때와 마찬가지로 부산과 울산과의 사전 조율 없이 일방적으로 제안해 이날 부산과 울산에서는 허둥지둥 내용을 파악하는 수준이었다.

◇이후 과제 = 최우선 과제는 부산과 울산의 동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총론에서 합의했다 하더라도 각론에 들어가서는 예기치 않은 문제점이 도출될 수도 있다. 이날 보고회에서 구도권 동남권발전전략본부장은 "지역이 합세해 각종 전략사업을 유치하면 경쟁력이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문제도 없지 않다. (사업에 선정되고 나서) 거점지구를 또 어디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갈등이 벌어질 것"이라며 "5개 중 4개는 내어 줄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먼저 의제를 선점한 주체가 그만큼 양보해야 통합이 원활하다는 것이다. '통 큰 제안에 맞는 통 큰 양보가 있어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지나친 양보로 '명분만 얻고 실리는 잃었다'는 도민의 손가락질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