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노조, 바뀌지 않는 현실 벗어날 '돌파구'
설립 후 정부가 외면해온 노동 환경 개선 노력
시공참여자 제도 폐지·하루 8시간 근무 조정
유급휴일 안착·연금보험 가입절차 완화 기여

‘건폭’이라 부르지 말라

(상) 건설노동조합이 일군 성과
(하) 노조에 주어진 과제와 역할

'건폭(건설 노조 폭력 행위)'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접합니다. 윤석열 정부가 만든 말입니다. 강성 기득권 노조가 금품 요구, 채용 강요, 공사 방해 같은 불법행위를 공공연하게 저질러서 '건폭'이랍니다. 물론 어느 바닥이든 불법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혐의를 적시하고 증명해서 절차대로 처리하면 됩니다. 지금 정부처럼 특정 노조를 '폭력배'로 규정하고 몰아붙이는 것은 지나칩니다. 건설노조는 애초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범죄집단이 아닙니다. 건설 현장에서 부당한 체계와 대우, 작업 여건을 개선한 주체는 정부가 아닌 노동조합이었습니다.

건설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 설립은 바뀌지 않는 현실에서 벗어날 돌파구였다. 사람이 죽고 다치고 장시간 노동에 시름시름 앓아도 국가는 좀처럼 노동자 편에 서지 않았다. 노조라도 조직해 권리를 주장해야만 했다. 조합 안에서 그들은 임금체불, 산업안전, 중대재해, 해고, 다단계 하도급 문제 등을 줄기차게 언급했다. 좀처럼 바뀌지 않을 것 같던 여건은 노조가 만들어지고 나서 차츰차츰 바뀌었다.

◇시공참여자 제도 폐지 = 건설노조가 일군 성과를 정리하려면 먼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한국 건설산업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시기다. 신행주대교(1992년), 성수대교(1994년), 삼풍백화점(1995년)이 잇따라 무너졌다. 느닷없는 붕괴사고에 수많은 사람이 다치고 목숨을 잃었다. 부실시공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그 무렵 공사 현장 관리·감독 중요성이 두드러졌다. 1996년 '시공참여자 제도'가 시행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송주현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실장 제공

시공참여자 제도는 공사별 공정관리를 실명화하고 준공 후 문제가 발생하면 처벌까지 가능하게 했다. 취지는 좋았지만 부작용은 바로 드러났다. 결정적으로 다단계 하도급이 양산되는 시발점이 됐다. 건설 공사가 다단계 하도급 체계로 진행되는 관행이 굳어졌다. 책임시공 불가, 하자 발생 처리 불분명, 임금체불 같은 문제가 줄지어 터졌다.

당시 시공참여자들은 안전과 임금 등을 관리할 능력이 없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건설노동자를 고용해 일단 시공을 맡겼다. 노동자들은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생계가 걸려 있어 쉴 수 없었다. 안전하지 않은 현장에 몸을 맡겼다. 

건설노조는 10여 년간 꾸준히 이런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와 함께 '시공참여자 제도' 폐지를 요구했다. 그 결과 2008년 1월 관련 제도를 없애는 내용을 담은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이 처리됐다. 제도 폐지 후 전문건설업체와 시공참여자 간 관계는 도급관계에서 고용관계로 바뀌었는데 건설노동자가 개입해 요구를 관철한 첫 사례다. 

정순복(가운데) 건설노조 부울경본부장 직무대행이 지난 3일 오전 창원지방검찰청 정문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규탄 집회에서 건설노조 탄압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최석환 기자

◇노동시간 8시간, 유급휴일 부여 =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건설 현장은 휴일 없이 가동됐다. 하루 노동시간은 10시간 이상이었다. 주 5일제 1일 8시간 근무는 건설 현장에 적용되지 않았다. 정부는 법이 개정되었는데도 이를 관리·감독하지 않았다.

당연히 노동자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와 함께 일요일 유급 휴무, 하루 노동시간 8시간 요구가 이어졌다. 실제로 노조 소속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이 투쟁에 돌입하면서 사측과 일요일 휴무 합의를 끌어냈다. 

또 토목건축 노동자와 건설기계 노동자를 중심으로 밀어붙인 '1일 8시간 노동' 요구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면서 노동 시간도 조정됐다. 정부가 손 놓은 권리를 노동자 투쟁으로 얻어낸 셈이다.

현장에서 임금체불이 당연하던 때 나선 쪽도 노조다. 근로기준법상 임금체불이 금지됐지만 건설 현장은 예외였다. 건설사는 유동성 자금을 확보한답시고 노동자 임금을 처리하지 않기 일쑤였다. 당장 급여를 받지 못하는 것보다 일자리를 잃는 게 두려웠던 노동자들은 부당한 대우에 반발하지 못했다.

노조는 선제적 임금체불 근절 방안으로 ‘공공공사 임금 직접 지급제’ 도입을 제시했다. 발주자가 임금과 임대료를 지급하는 구조를 만들기까지 노조는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다. 따지고 보면 정부가 먼저 정리했어야 할 일이다.

'살인책임자 경찰청장 사퇴! 건설노동자 결의대회'가 지난 11일 오후 6시 30분께 경남도의회 주차장 옆길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자리에는 노동, 시민사회, 정치계 인사 250여 명이 참석했다. /최석환 기자

◇연금·보험 가입 요건 완화... 과적 문제 해소 = 과거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직장 가입 요건·절차는 유독 건설노동자에게 까다로웠다. 건설사에 고용돼 현장 일을 하더라도 이들은 20일 연속근무를 하지 않으면 가입할 수 없었다. 다른 산업이 8일 연속 근무하면 가입할 수 있던 것과 비교하면 12일이나 차이가 났다.

노조는 정부에 타 산업과 같이 직장 가입 요건을 완화해달라고 요구했다. 그 결과 5년 전부터 건설노동자는 다른 산업군과 같게 연속 8일 이상 근무 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직장 가입이 가능해졌다. 

노조는 화물차 과적 문제 해소에도 이바지했다. 과적은 차량과 도로 손상 원인이며 적발되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건설사는 비용을 줄이고자 건설기계 노동자에게 과적을 요구하면서 발생하는 책임은 모두 떠넘겼다. 노조는 건설사 이익만 고려한 과적에 문제를 제기했다. 또 실질적인 이득을 취하는 건설사에 책임을 묻는 도로법 개정도 이끌어냈다. 계약서조차 없었던 건설기계 대여와 관련 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는 법률 개정에도 힘을 보탰다. 과적은 줄었고 도로 파손 문제도 일부 해소됐다. 노조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역할도 한 셈이다.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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