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수간산 간인간세 - 남강을 다시 읽다
(6) 함양 상림과 화수정

남계서원을 지난 남강의 상류 남계천은 4.5㎞ 정도를 더 내려가, 함양 상림을 거쳐 온 위천(渭川)과 만나 완만하게 곡선을 이루며 산청 방향으로 흘러간다. 함양 백운산에서 발원한 14㎞ 길이의 위천은 함양의 중심지를 흐르면서 넓은 충적지를 만들었다.

위천의 옛 이름은 뇌계(雷溪)였다. 강물이 우레처럼 소리치며 사납게 넘쳐 흘렀다는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신라 진성여왕 말기, 함양에 부임한 최치원은 위천의 범람을 막고자 둑을 쌓고 숲을 조성했다고 전한다. 지금으로부터 1130년쯤 전의 일이다. 흙만으로 조성한 둑보다 나무를 위에 심어 만든 둑이 훨씬 튼튼하다. 나무가 뿌리를가 내리면서 흙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원래는 상림, 중림, 하림이 따로 있을 정도의 규모였지만 지금은 상림만 남아 있다. 상림은 120여 종, 2만여 그루의 나무가 폭 80~120m, 길이 1.6㎞의 숲길을 이루고 있다. 면적은 21㏊, 6만 3000여 평에 이른다. 사실 최치원이 함양 상림을 조성했다는 확정적인 기록은 없다. 함양읍의 전설과 1923년 최씨 문중에서 세운 '문창후 최선생 신도비'가 전부이다.

함양 상림 숲길. /김석환 교수
함양 상림 숲길. /김석환 교수

◇상림은 과연 자연림이었을까 = 김종원은 논문 <한국 유적림(遺跡林)의 생성 기원에 대한 생태사회학적 고찰>에서 함양 상림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인공림이 아니라 오래된 자연림이라고 단언한다. 김종원은 그 근거로 상림의 가장 대표적인 나무인 개서어나무는 인공적으로 심은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자란 것들이라고 말한다. 김종원은 '상림은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대표적인 자연식생 유형인 개서어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팽나무 등이 섞여있는 낙엽·활엽혼효림의 식생 상태'라고 평가했고, 최치원은 '긴 제방을 축조하고 제방 배후 숲을 보호해 홍수재해를 막았다'고 밝혔다. 사실 상림의 가치는 숲을 이용해 만든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생활환경에 있다. 

함양 숲에는 전국적으로 희귀한 개서어나무와 느티나무가 합쳐져 하나의 나무로 자란 연리목(連理木)이 있다. 나무는 자라서 주변 나무와 부딪힐 정도가 되면 서로 변화를 주고받는다. 거칠게 부딪히면 가지가 부러지거나 상한다. 마찰이 계속되다가 마침내 안정되면 줄기나 가지가 서로 이어지기도 한다. 

연리목은 효(孝)가 최대의 덕목이었던 시절에는 효성스러운 자식과 부모로, 요즘에는 사랑하는 남녀로 비유된다. 연리가 된 나무는 서로 물과 양분 등 물질 교환이 이뤄진다.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접붙이기와 같은 원리다. 접붙이기는 같은 종이거나 분류학적으로 가까운 나무일수록 성공률이 높다. 그래서 개서어나무와 느티나무의 연리목이 대단히 희귀하다. 연리목은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상림을 상징하는 것일까?

숲도 인간 세상처럼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  숲의 학술적 정의는 '시간이 흐르면서 생성과 소멸 그리고 재생의 과정을 반복하는 식물 종들의 집합'이다. 그래서 함양 상림의 기원이 1130여 년 전이라고 하지만 정작 상림에는 100년 이상 된 오래된 나무가 거의 없다. 2010년 문화재청의 조사에 따르면 상림의 가장 오래된 나무는 수령 120년 정도였다. 우리는 늘 같은 숲을 보는 것 같지만 숲 안에서는 나무들의 세대교체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최치원의 인공림 전설이 없어도 상림은 오래된 유적림으로 충분히 가치 있고 아름답다.

◇화수정의 비밀과 지리산 = 다른 곳에 있다가 옮겨진 것이긴 하지만 상림에서 주목할 것은 '열녀 밀양박씨 정려비'이다. 박지원은 안의현감 당시 들었던 이야기를 소재로 한문 소설인 <열녀 함양 박씨전>을 지었다. 소설에서 박지원은 남편 삼년상을 마치고 자살한 밀양 박씨를 기리면서 동시에 수절 강요와 개가 금지, 서얼 차별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며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천년기념물인 상림에 들어선 화수정. /김석환 교수
천년기념물인 상림에 들어선 화수정. /김석환 교수

한국은 여성 직장인의 임금이 남성의 66.8% 수준으로 남녀별 임금 격차가 OECD 33개국 가운데 가장 크다. 영국 시사주간지<이코노미스트>가 성별 임금 격차, 육아 휴직, 육아 비용, 교육 성취도, 노동시장 참여율, 고위 관리직 및 정치 직종에서의 대표성 등 10가지 지표에 따라 측정하는 이른바 '유리천장 지수'도 2013년 첫 발표 이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12년째 꼴찌이다. 2023년 6월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23년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서도 한국은 105위로 '성 평등 후진국'이다. 박지원의 시대에도, 2024년 대한민국에도 여성들에 대한 유무형의 불평등은 여전히 강고하다. 

함양 상림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1962년이었다. 11년 뒤인 1972년, 사유지도 아닌 국가지정문화재 구역 안에 한 가문의 정자가 들어선다. 함양 파평 윤씨 문중에서 건립한 '화수정(花樹亭)'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당시 함양경찰서장이 파평 윤씨였다. 변호사 시절 박원순의 <야만 시대의 기록 2>에 따르면 윤일식 서장이 탄 경찰 지프차가 취객을 치고 달아났는데, 경찰이 유조차 조수를 고문해 사고 신고자인 유조차 운전기사를 가해자로 만들었다고 쓰고 있다. 10월 유신 다음해인 1973년 5월의 일이다. 수사를 담당했던 산청경찰서 형사계장 등 경찰 3명은 유조차 조수인 18살 정은식을 산청경찰서 뒤 경호강으로 끌고 가 옷을 벗기고 30초 간격으로 30초씩 물에 거꾸로 담가 자백을 받아냈다. 천연기념물 구역에 권력의 위세를 업고 들어선 상림공원 화수정 계단에는 지금도 파평 윤씨 화수정이라고 자랑스럽게 적혀 있다.

강정 두물머리 경호강. /김석환 교수
강정 두물머리 경호강. /김석환 교수

남덕유산에서 시작한 남강 본류는 함양에서 위천과 합류한 뒤 산청 쪽 5시 방향으로 흘러, 지리산에서 북동쪽 1시 방향으로 내려온 물길을 맞이한다. 산청군 생초면 강정마을 두물머리이다. 

두 물이 만나는 곳이, 강정 두물머리이다. 이곳에는 모래톱이 넓게 형성되어 있고 강물의 흐름은 호수처럼 대단히 완만하다. 산청 사람들은 그래서 강정에서부터 진주 진양호까지 약 32㎞ 구간을 특별히 경호강(鏡湖江)으로 부른다. 거울처럼 맑고 호수처럼 물살이 잔잔하다는 뜻이다. 

두물머리 물길의 한 가닥은 지리산에서 비롯한다. 지리산(智異山)이라는 이름의 뜻은 다름과 차이를 알고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평등은,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지리산은 일찍부터 평등과 포용의 산이었다. 하지만 근현대사에서는 '쫓겨나거나 달아난 자'들의 땅으로 '슬픈 산'이었다. 진주민란의 연루자, 동학혁명에서 패배한 농민, 일제에 쫓긴 의병들, 한국전쟁의 빨치산들이 마지막으로 숨어들었던 산이었다. 그 이전에는 최치원이 관직을 버리고 신선이 되었다는 곳이자, 남명 조식이 닮고자 했던 산이었다.

15세기 조선 중기의 문신 소세양(蘇世讓)은 전남 담양 면앙정(俛仰亭) 현판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산천은 천지간의 무정한 물건이므로 반드시 사람을 만나 드러나게 된다. 산음의 난정(蘭亭)이나 황주의 적벽(赤壁)도 왕희지와 소동파의 글이 없었다면, 황폐하고 궁벽하며 적막한 물가에 불과했을 것이니, 어찌 후세에 이름을 드리울 수 있었겠는가?" 

난정은 명필 왕희지의 글씨로, 적벽은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지리산도, 지리산에서 죽어간 많은 이들과 그들의 스러진 꿈으로 인해 '아, 지리산'이 되었다.

  /김석환 부산대 석좌교수 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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