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검증으로 시민 공감대 형성 최우선…"관 주도형 일방 추진 지양해야"
창원시가 이원수 기념사업 설문조사를 놓고 아무런 입장을 보이지 않은 건 아니다. 최근 시청 프레스센터를 갑자기 찾은 정기방 문화체육국장은 "(여론조사를)접겠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그것을 공식적 입장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어쨌든 이번 일은 지자체의 인물 기념사업이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 상기시키는 계기였다.
◇다음 사업의 공통점은? = 진주시의 남인수가요제 지원, 통영시의 청마 유치환 문학상 지원, 함안군의 문학평론가 조연현 기념사업, 옛 마산시의 노산문학관 추진과 조두남음악관 추진. 해당 인물들이 하나같이 친일 행적이나 독재 부역 논란을 겪었고, 그 결과 기념사업이 중단 혹은 축소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자체가 사업을 추진하기에 앞서 인물의 공과를 함께 검증하지 않았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친일 논란 속에서 남인수가요제는 진주가요제가 됐고, 조두남음악관은 마산음악관이 됐다. 조연현 생가 복원과 문학상 제정을 추진했던 함안군도 이를 접었다. 청마는 일부 친일 작품이 지목됐지만, 그가 친일 인명사전에 오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통영시 지원이 계속되고 있다.
◇인물 기념의 또다른 양상 = 창원 출신인 최윤덕 장상 기념사업은 이전부터 진행됐지만, 통합 직후에는 8억 원을 들여 동상을 세우는 등 본격화하고 있다. 창원시는 내년에 사업비 50억 원으로 북면 내곡리 추정 지역에 그의 생가 복원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애초 계획했던 고증 절차마저 후손의 주장을 근거로 밟지 않기로 했다. 추진의 당위성을 앞세워 절차나 시민들의 공감 정도에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한때 창원에서는 초등학생들에게 최윤덕 전기를 읽고 독후감을 쓰게 하는 등 기념 폭이 교육현장에까지 미쳤다. 창원문화원 박동백 원장은 "그는 창원이라는 지명이 탄생한 600년 전에 살았던 인물이다. 장상으로서 6진을 개척하고 대마도를 정벌한 업적과 충효 정신 등 모자람이 없다. 충분히 키워야 할 창원의 인물"이라고 말했다. 창원시 또한 최 장상을 통해 시가 지향하는 '기상(氣像)'과 '웅비(雄飛)'라는 이미지를 획득하려 한다.
◇전문가가 말하는 기념사업 조건 = 창원대 사학과 남재우 교수와 경남역사교사모임 안병갑 회장(경남과학고 교사)은 최윤덕 기념사업을 겨누어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말한 기념사업의 조건을 통해 최윤덕 사업의 맹점을 읽을 수 있다.
남 교수는 "오늘을 사는 시민들 정서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마산을 민주화 성지라고 하지 않냐"고 전제한 그는 "대표적인 게 3·15의거다. 만약 도화선이 됐던 인물인 김주열 기념사업을 한다면 시민들이 느끼는 공감도가 다를 것"이라면서 "옛날에 유명했던 인물이니까 기념하자는 건 곤란하다. 또 관광상품화나 관광자원화 차원에서 접근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안병갑 회장은 "사업 전에 공과를 검증하고, 시민 전반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면서 "인물을 기억하는 방식도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나를 따르라" 식의 일방적 기념 형태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었다. 동상을 세우거나, 생가를 복원하는 등의 형식을 빗댄 것이다. 안 회장은 '원주시의 박경리 선양 사업'을 좋은 사례로 추천했다.
<토지>가 완성됐던 원주시 단구동에 박경리문학공원을 세우고, 그가 2008년 타계할 때까지 살았던 흥업 토지문화관 운영을 위해 연간 1억 9000만 원 정도를 지원하는 원주시의 기념사업이다. 시가 운영하는 박경리문학공원에서는 연간 3500만 원의 프로그램 운영비로 시민 대상의 소설 토지학교와 청소년 대상의 토지 한국사학교 등이 진행된다. 일방적 교육이 아니라, 희망자로 한정된 쌍방향 교육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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